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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Nov 17. 2019

여러 가지를 남겨두고 떠나는 길

지도 한 번 펴보지 않고 떠나왔던 길.
한국에서 떠나던 날 짧게 깎고 왔는데도 벌써 길었는지
손톱이 까실거려 불편하다.
고작 보름 지났을 뿐인데... 하며
괜스레 오는 잠을 쫓아내 오밤중에 손톱을 깎는다.
깎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조금 더 철저히 알아보고 왔더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이렇게 좋은 곳인지 미리 알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다행이다.
책이나 글이 아니라 내가 살갗으로 깨달을 수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우기라지만
도시 자체의 습도가 높지 않아서
비가 오지 않을 땐 쨍쨍하게 덥고
비가 오거나 오고 나면 시원하고
밤거리를 산책하기에도 안성 맞춤.
한두 시간 정도 투자해 근교로 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
한국에서 내리는 비는 손끝만 닿아도 싫었는데,
치앙마이의 비는 종아리까지 흙탕물이 튀어도 좋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밤은 방콕의 공항에서 보내고
그리고 모레 아침은 뉴델리에서 맞는다.

나는 여기에 여러 가지를 남기고 다시 길을 떠난다.

첫째,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
둘째, 매력을 미처 몰라봤던 후회.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선물 받았던 감동.
넷째,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할 수 있는 이곳이 좋은 이유.
다섯째,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

오죽하면 인도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쉬운 밤이다.
이 밤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보지만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
이토록 아쉬움을 표했던 여행이 있었을까.
작고 좁은 숙소에 온기만 넘실거린다.

앞으로 손톱이 자라 다시 불편해지는 날이 오면
오늘 밤 이날을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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