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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의 Oct 20. 2024

당신은 인간입니까 - 6화

시작

물론 시중에 로봇고양이는 많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너무 생생한 생물이다. 시모는 멍하니 서서 앞장서서 가는 고양이를 확대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찍어둔 사진을 확대하듯 현미경처럼 고양이의 피부, 털, 모든 조직들을 확대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고양이 이미지를 떠올린 후 피부를 확대해서 조직의 모양을 비교했다. 아무리 비교해 봐도 외형적으로는 완벽한 고양이다. 


“따라오십시오” 


시모가 가만히 서있자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다시 말했다. 


‘혹시 지금 내가 이세계에 들어온 건 아닐까. 소설 속에만 있던 것이 실제로도 있는 건가’


시모는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경계하며 고양이를 따라갔다. 분명히 미세한 전자파가 느껴지니 로봇이라면 로봇일 거다. 모든 건 이 고양이 로봇의 주인에게 물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따라갔다. 고양이가 벽에 다가가자 벽이 위로 올라가면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벽 너머에는 20평 남짓되는 공간에 갈색 소파와 테이블이 덩그러니 있었다. 그리고 벽에 영상을 투사할 수 있는 프로젝터도 보였다. 고양이는 시모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자 프로젝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등장해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시모는 본인의 사격대회 첫 수상 인터뷰를 떠올리며, 그보다 더 어색한 모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했다. 영상 속의 남자는 본인은 디오이며, 세이고상을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이후 영상은 오류처럼 4초 정도 하이퍼랩스로 지나가더니, 20분간 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영상이 끝났다. 마지막 한 마디의 표정은 매우 홀가분해 보였고, 어색함도 많이 풀려있었다. 시모는 빠르게 지나간 영상이 궁금해졌다. 


‘겨우 4초인데, 20분이라고 했으니 약 300배속의 영상이었을 거다. 그럼 그만큼 천천히 다시 기억 속에서 재생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시모는 눈을 감고 영상을 떠올렸다. 빠르게 지나간 디오의 첫마디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이 말을 들게 된 이유는 제가 미숙했기 때문이라 사과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제 말을 잘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현재 당신의 능력과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것들을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하이퍼랩스는 오류가 아니라 의도된 영상이었다. 세이고상을 받을만한 천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마지막으로 그가 버그인지 검증하는 마지막 절차기도 했다. 


디오는 ‘프로젝트:가이아’로부터 출발하게 된 본인의 압축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공 DNA가 탑재된 베보에 관한 이야기, 실재했던 세이고에 대한 이야기, 버그를 일으키게 될 경우 베보들에게 벌어질 변화들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소설로 쓰면 세 개 화 정도 될 이야기를 20분으로 압축해서 들려주는 걸 보면 어눌한 외모와 달리 똑똑한 사람에 가깝다고 시모는 생각했다. 디오는 증명에 필요한 데이터는 카토와 접속해서 확인하면 될 것이며, 앞으로 인생에 있어 현재의 영상이 어떠한 강요도 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시모는 머릿속에서 영상의 재생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고양이를 불렀다. 


“카토, 디오가 말한 데이터룸 주소를 프로젝터에 띄워줘.” 


시모는 디오가 말한 것에 대한 근거자료를 살펴보며 충격을 완화시켜 가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프로젝트:가이아’, 베보의 설계도, 과학자 비보, 세이고와 이옴베이, 해킹 AI 카토, 세이고상의 목적과 버그 대응 방안, 베보 시뮬레이션 데이터 등 방대한 문서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인간이 검토한다면 한 달도 넘게 걸릴만한 분량이었지만, 하루 꼬박 밤을 새우며 시모는 본인이 확실한 2316번째 베보임을 확인했다. 


혼자 여행 간 아들이 걱정됐는지 시모의 어머니는 끼니때에 맞춰 연락하셨고, 시모는 늘 10분 이상 수다를 떨며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모자의 대화다. 시모의 아버지도 늘 대화에 끼고 싶어 했고, 종종 통화 뒤에서 장난을 걸었다. 더할 나위 없이 화목한 가정이었다. 시모는 신체적인 변화를 겪은 후, 청각이 예민해졌기 때문에 입양이 된 사실을 머지않아 알게 됐었다. 그러나 본인이 입양아라는 충격보다 더 큰 부모님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져서 이 행복한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과 책임감을 더 갖게 된 17살 소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본인을 더 평범하게 만들려 애써왔다. 그런데 이 소년에게 이번에는 본인이 시설에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현실이 다가온 것이다. 시모는 옅은 두통을 느꼈다. 뇌도 충분히 과부하가 올 수 있을 정도로 시모는 많이 생각했다. 시모는 그게 가능했다.


