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지의 Oct 27. 2024

당신은 인간입니까 - 9화

목소리

이번에 카토와 시모가 후보자라고 생각한 베보는 최근 2년간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학교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했다. 기록상으로는 5살 즈음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었고,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마비도 왔다. 그러다 2년 전 아예 안 보이게 되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온라인 수료가 가능해졌고, 드물게 정기교육 온라인 이수가 가능한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부모조차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근처에 집이 있기 때문에 CCTV가 많기도 했고, 아무리 살펴봐도 없었다. 그녀의 집 주변에서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1주일에 한 번씩 도착하는 식료품 배달용 트럭과 도착하면 그걸 집으로 물고 들어가는 리트리버 한 마리뿐이다. 그런데 그 2년 동안 정기적인 치료 기록이 매 달 있고, 그게 정부기관에 제출되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기록이 해킹에 의한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킹 방식은 시모와 비슷했으니 정황상 증거는 충분했다. 


보쵸에게서 가까스로 벗어난 카토는 돌아가면서 시모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시모가 전송해 온 영상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물들이 일제히 말을 맞춘 듯 카토를 둘러쌌지만 전혀 공격을 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포위만 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뱉은 그녀의 한마디가 계속 걸렸다. 


‘이 친구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가?’ 


시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물의 언어를 알아듣고 커뮤니케이션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고,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연구 결과는 있었다. 그런데 동물과 직접 얘기할 수 있거나 직접 그걸 인간이 얘기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언어가 없던 사람이 동물과 나고 자라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언어를 백지화할 수 있다면 가능하려나?’


가능하지만 세상과 단절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늘 언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베보는 정황상 2년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약간 불안감이 스치긴 했지만, 아무래도 버그를 일으킨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누에가 호텔에 도착했다. 시차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편의상 멜라토닌을 조절해서 온 모양이다. 우누에는 도착하자마자 시모에게 인사는 생략하고 카토에게 다가가 장난을 쳤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이 안 통하는 게 오히려 재밌다는 눈치다. 로봇인걸 알면서 왜 저러는지 시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모는 조금 초조한 말투로 우누에에게 말을 걸었다. 


“도착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게 해서 죄송해요. 이번에 버그를 일으킨 사람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지금 바로 가서 신병을 확보하는 게 필요해 보여요. 부모들도 흔적이 없고, 보안을 뚫는 스킬도 너무 익숙해서 우리의 정체를..”


우누에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을 잘랐다. 


“이번엔 보낸 거 다 봤어. 더 얘기 안 해도 돼. 바로 가보자. 네가 보내준 카토 영상에 담겼던 소리 중에 섞인 고양이 울음소리 중에 그 여자애 목소리도 있더라. 알고 있던 거지?” 


우누에는 신체 능력을 많이 끌어올린 것과 별개로 선천적인 감이 뛰어나다. 그래서 시모는 눈치 못 챈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우누에는 렌터카를 가져가지 말고 택시를 불러가자고 했다. 어떠한 것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누에가 서두르고 있었고, 또 시모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만 끄덕이며 우누에를 따랐다. 보쵸의 집까지는 약 15분 정도 걸린다. 알래스카의 도로는 컨셉인 것 마냥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차가 많이 덜컹거렸다. 알래스카에는 재밌는 표지판이 많다. 그중 하나는 ‘무스 주의’ 표시다. 최대한 자연을 보호하며 발전시킨 곳이라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커다란 동물들이 도로에 많이 출몰한다. 그래도 그렇지 20마리 정도 되는 무스가 길을 막는 건 우연이라기엔 너무 이례적일 것이다. 무스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회할 길도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서 항공드론으로 다시 접근하시죠. 아무래도 동물들이 인위적으로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아요.”


우누에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에 새가 프로펠러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 동물들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그거 같은데. 기다려봐.”


