나는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스타트업에서 몸담아 일하던 나는 큰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제대로 된 경력을 가진 선배, 팀장 밑에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운 좋게 큰 회사에 취직을 했다. 이름만 말하면 알만한 업계에서 꽤 유명한 중견기업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9-6 아주 정확히 지켜졌고, 맡은 직무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꿀 직장 아닌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회사를 다니면서 엄청난 무력감에 시달렸다. 6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6시 30분.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서 12시까지 휴대폰만 쳐다봤다. 그러다 겨우 샤워하고 잠들고 다음날 또 출근했다. 끝도 없는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른'이 약간은 무서웠다.
낼모레 서른인데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땐 100살도 훨씬 넘게 산다던데 50, 60이 넘어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대나 약대를 가서 다시 시작해볼까, 대기업 공채에 신입으로 지원을 해볼까,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가, 대학원엘 가서 교수 될 준비를 할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것을 다 생각해봤다. 그럴 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 있을 때 내가 아부지라고 부르는 교수님께 이런 얘길 털어놨다. 아부지는 이제 더 이상은 남의 기준에 맞춰서 너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걸 그만두라고 말씀하셨다. 너 스스로의 가치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
연봉, 직장 같은 걸로 평가받는 내가 아닌 나 자체로 살기로 했다. 나의 꿈은 회사를 그만두면서부터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됐다. 어차피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고, 회사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한들 회사의 이름보다 본인의 역량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럴 바에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라는 이름을 내걸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로 했다. 사진찍기, 글쓰기, 사진강의, 온오프라인 마케팅, SNS 운영 등. 그중 첫 번째로 여행하며 글을 남겨보기로 했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짧은 여행보다는 긴 여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