‘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꼬리를 물며 끈질기게 생각한 끝에 이 본질적인 질문이 남았다. 생물학적으로는 맞았다. 어떤 정밀 검사를 해보더라도 다른 점은 찾을 수 없다. 뇌에서 다른 신호들을 주어 신체 기능들을 조절할 수 있을 뿐이지 가만히 있으면 보통 인간이다. 가끔 초인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돌연변이에 의해서건 유전적으로 뛰어난 조합이 일어나건 그렇다. 그런데 이미 시모는 본인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됐고, 이 본질적인 질문을 남겨두게 된 거다. 


시모는 현재 본인에게 중요한 사실들을 머릿속에 나열해 봤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것, 남들에게 본인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들키지 않는 것, 본인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것, 평범하게 살아가려 애쓸 것, 인류 평형을 유지하여 ‘프로젝트:가이가’가 발동하는 것을 막는 것…’ 이게 왜 머릿속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모는 빠르게 마지막에 나열한 문장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베보 생산은 몇 해 전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건 인구수가 더 이상 크게 줄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카토, 최근 10년간 세계 인구수 증감에 대해서 알려줘” 


카토는 바로 통계자료를 뒤져서 데이터를 가져다줬다. 이 데이터를 기준으로 베보 생산 숫자를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던 데이터다. 앞으로 5년이면 된다. 5년 뒤면 베보 생산을 안 해도 될지 모르는 트렌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숫자를 확인하고, 시모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카토. 너 이제 나한테 말할 때는 문자로 보내거나 전화 걸어. 그리고 세이고상은 이제 폐지하는 게 좋겠어. 버그는 앞으로 내가 직접 찾으면 될 것 같아. 수상자와의 검증에서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가 있었다고 보도해 줘.” 


하루 만에 달라졌다고 하기에, 시모는 남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몇백 배의 생각을 고쳐하고서 시작한 행동이니 산술적으로 따지면 1년의 시간은 족히 보냈다고 해도 된다. 시모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카토가 생물이었다면 디오와 겹쳐 보이는 시모의 모습을 발견하고 울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모는 카토를 데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카토에게서 은은히 나오는 전자파의 근원은 내장된 통신칩이었다. 오른쪽 발에 수술한 듯 철심이 하나 박혀있는데, 철심에 이식을 해뒀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소화하고 에너지원을 얻을 수 있어서 애완용 고양이로 매우 적합하다. 다만, 늙지 않으니 때에 맞춰 미용을 하거나 모종을 바꿔주는 등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디오가 친절히 만들어둔 카토 설명서에 적혀있었다. 레이저 포인트 불빛을 따라다니거나 사냥하려는 본능도 없으며, 주인 말을 너무 잘 듣는 것도 주의사항에 적혀있었다. 시모는 생각보다 디오가 섬세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시모는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께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사격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세계 정점을 찍은 중압감이 너무 크고, 시기하는 언론과 친구들이 본인을 인조인간처럼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다만, 지금 집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코 앞의 세계대회는 나가는 것으로 협회랑 협의했다고 말했다. 시모의 부모는 오히려 이 소식을 기뻐했다. 아직 시모가 어리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버지는 어린 가장을 지켜보는 부모의 중압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는 카토에게도 친화력을 발휘하시며 간식을 직접 만들겠다고 주방으로 갔다. 카토는 시모가 미리 당부해 둔 것처럼 일반적인 고양이의 반응을 하고 있다. ‘냥-’이라는 소리를 낼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명령을 절대적으로 잘 수행하는 게 카토다. 


아버지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셨다. 평범하게 공부를 더 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어릴 때 좋아했던 그림으로 진로를 잡아보는 건 어떨지 물어보셨다. 


“저 학교 그만두고 여행을 좀 다녀보고 싶어요. 세계 대회 나갈 때마다 그 나라들이 너무 궁금했는데, 매번 일만 했으니까요. 대신 검정고시 보는 시기에는 들어와서 시험 칠게요.”


매번 일만 했다고 덧붙인 한마디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부채감을 자극하는데 충분했고, 아버지는 어머니 설득은 직접 하시겠다고 하며 바로 수락하셨다. 


2주 뒤에 열린 세계대회에서 시모는 가볍게 1회전 탈락을 했다. 여느 때처럼 시모의 부모님은 아들을 응원했지만, 생중계를 보며 결과에 미소 지었다. 같은 시간 두아는 이 사실에 안절부절못하며 초콜릿을 계속 까먹었다. 한 입씩만 먹은 초콜릿들이 계속 쓰레기 통에 쌓였다. 


시모는 대회 탈락 후 협회 관계자들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패드를 꺼내 카토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찾았습니다. 1회전 탈락 시간에 맞춰 로봇택시 보내뒀으니 바로 타고 오시면 됩니다’ 


경기장 문을 나서는 시모의 걸음은 미세하게 점점 빨라졌고 그대로 열려있는 로봇택시에 올랐다. 도착까지는 약 10분이 걸린다고 창문에 표시됐다. 


‘저 고양이 저 거리에서 내가 보이는 건가. 왜 자꾸 따라오는 거 같지…?’ 


우누에(Unue)는 300m 밖에 있는 고양이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집중해서 고양이를 확대해 보기 시작했다.


- 6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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