시모는 뇌가 마비된 것 같았다. 분명히 우누에는 복잡한 걸 싫어하고 본인이 더 많은 것들을 차분히 계산할 줄 알아야 하는데,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우누에의 감에 한 발자국씩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우누에는 10초 뒤에 상향등을 키라는 말과 함께 택시 밖으로 내렸다. 


우누에는 동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동물들의 섭리는 알고 있었다. 야생 동물일수록 약육강식에 복종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덩치가 큰 동물이 본능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곰이나 랫서판다는 위협을 가할 때 두 발로 서서 몸을 부풀리고, 공작도 깃을 활짝 편다. 그리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당하면 다들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지금 우누에가 밖에 내린 건 조금 무모해 보였다. 아무리 사람이 강해도 사람이다. 무스를 이길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우누에의 감을 믿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시모는 택시를 제어해서 상향등을 켰고, 우누에도 도움닫기 해서 무스 무리 사이로 점프했다. 밤이라 빛을 많이 모으게끔 조절된 무스의 동공은 갑작스러운 상향등 불빛에 적응하지 못했다. 무스들은 일시정지가 되었고, 우누에는 무리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무스 등에 올라탔다. 우두머리 무스는 놀라서 날뛰었고, 우누에는 뿔을 잡고 버티면서 스마트 폰을 있는 힘껏 쥐고 무스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무스가 기절하듯 풀썩 쓰러졌다. 소의 약점은 정수리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도축할 때 강력하게 정을 내리쳐서 절명하게 만든다. 우누에는 이걸 어릴 때 한 번 본 적 있었던 것이다. 우두머리가 쓰러지자 도로에 있던 무스들이 모두 숲 속으로 도망갔다. 우누에가 별일 없었다는 듯 차 문을 열었고 쓰러진 무스를 피해서 택시는 다시 달렸다. 


시모는 아무것도 못하고 이상한 판단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최대한 도움이 되기 위해서 현재 상황을 다시 되짚어 봤다. 해킹에 능한 베보라면 현재 카토를 본 이후에 본인의 위치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동물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카토가 돌아가는 길에 새를 불러 미행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렌트 차량은 시동을 거는 순간 통신해서 배터리 공급을 차단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누에는 정말 이걸 다 감으로 알 수 있던 건가...’


우누에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고 시모를 한 대 쥐어박았다. 


“사격 챔피언한테 총을 쥐어주면 좀 변하려나? 뭘 그렇게 쫄아있어.” 


시모는 여기에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단지 진실에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대화가 필요해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주어진 연산능력으로 침착하게 계산하면 모든 게 풀리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웃겼다. 우누에의 한 방에 시모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고, 냉정하게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국립공원 주변의 CCTV 영상을 비롯해서 택시 블랙박스 영상도 모두 바꿔치기했다. 카토한테는 공공기관의 보안시스템을 해킹해서 좀 더 보안강도를 올려달라고 명령했다. 버그를 일으킨 알래스카의 베보가 시모 일행을 신고하면 일이 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리 확보해 둔 보쵸의 연락처로 디오의 영상을 전송하고, 우누에에게 했듯이 대화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윽고 시모 일행은 보쵸의 집에 도착했다. 보쵸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시모는 스피커 폰으로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영상은 다 보셨나요?” 


“아뇨 아직 안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늦기도 했고, 내일 다시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아보신 것 같고, 저는 알아보신 대로 밖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이옴베이에서 얘기 나누셔도 좋고요.” 


영상에서 들었던 차분한 음성이다. 전화너머로 들으니 더 차가운 것 같이 느껴졌고, 뭔가 마음을 많이 닫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우누에가 끼어들었다. 


“야 너, 사람을 죽이는 건 안돼. 영상 확인하고 다시 연락해.”


