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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의 Oct 20. 2024

당신은 인간입니까 - 7화

우누에

우누에는 남아프리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입양됐다.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시골이라 주변을 둘러봤을 때 딱히 박탈감 같은 것들은 느껴질 게 없이 평온했다. 우누에는 타고나게 근육량도 많고 운동신경도 좋아서 어릴 때부터 단거리 육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그러나 키가 160대 초반에서 성장을 멈추면서 한동안은 정체기를 겪었고, 운동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양식업을 도왔다. 그랬던 친구가 2년간의 슬럼프를 이겨내고 16살이 되면서부터 100m 단거리 기록이 비약적으로 단축되기 시작했다. 2년간 깨지지 않던 본인의 12초대의 기록이 어느 날 갑자기 2초 이상 단축되면서 전국대회에 나갔다. 그 기록을 세우기 직전에는 시모처럼 다리 근육이 파열되는 증상을 겪었으나, 뭐 원래의 근육량은 비교가 되지 않았기에 작은 해프닝처럼 바로 회복됐다. 우누에는 갑자기 국가대표가 된 뒤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너무 빨리 제 재능을 포기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디에 어떻게 힘을 주고 움직여야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기계처럼요.”  


그러고 나서 온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되자 국가대표가 된 우누에는 몸에 이상이 생긴 듯 자주 훈련에 불참하게 됐다. 원래 매우 활달했던 성격도 점차 내성적으로 변해갔는데 이는 갑자기 전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된 소년에게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누에의 부모를 안심시켰다. 이후 기록은 점점 향상됐지만, 처음보다는 아주 느리게 향상됐다. 어쨌든 그렇게 그는 세계 기록에 근접해 갔고, 시모가 나갔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우누에는 마을의 기적이었다.


시모와 카토는 버그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디오가 말한 것처럼 보통 2차 성징 때 버그를 일으키게 된다면, 시모와 비슷한 나이대를 추적하는 게 가장 쉬웠다. 학업성취를 추적하는 나이대기 때문에 지식에서의 급성장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신체적인 능력을 드러내는 게 오해를 덜 받을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호기심을 멈추지 못한 버그는 이미 세이고상의 타깃이 됐을 거다. 이런 이유로 베보 중에서 올림픽에 참가한 사람이 있다면 확률상 높다고 판단했다. 총 3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누에였고, 다른 한 명은 시모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아직 너무 어린 11살의 e-sports 천재였다. 


우누에의 생활기록부에서는 버그를 일으킨 것으로 의심되는 흔적들이 보였다. 시모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다움으로 프로그래밍된 인공 DNA는 평소보다 과도한 관심을 받는 순간 메스꺼움을 느끼게 되어 인간의 범주 안에서 소심하게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국가대표가 된 이후 우누에는 두통을 많이 호소하고 학교생활에도 소극적으로 임했다. 이런 흔적들이 있음에도 신중히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시모는 한번 더 우누에가 동메달 따는 장면을 봤다. 최고 속도가 나야되는 구간에서 속도를 더 늘리지 않았고 그대로 결승선을 끊었다. 그동안의 기록도 뭔가 조절하듯이 올리는 것 같았다. 노력의 결과물인 것 같이 잘 재단되어있는 기록이었다. 이런 증거들도 있었고 우연히 사격 세계선수권대회가 우누에의 나라에서 열리면서 시모는 우누에에게 먼저 접근하기로 했다. 


카토는 우누에의 예상 행선지가 그의 루틴상 육상경기장의 훈련센터일 거라고 알려줬다. 10분 뒤 시모는 먼저 센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5분 뒤 우누에가 헤드폰을 쓴 채 걸어오는 것을 봤다. 화면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다리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100m 7초 대도 무난히 가능할 것 같다고 시모는 생각했다. 그리고 시험해 보기로 했다. 


