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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Jun 13. 2019

음식의 독

식물주의로 가는 길목의 깨달음

어제는 친구가 맛있다고 노래를 부르던 해물찜을 먹으러 갔다. 오전에 비가 와서 오후에는 하늘이 맑게 개고 선선했다. 게다가 오랜 친구와 맛있는 음식이라니! 아주 들뜬 마음으로 웨이팅까지 참아가며 낙지 찜을 시켜 먹었다. 음식이 아주 실하고 맛있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양념된 콩나물이 먹고 싶었기에 때는 이때다 하고 와구와구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집에는 조미 안 된 김을 함께 주는데 그게 또 낙지 찜과 싸먹으니 별미였다. 어느 정도 먹고 한국인의 후식, 볶음밥을 주문했다. 단언컨대 그 볶음밥은 근 몇 년간 먹어봤던 후식 볶음밥 중 톱클래스를 자랑했다.

그렇게 정신없지만 맛있게 음식을 욱여넣고는 배가 터질 것 같다며 경찰병원역에서 석촌역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불러 있었고 석촌역에서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지만 한강을 건널 엄두가 안 나 버스를 타고 집 앞에 내렸다. 아무래도 소화가 안 될 것 같은 예감에 편의점에 들러 소화제를 사려고 했지만 마침 집 앞 편의점 소화제가 똑 떨어져있었다. 슬슬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편의점이 두어 개 있지만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들어가 급한 대로 일본에서 사 온 오타이산과 카베진을 털어 넣었다. 평소 같았으면 1~2시간 이내로 약효가 들었어야 한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9시 정도였으니 적어도 잠자리에 들 때쯤에는 편안한 위장으로 잠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도록 몸을 구부리거나 펼 수 없을 정도로 위가 아팠다. 과식한 탓에 급체와 위경련이 함께 온 듯했다. 속은 더부룩이 불편하고 위는 뒤틀리듯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혼자 살면서 아픈 이래로 손에 꼽는 서러운 날이었다. 아프지만 불러 약을 사다 달라고 할 사람도 없고 같이 병원에 가 달라 할 사람도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거나 동거인을 찾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심하게 말하면 이러다 방에서 고꾸라져있어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겨우 선잠이 들었지만 이내 위통에 잠이 깨는 일이 반복됐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병원에 들렀다 출근할까 하다가 가봐야 약 밖에 더 주겠나 하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하면서 내 인생에서 채식하던 때를 떠올렸다. SBS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고기가 이런 과정으로 내 밥상 위에 올라온단 말이야? 하고는 당장 고기를 끊었었다. 학교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내는 중이었는데 무엇보다 힘든 건 채식을 한다는 나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조롱이었다. 무슨 채식을 한다 그래, 풀만 먹으면 힘없어서 못 써! 등의 이야기를 매 자리마다 불편해하며 내가 채식을 하는 의미를 되새겼다. 

그러다 어느 날 회식이 고깃집으로 잡혔다. 지금이었다면 뚝심 있게 상추에 밥에 쌈장을 싸서 상추 쌈밥을 먹고 된장찌개나 계란말이로 때웠겠지만 사회에 막 적응하던 나는 크게 거절을 못 하고 엉겁결에 고기를 두어 점 집어먹게 됐다. 그러자 몸에서 놀라운 반응이 일어났다. 팔꿈치 근처와 무릎 근처에 두드러기가 나며 막 가려웠다. 그때가 채식 2개월쯤 됐을 땐데 몸이 이렇게 빨리 변하나? 싶었다. 그리고는 알레르기 반응에 화들짝 놀라 다시 채식을 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2개월쯤 채식을 더 하다가 잦은 술자리에서 왕따가 됨이 괴로워 그만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데 그때는 또 단체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몇 번이고 튀는 게 싫었던 거 같다.

그 잠깐의 경험으로 나는 음식이 주는 독을 알고 있다. 채식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먹을 게 많지만 생각보다 먹을게 없음을 앎으로 몇 년째 채식을 유지한다는 사람들도 존경스럽다. 한편 잘 알면서 또 모르는척하는 내가 뻔뻔하고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먹을수록, 밤새 복통에 시달린 경험이 더해질수록 건강한 삶을 좇게 된다. 조만간 다시 가벼운 삶을 살기 위해 발걸음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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