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는 매뉴얼에 맞춰 수상자에게 연락을 했다.
“시모(cimo)님 축하드립니다. 인류의 수수께끼 중 하나였던 코로나 가열문제를 풀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하고 증명해 주신 공로를 인정하여 세이고 물리학상을 수여합니다. 수상을 위해 아래 주소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수상 과정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수상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공표됩니다. 상금은 이옴코인으로 먼저 지급되며, 경비는 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가능한 수상일정을 정해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모는 상금을 받기 위해 버튼을 눌렀고 침착하게 수상을 거부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세계의 모든 물리학자들이 세이고 난제 리스트에서 한 항목이 사라진 것에 대해 열광했지만, 이틀 뒤 다시 리스트업 된 것을 보고 이내 실망했다. 세이고 난제 리스트의 항목들이 제거되는 것은 인류의 진화를 뜻한다고 봐도 되기 때문에 분 단위로 뉴스에 오르내렸고, 주식 시장도 유래없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상금은 감사히 쓰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 분야에서 계속 연구하거나 관심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제가 정리한 증명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길 바랍니다. 해프닝정도로 잘 마무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상금을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면 말씀 주세요. 아직 제 지갑에 온전하게 트렌젝션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수신을 취소하겠습니다.”
카토는 시모가 문제를 풀어낸 순간 모든 신상정보를 해킹했고, 2316번째로 태어난 베보이며 젊은 사업가 부부에게 입양된 것을 확인했다. 혹시나 슈퍼휴먼인 경우라면 시설로 초대했을 때 프로토콜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게 했었으나 다행이면서 불행히도 버그다. 세이고상의 목적은 버그를 찾아내 트래킹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상금을 소모하는 것은 재단 존속에 불리하기 때문에 카토는 상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시모도 포기했다.
시모는 아직 겨우 16살이고, 세계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24년 파리에서 한국 반효진 선수가 세운 기록이 60년 만에 깨진 것이기도 했다.
‘시모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부모님 사업이 망하고 심하게 사춘기를 겪었는데, 재능을 알아본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사격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최연소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어 어려운 집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스포츠의 위대함을 알리기 아주 좋은 서사를 갖춘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저 언론에서 포장한 것뿐 사실과는 달랐다. 사춘기 때 잠시 방황한 것은 맞으나 여느 또래보다 침착하게 사춘기를 보냈고, 집이 어려워지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에 돈 벌 방법을 찾고 있었다. 체육시간에 우연히 사격을 하게 됐는데, 3발이 주어졌으나 구멍이 하나밖에 없어서 혼이 났다. 총알을 숨겼다고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저 시모는 똑 같은 곳에 3발을 쏘았을 뿐이고, 그렇게 알게된 사격이 남들에 비해 너무 쉬웠기에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키가 갑자기 크기 시작하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을 종종 보았지만, 시모는 반대로 시력이 더 좋아졌다. 원하는 만큼 멀리 있는 것을 볼 수도 있었는데, 흡사 배율을 조정할 수 있는 디지털 렌즈 같았다. 그리고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한 번은 체육시간에 뛰자마자 넘어져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발가락부터 종아리뼈까지 모두 금이가고 근육이 다 파열됐었다. 마치 엔진성능을 높여놨지만 바퀴가 견디지 못한 레이싱카의 증상 같았다. 수학시간에는 암산해서 답을 냈다가 답안지를 미리 봤다고 오해받기도 했다.
