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름 Sep 27. 2019

매일매일의 힘

천성이 귀차니스트인 나는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게 용한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채워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게으르기만 한 내가 한심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 만도 한데 이쯤 되니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는 나의 인생이 있는 법이지(끄덕끄덕) 하곤 결국 내 방식대로 삶을 써가고 있다.

퇴사한 지 어느새 3주가 지났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짧지만은 않게 느껴졌을 텐데 준비도 없이 회사에서 잘린 데다 바로 그다음 주에 추석이 끼어있는 바람에 어영부영 침대서 뒹굴었더니 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침대에서 뒹구는 것도 지겨울 즈음, 회사에 입사하며 패기 넘치게 끊어뒀던 필라테스 수강권이 번뜩 생각났다. 

이 수강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전 회사 건물 3층에 복싱 짐이 있었는데 회사를 관두면서 체육관도 함께 관두게 되었고, 복싱에 이어 새로운 회사 근처에서 할 운동이 필요했다. 그때 마침 회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방금 리모델링을 마친 채 회원을 기다리는 신생 업체가 생겼고 '이번 회사는 집도 가깝겠다 맘먹고 오래 다녀보자!', '이전에 써보지 못했던 기구 사용법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 기구도 들어오기 전에 시원하게 PO결제WER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신규 업체답게(?) 필라테스를 처음 접해보는 것 같은 신규 회원이 드글드글했고 신규 회원의 레벨에 맞춰서 거의 기본적인 동작이나 스트레칭 위주로 수업이 진행됐다. 그래도 이런저런 운동을 해 본 나로서는 50분 수업을 마치고서도 운동을 했다는 느낌이 들 리가 없었고 자연스레 두어 번 가다가 시간마다 바뀌는 강사와 서먹한 것도 싫어서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법. 넉넉하다 싶었던 수강 기간이 막바지에 가까워오면서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하루에 두 타임을 들어볼까 했지만 그 또한 허용할 리 없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일 강습을 예약했다. 강사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자고로 일하지 않는 자의 여유를 누리는 법은 조조영화라고 믿는 사람이기에 매일 오전 10시 혹은 11시로 예약을 걸었다. 그리고는 강습 20분 전에 일어나 겨우 세수와 양치만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가 50분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강습을 들은 지 꼬박 2주가 넘어간다. 운동 자체는 심플했지만 몸이 너무 무겁거나 갑자기 생리를 시작하게 된 날은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다. 머리 - 목 - 허리 - 골반 - 다리가 1자를 이루게 하고 한쪽 다리를 앞이나 위, 옆으로 들 때에도 골반이나 엉덩이가 함께 들뜨지 않게 유지하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어떤 자세를 하더라도 가슴은 펴내고 귀와 어깨는 멀어져야 했다. (말은 매우 쉽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이 단순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마치 '가만히 있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처럼!) 

매일 아침 다소 강력한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종일 몸이 가볍고 유연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미세하게나마 부기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오늘 동네에 약속이 있어 15분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내 몸에 중심을 찾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 꼭대기부터 뒤꿈치까지 정렬이 맞으면서 몸통이 바로 서고 팔다리가 찰랑찰랑하며 걷는 느낌이었다. 아, 바른 자세라는 게 이런 건가? 아마 필라테스라는 게 온전히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하는 운동이라 그런지 변화가 가장 빨리 느껴졌던 거 같다. 

매일매일 아주 작은 시간을 쌓다 보면 분명 커다란 힘이 된다. 지난번 1일 1글쓰기와 이번 1일 1시간 필라테스가 그랬다. 무언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로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매일 했을 때의 성취감과 성장 가속도는 무시할 수 없다. 10일쯤 지나면 애증의 필라테스도 끝이 난다. 10월부터는 약 3개월간 영어 공부와 글쓰기에 매달려볼 생각이다. 자의로는 도저히 안 되겠기에 영어 학원도 끊고 하루 만에 초고를 완성하는 마라톤 글쓰기도 신청했다. 이번에는 꾸준함을 무기로 어떤 결과물이든 내어볼 생각이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이전 06화 배운 적 없이 글을 씁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