시모는 당황했다. ‘사람을 죽이다니 이건 무슨 소리지?’ 우누에는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과감하게 얘기했다. 시모는 숙소로 돌아오는 차에서 국제 프로파일링 센터에 접속해서 범죄자 분석 자료를 모두 살펴봤다. 우누에가 이 자료를 습득했을 리는 없으니, 정말 감으로 모든 걸 다 알아내는 건가 싶어 경이로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누에는 침대로 쓰러졌다. 시모는 조금 혼란스러운 감정을 묻어두고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누에씨, 오늘 했던 얘기들이나 판단들 다 감인가요?” 


“그냥 우누에라고 불러. 형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을 거 아냐. 너는 오감을 지나치게 제어해 온 것 같네. 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정말 많잖아. 똑똑한 척은 다 해놓고, 하여간… 도련님들이란..” 


아직 도련님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서 왔으니 할 수 있는 어휘라고 생각했기에 저 말에 상처받지는 않았다. 시모는 빠르게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컸고, 일단 머리를 좀 비우기로 했다. 어차피 자기 전에 무한히 생각할 자신을 알고 있었다. 숙소에 와서 긴장이 풀리니 허기가 밀려왔다.


“룸서비스로 피자 시킬 건데 같이 드시겠어요?”  


우누에는 격하게 동의했고, 뭔가 먹을 때면 말이 많아지는 우누에게서 본인이 자란 마을 얘기를 들으며 식사를 마쳤다. 보쵸는 아마 지금쯤 혼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우누에처럼 내일 점심쯤이면 연락 올 것으로 생각하며 시모는 오늘 일들을 가만히 복기했다. 


다음 날 우누에는 죽은 듯이 잤다. 12시간도 넘었는데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모는 오늘은 날씨가 맑으니 오로라를 꼭 보겠다고 다짐하며, 테라스로 가서 비행기가 날아가길 기다렸다. 


오후 4시 20분경, 16시간의 잠에서 깨어난 우누에가 배고프다며 나가자고 했다. 그때 로비에서 연락이 왔다. 로비 직원은 손님이 왔는데, 앞을 볼 수 없으니 내려오셔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누에는 복잡한 대화보다 밥이 먼저니 밥 먹을 동안 얘기하고 있으라며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어제 보여준 것과 전혀 딴판이지만 우누에다운 행동이다. 


영하 20도의 날씨인데, 오랜만의 외출이라 날씨를 잘 가늠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추위에 익숙한 탓인지 가벼운 털스웨터와 긴치마를 입은 채 휠체어를 타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연락을 미리 주셨으면 저희가 갔을 텐데요. 직접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모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고, 긴 금발의 여성은 온화한 미소로 화답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저한테 바라는 게 무엇인가요?” 


우누에와 마찬가지로 본인에게 바라는 것을 묻는 것은 베보의 특징인가 생각하며, 시모는 그때와 똑같이 대답했다. 이 영상을 보고 혼란에 빠졌으며, 대화를 통해 ‘난 인간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 얘기했다. 


“그저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면 이옴베이에서 말을 걸든 온라인에서 얘기해도 충분하지 않았나요. 보내주신 영상을 보면 저를 감시하고 싶었던 마음도 조금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저는 앞도 안 보이고 다리도 불편합니다. 예상하실 테지만 동물과 말하는 방법을 조금 터득했을 뿐, 이 외에 우연히 얻어진 능력을 더 쓰기도 애매해요. 그리고.. 저는 제가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저를 남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지옥이고요. 때문에 시모님이 원하는 답을 저와의 대화에서 찾을 순 없을 것 같아요.”


보쵸가 한 얘기 중에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고, 시모는 벌써 두 명의 버그를 찾아냈지만 도무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좀 더 대화를 이어가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능력을 각성한 시점에서 변화 같은 것들을 물어봤다. 20분쯤 대화했을까, 보쵸는 이제 돌아가도 되겠냐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끝맺으려 했다. 그때 아래층에서 우누에가 올라왔다. 


“집에 사람은 왜 가두고 있는 건데?” 

우누에가 시모와 보쵸만 들을 수 있는 음량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 9화 끝 -

이전 08화 당신은 인간입니까 - 8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