“카토 지금이야” 


카토는 우누에 가방에 매달려있는 키링을 물고 달아났다. 이건 공식 시합도 아니고 주변에 보는 사람도 많이 없을 거라 본인의 최고속도를 낼 것이다. 물론 카토는 고양이기 때문에 좁은 곳으로 도망가면 잡히지는 않고 속도 측정을 끝낼 수 있기에 좁은 골목으로 도주해서 어디론가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하나 간과한 건 우누에의 반응 속도였다. 


우누에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카토 앞을 막았고 방향을 트는 카토를 그대로 낚아챘다. 카토는 시모에게 본인과 우누에가 눈이 마주친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때문에 시모는 아무 생각 없이 작전을 감행했다. 우누에는 계속 카토를 경계하고 있었고, 오감을 최대한 곤두세우고 있었다. 카토가 미동도 없이 있다가 뒤에서 나타났기에 키링을 뺐겼을 뿐, 이미 뛸 준비를 끝내뒀다는 듯이 거의 동시에 도움닫기 해서 카토를 잡았다. 최고속도를 확인해보려 했는데 그건 의미 없었다. 우누에가 도움닫기 없이 거의 5m를 한 번에 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느린 화면으로 머릿속에서 몇 번 다시 재생해 봤는데 내가 카토였으면 앞에 나타난 우누에를 보고 기절했을 거다. 계측은 의미가 없었다. 

 

시모는 경이로운 감상에서 벗어나 애완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우누에에게 다가갔다. 우누에는 당연히 경계했고, 시모가 10m 정도 다가왔을 때 뒷걸음질 치며 누구냐고 물어봤다. 불안한 눈빛이었다. 우누에의 오감이 열려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둘 만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 소리를 들으실 수 있다면 제 고양이를 풀어주세요. 그럼 저는 얌전히 돌아가겠습니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우누에는 경계하면서 카토를 풀어줬다. 카토는 키링을 뱉고, 애완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시모에게 뛰어갔다. 우누에의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고, 단 한 번의 도움닫기였으나 온몸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모는 우누에의 능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사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락처를 알았지만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괜히 잠적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모는 그렇게 겁에 질린 우누에를 뒤로 한 채 카토와 택시로 돌아갔고 그대로 숙소로 향했다. 


시모는 기억을 이용해 생성형 AI로 디오의 영상을 복원시켜 놨었고, 우누에에게 이걸 보내주기로 했다. 디오가 썼던 하이퍼랩스는 쓰지 않았다. 표현이 서툴기 때문에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참고했지만 입장을 바꿔보면 그냥 솔직한 게 최고라 2316번 베보가 본인이고, 이 영상을 본 뒤에 동류를 찾아 나섰다고만 덧붙였다.


버그를 일으킨 베보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적당히 겁을 주려는 요양이었다면 아무 말도 없이 카토와 돌아가고 끝냈으면 됐다. 그러나 시모는 이들과 이야기를 해 봐야만 했다. 처음 디오의 영상을 본 날 풀리지 않은 채 미뤄둔 근본적인 물음인 “나는 인간일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더 큰 계획은 저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시모는 우누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우누에가 보여준 신체능력은 시모가 생각하던 능력치를 조금 더 상회했다. 만약 우누에가 카토를 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카토의 골격은 이미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시모는 언제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근육을 키우기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머리로는 출력을 언제든지 낼 수 있지만 몸은 아니다. 반대로 근육량만 충분하면 어느정도 커버가 된다. 카토에게는 영상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데이터룸을 우누에에게 보내줄 것을 지시했다. 


다음날 시모는 온몸에 알이 배겼다. 가장 효율적으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방법대로 하는 건 맞지만 근육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고통을 시모라고 겪지 않을 방법은 없다. 


‘이 고통은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일까..’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궁금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우누에에게 언제 답이 올지 몰라 조용히 비행기 일련번호만 읽었다. 카토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서 시설의 메인 서버와 통신하며 다음 버그 가능성자를 찾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평온한 호캉스의 한 장면 같았다. 


“띵-동” 


‘ZS8904…’ 열아홉 번째 일련번호를 읊조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룸서비스를 신청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올 사람이 없었다. 귀찮아서 일단 후각을 열었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옷을 챙겼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 7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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