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칼럼을 쓴 사람은 저명한 실험과학자였는데, 시모의 부모님을 천재 엔지니어에 빗대어 표현했다. 카토는 세이고상 이후 시모에 관한 모든 것을 스크랩하고 추적하고 있었기에 칼럼이 올라오자마자 저자에 관한 정보도 해킹했고 최근 1년간 모든 행적을 분석했다. 그리고 칼럼이 발표되기 한 달 전부터 시모 가족의 동선을 정리하기 시작한 문서를 발견했다. 일기처럼 쓰인 문서에는 시모를 인조인간으로, 시모의 부모를 엔지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구절들이 적혀있었다. 시모가 공원에서 비행기 일련번호를 읊는 것도 기록되어 있었다. 칼럼과 이 문서, 그간 저자의 행적으로 봤을 때 다음 행동은 납치가 유력했다.
무인드론은 가로 세로 5cm 밖에 안 되는 소형드론이다.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치는 거의 없어 주로 고양이 장난감으로 소비되는 기계다. 중년의 여성이 말을 거는 것과 동시에 시모 어머니의 가방으로 무인 드론이 들어갔다.
“네 맞는데... 누구.. 시죠?”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시모 어머니는 대답했다.
“저는 사격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다음 달에 있을 세계선수권대회 전에 스폰서 계약을 논의 드고 싶어서 연락을 드리려 했는데,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뵙게 되어 무례를 무릅쓰고 인사드렸습니다.”
눈가의 주름, 살짝 올라간 입꼬리, 하얀 피부, 신뢰감을 주는 스카프와 예의 바른 어투까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마음 놓이게 하기 충분했다. 이 길에서 우연히 볼 수 있는 옷차림이 아닌 것이 살 수 있는 의심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여긴 교통이 안 좋아서 사람이 많이 다니진 않는데, 정말 우연이네요! 우리 시모가 너무 내성적이라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5분만 걸으면 저희 집인데, 그럼 잠시 들러서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당황한 기색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강아지처럼 순수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시모의 어머니는 낯선 여성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의심이라곤 전혀 없고, 오히려 반가운 눈치다. 시모 어머니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적막했던 골목의 공기를 따듯하게 채워나갔다.
그렇게 1분쯤 걸었을까, 경찰관 두 명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제보된 인상착의랑 같으며 마약을 소지했다는 명목으로 시모 어머니에게 경찰서까지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시모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했지만 법적으로 문제 되는 일은 전혀 한 적이 없었다. 시모의 어머니는 말도 안 된다며 팔을 뿌리치려 시도했다. 협회에서 온 중년의 여성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모 어머니는 어디서 받은 제보냐며 억울하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내 경찰이 뒤진 가방에서 하얀 가루뭉치를 들고 있는 드론이 발견됐고, 억울한 표정과 함께 경찰차로 연행됐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중년여성은 말릴 듯 말듯한 손짓 외에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연행되어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중년여성은 고개를 떨구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마약이라니. 한 달 사이에 무슨 마약을 해? 그런 건 없지 않았어?! 너 똑바로 알아본 거 맞아?”
중년 여성은 미간을 잔뜩 쥐어짜며 언성을 높였다. 진정이 되지 않는 듯 염소처럼 떨면서 화를 냈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근처에 있었는지 1분도 안 돼서 검은색 세단이 골목으로 들어왔고 여성은 사라졌다. 걸어서 5분 거리. 집에 있던 시모가 모든 걸 듣고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어머니가 들뜬 톤으로 중년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부터 듣기 시작했고 곧장 창문으로 다가갔다. 협회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고, 이내 경찰이 나타나더니 어머니 가방에서 마약을 발견하고 어머니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시모는 어머니가 탄 경찰차의 번호로 어느 경찰서 소속인지 알아냈다. 신체의 변화와 함께 컴퓨터의 언어에도 익숙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걸 알아내는 건 간단한 웹 서칭만큼의 수고다. 시모는 곧장 택시를 불러 경찰서로 향했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울고 계셨고, 경찰관들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경찰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어머니의 인상착의와 위치를 전달받았고, 제보와 똑같은 드론이 가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얀 가루뭉치는 단순한 밀가루였다. 진정되지 않는 어머니를 토닥이며 10분이 지나자 아버지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경찰관들에게 화내기보다는 어머니한테 집중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어 정말 다행이라며 가족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경찰에게 화를 퍼부을 법도 했지만, 불필요하다고 생각이 든 아버지는 더 중요한 것에 집중했고 침착했다.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뭔가 우리 가족에 대해 뒷조사하는 느낌이었는데… 어머니 가방에 들어있던 드론은 뭘까. 그리고 그 장난 제보는 또 뭐며…’
아버지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시모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지난 한 달의 기억을 빠르게 되짚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드를 켜서 본인과 관련된 모든 기사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 칼럼도 발견했고, 바로 저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카토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제 가족이 위험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가족을 안전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칼럼의 저자는 두아(dua)라는 중년 여성이다. 시모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물리학자이자 인공지능 연구가였고 세이고상을 받는다면 그녀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얼마 전에 일시적으로 사라진 리스트는 그녀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인 허언증 커뮤니티에서 단서가 될 법한 일들이 들리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풀 수 없는 급이라고 생각했고, 뇌내망상으로 시모를 타깃으로 잡은 것이다. 촉이 소름 끼치기는 하나 지금은 시모에게 접근한들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가 슈퍼휴먼이란 것 외에는 없다. 현재 시모의 정체는 시모 자신도 아닌 카토만이 알고 있다.