원래 사격도 이런 사건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시모는 보고 싶은 만큼 확대해서 과녁을 봤고, 팔을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켜서 방아쇠를 당기는 단순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두 발을 다른 곳에 쐈다느니 총알을 숨겼다느니 오해를 받았으나, 총알을 찾기 위해 CCTV를 확인해 보면서 한 순간에 사격 천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모의 부모는 외형적으로 닮은 구석이 없는 시모에게서 갑자기 발현된 체육 재능이 조금 불안했다. 시모가 독립할 수 있을때 까지는 입양 사실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모가 찾아와 사격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엘리트 체육에 들어가는 돈이 걱정됐지만 진짜 부모라면 이럴 때 분명히 지원해 줄 것이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뒷바라지를 시작한 멋진 부모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시모는 점점 본인의 능력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극히 평범한 유년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부분들에 있어 소극적이게 됐다. 학원을 못 다니게 되면서 친구들은 온라인상에서 만난 아바타들 뿐이었고 이런 일들을 털어놨을 때 다들 반응이 냉랭했다. 그렇게 더 소극적으로 변한 시모였다.
‘눈에 띄지 말자. 사격은 그냥 상대보다 딱 0.1점만 이기면 되는 스포츠다. 그렇게 돈을 벌자. 평생 돈 걱정만 없어도 되게 만들고 다시 생각하자.’
시모는 사격을 할 때 과녁의 크기는 남들보다 10배 정도로만 볼 수 있게 시력을 조정했다. 팔은 미세하게 떨리게 만들어서 인간미 넘치는 점수를 만들었다. 그러다 상대가 너무 잘하는 것 같을 때 조금씩 떨림을 보정하면서 상금을 모았다.
국가대표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워낙 선수층이 엷은 스포츠다 보니 상금을 모으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국가대표로 이어졌다. 그리고 올림픽에도 나가게 되고, 친구가 없던 사춘기 소년에게 친구들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목도 받고 싶어 졌고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마치 뭔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처럼 주목을 과도하게 받을 수 있는 상황들이 생기면 가차 없이 메스꺼움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금메달을 딴 후에도 한동안 인터뷰도 안 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성격에 장애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몇몇 유사언론이나 커뮤니티에서는 공황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수근거렸다. 시모에게 이 메스꺼움은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생존에 대한 본능 같이 느껴졌다. 시력이 좋아지면서부터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됐는데, 이 때문에 그 원인들은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서 반복적으로 시모를 괴롭혔다.
시모는 이 메스꺼움을 피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모든 신체 능력을 상위 10% 정도만 되게 만들기로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본인이 더 욕심을 낼 수 없을 정도로만 버틸 수 있게 근육량을 만들었다. 실수로 초인같은 운동신경이 드러나면, 이제는 교실 안에서 받는 관심정도로 끝나지 않기때문에 위험하다.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면 거의 다 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평소에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모두 조절했는데 시력은 딱 3.0 정도, 청력은 보통 사람보다 2배 정도, 후각은 개의 반의 반 정도로 맞췄다.
시모는 가끔 날아가는 비행기 일련번호를 보면서 이 스트레스를 풀었다. 종종 본인의 능력을 너무 말하고 싶을 땐, 이옴베이 허언증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실컷 사실을 말했다. 소설가도 지어내지 못할 거짓말의 생생함으로 시모의 등급은 꽤 높아졌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에서 시모는 세이고상에 대해서 알게 됐다. 누군가 시모가 암산으로 중간고사 수학시험을 3분 만에 친 사실에 그렇다면 세이고상을 진작에 탔어야하지 않았냐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음날 리스트가 일시적으로 사라지면서 허언증 커뮤니티에 성지순례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또 돌연 리스트가 복원되면서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허언신이 도왔다고 웃어넘겼지만, 누군가 시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AI와 로봇을 다루는 저널에 이런 제목의 칼럼이 나왔다.
‘16세 천재 소년, 인성을 가진 사격 머신의 등장’
얼핏 읽으면 사격 로봇에 인공지능을 이식하여 사람처럼 만드는 과정을 빗대어 심도 있게 현재의 AI 발전 척도를 소개한 칼럼이지만, 시모를 감시하던 카토에게 위험 신호가 떴고 곧장 시모 부모님의 동선을 수배하여 무인드론을 날렸다.
“혹시, 시모 어머니 되시나요?”
한 눈에도 기품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말을 걸었다.
- 4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