그녀는 시모의 부모가 엄청난 엔지니어라고 생각했고, 평범한 학력과 과거는 일종의 위장 같은 거라 생각했다. 허언증 커뮤니티의 골수 유저라고 할만한 상상력이다. 그러니 오늘의 일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래도 시모쯤 되는 유명인의 부모가 경찰서에서 그런 고초를 겪으면 당연히 뉴스에 나와야 하는데, 뉴스가 너무 조용했다. 실험물리학자는 1%의 가능성에도 매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본인의 가설을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길이었기에 두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안도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조용히 허언증 커뮤니티를 들여다봤다.
집에 도착하고 어머니를 진정시키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시모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부모님을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프라이빗하게 경비와 시설을 갖춘 타운하우스로 이사하는 것이었다. 돈과 명예를 모두 갖춰야 입주할 수 있는 곳이다. 명예는 메달리스트니까 충분한데 돈이 많이 부족했다. 시모는 언제 중년의 사이코패스가 엄마에게 다가올지 모를 불안감이 싫었다. 메스꺼움과 마찬가지로 피하고만 싶은 감정이었다. 옆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 세이고 재단과 주고받은 채팅창을 열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저... 수상 과정과 제 정체는 비밀인 게 확실하죠? 번복해서 죄송하지만 수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카토는 자동응답기처럼 바로 답변했다.
“아래 일정 중 수상 가능한 일정을 알려주시고, 전달드리는 주소로 시간을 잘 맞춰 와 주시기 바랍니다.”
수상 일정은 이번 주 안에 가능한 날짜가 있었다. 시모는 가장 빠른 날짜를 선택했고 날짜에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상금은 이전에 안내받은 것처럼 먼저 받았고, 타운하우스를 바로 계약했다. 어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지만, 아버지는 기쁜 내색을 포함해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출처부터 물어보셨다. 수상 소식은 부모님께 공유하지 않았다. 그저 협회가 보호차원에서 잡아준 거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아버지는 잠시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지만, 순수하게 좋아하는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모는 부모님의 사업이 망한 이유를 이런 두 분의 성격 때문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카토는 입력된 프로토콜에 따라서 세이고상 수상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카토를 만든 디오(dio)의 취향이 반영되었는지 겉치레는 아무것도 없다. 상장도 트로피도 메달도 없다. 그저 디오의 축하메시지가 담긴 1분짜리 영상이 전부였다. 영상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소파는 있다. 카토의 준비는 그 소파까지 수상자를 에스코트해서 영상을 틀어주는 게 전부인데, 디오는 무엇에 집착했는지 카토에게 리허설까지 한 번 하게끔 명령을 해뒀다. 마치 본인이 세이고를 처음 만나는 날을 준비했던 것과 맥락이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세이고 재단이 알려준 주소는 도심 한가운데 택시정류장이었다. 그리고 마치 내가 언제 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 시간에 맞춰 전화가 울렸고, 눈앞에 있는 로봇택시를 타라고 했다. 택시는 시모에게 이옴베이 인증을 요구했고, 신원인증을 마치자 택시가 출발했다.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조금 불안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함과는 다른 느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창 밖이 그대로 보이는 일반적인 택시라는 것. 10분 정도 뒤에 도심을 빠져나왔고, 30분 정도 시골길을 보며 달렸다. 그리고 차가 멈췄다. 시골길 한가운데 차가 섰다. 그리고 차 문이 열렸다. 시골길에서 문을 열었는데, 콘크리트 차고지에 들어와 있었다. 이때부터 긴장감이 몰려왔다. 창문에 펼쳐진 장면은 실제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고해상도 영상이었던 것이다. 오감을 평소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난 바로 오감의 제한을 해제했다.
한 10m 정도 떨어진 코너에서 수상한 발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리는 고양이였다. 분명 고양이인데 발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둔탁했다. 일반인이라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현재 시모의 청력은 작은 소리에 한해서 일반인보다 30배 정도 더 소리를 증폭시켜서 들을 수 있다. 더 큰 소리에는 청각 기관이 훼손되니 잘 조절해야 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자 미세한 전자파까지 감지됐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USB를 잡았다. 위험해지면 바로 로봇택시를 해킹해서 여길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차고지 문이 단단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검은 고양이가 내 앞에 도착했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시모님. 저를 따라오세요”
입이 살짝 벌어진 채로 시모의 사고는 일시적으로 멈췄다.
‘고..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 5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