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이미 바이러스는 전세계로 퍼졌고, 바이러스를 원천 차단하는 방법보다는 의료체계에서 환자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확산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원인 미상의 신형 폐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약 1개월 가량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우한에 봉쇄령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병원 문턱을 밟지도 못하고 죽어나가는 케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데도 시신팩에 넣어 화장했다는 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중국 당국이 발표하는 사망자 수는 병원에서 치료 받다가 죽은 케이스로,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는 병원 내에 시신 그대로 방치되어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아니어도 항상 응급 환자는 넘쳐나고 일손은 부족하다. 확산을 막을 수 없는 바이러스라면 적어도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전염병의 확산 속도와 감염자 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란,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들을 보면 중국의 전철을 밟아가는 느낌이 든다.
일본에서는 영국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요코하마 앞바다에 떠있을 때부터 "지금부터 2주 동안이 정말 중요하다. 전염병의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모두 협력해주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끊임 없이 발신했다. 2주 지나니 "아직도 안심할 수 없으니 전염병 확산 국면이 수속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아마 이렇게 찔끔찔끔 대처하는 건 이제 막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유럽과 미국이 잠잠해질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일본 정부는 올림픽 개최에 온 신경이 쏠려 있기도 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발 여행객 입국금지 조치에 미온적이었다. 각종 비자로 일본에 체류 중인 중국인이 100만 명 가량 되기에 일본 정부가 입국금지 조치를 강력히 시행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미국에서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마당에 아베 총리는 "아직 비상사태를 선언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고, 임시휴교령이 내린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이미 많은 한국 누리꾼들이 알고 있듯, 일본은 검사 자체에 매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전염병 환자 수를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WHO에서 판데믹을 선언한 마당에 무사히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긴 할까? 올림픽에 이어 또 한 가지. 신약 아비간에 얽힌 비리 문제. 아비간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일본 <후지필름후지화학>의 신약이다. 발매된지 몇 년 지나 신약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신속히 아비간 비축분을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말 필요한 경우에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효과가 있는 다른 약들을 제쳐 두고 부작용이 심한 아비간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심쩍다. 결국 알고 보니 <후지필름후지화학>의 회장이 아베 총리와 절친이었다. 검사 키트도 문제인데, 일본 정부는 결과가 빨리 나오는 키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검사 키트 100만개 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히자 많은 누리꾼들이 비난했고 결국 손정의 회장은 기부의사를 철회했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검사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검사 키트 기부 소식에 득달같이 비난을 퍼부은 사람들은 아베 총리의 댓글부대가 아니었을까.
우리 회사는 2월 중순부터 재택근무 권고, 3월 들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불행히도 업계 특성 상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꽤 있고, 나도 그 불행한 쪽에 속해있다는 것. 아직 재택근무로 전환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매일 전철에 몸을 싣고 출근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관찰한 일상의 변화를 조금 써볼까 한다.
마스크 품귀 현상
일본 역시 시중에 유통되던 마스크의 상당수가 중국으로 유출되었다. 춘절 연휴가 끝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심각성이 일본 사회 내에서 퍼져갈 무렵부터 마스크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1-2주 정도는 '금방 가라앉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품고 그냥 다녔었다. 반쯤 체념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그러다 점점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 같아서 아마존이나 라쿠텐, 야후 같은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평상시 같으면 50매 1000엔 정도 할 부직포 마스크가 터무니 없는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아마존에는 마스크 가격은 정상적으로 표시하고 배송비로 1만엔, 2만엔을 책정해놓은 미친X들도 많았다. 최근에는 중국산 부직포 마스크 50매 5500엔 정도로 가격이 안정된 것 같다. 이 가격을 놓고 안정되었다고 말하기도 그렇지만, 최근 중국이 패닉 상황은 벗어난 것인지 중국산 마스크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오늘 도착했는데 매캐한 냄새가 나서 스팀다리미로 스팀 쪼이고 밖에 널어놨다가 착용했다. 중국산 마스크는 포름알데히드 기준치도 없고 검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니 요주의)
그와중에 열일하는 유일한 지방정부 홋카이도. 중앙정부 눈치따위 보지 않고 비상사태를 선포한 탓일까. 아베 총리도 "홋카이도에 마스크를 지원하겠다, 우편으로 배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 찾아보니 진짜로 며칠 전부터 홋카이도 일부 지역에 우편으로 마스크를 배달하고 있더라. 한국도 공산당 배급, 전쟁 후 배급처럼 줄세우지 말고, 애먼 약사들 고생시키지 말고 우편이나 택배로 일괄 발송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직접 약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받을 수 있으니 좋은 방법 아닌가?
재택근무
회사마다 방침이 다르겠지만 상당 수의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2월 중순부터 재택근무 권고, 3월 들어서는 재택근무를 전면 시행하고 있다. 3/14(금)까지였다가 3/27(금)까지 연장되었는데, 최근 유럽과 미국의 추세를 본다면 4월까지도 쭉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해외출장은 이미 4월 말까지 금지된 상태. 지난 주 금요일(3/13)에는 회사 내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토요일(3/14)에 회사 건물 전체를 방역하겠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그 직원이 마지막으로 출근한 것은 3/6(금) 이라고 하니,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일주일이나 걸린 셈이다. 코로나 사태로 어린 아이들과 하루종일 집에 갇혀 있을 직원들을 위해 베이비시터 비용과 가사도우미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메일도 날아왔다. 회사 차원의 복지인지 정부보조금을 받는 건지는 모르겠다.
마트 사재기
얼마 전 한국 인터넷에서 일본인들이 휴지 사재기하는 광경이 화제가 되었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비웃는 의견이 대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쿄에서는 딱히 그런 사재기 현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마트에서도 진열대가 텅 비어 있는 경우는 없다. 마트 사재기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건 작년 10월 태풍 19호가 일본을 강타했을 때였다. 식료품 코너가 거의 텅 비어 있었고 컵라면 중에 일본인들이 매워서 잘 못 먹는 신라면만 남아 있어서 기억에 남았었다. 지금은 다들 마트에 직접 가서 사재기하기보다는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서 당분간 먹을 식량을 쟁여놓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물량이 딸리고 있지는 않다. 주문이 몰려 배송이 좀 늦어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정도? 아무래도 당장 내일 닥쳐올 재난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의 차이가 아닐까.
전철
출퇴근은 야마노테선. 평소 같으면 내가 타는 역에서 도쿄역까지 만원전철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금방 앉을 수 있다. 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 출퇴근 시간 야마노테선에서 앉을 수 있다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거나 시간차 출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동시에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지침이 내려왔음에도 출근해야만 하는 현실이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리고 전철 내 95% 정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종종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걸려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쓰지 않은 걸까 궁금해진다.
외식
재택근무 시행 중인 회사들이 많다보니, 오피스가 밀집한 지역의 식당들은 확실히 사람이 적어진 것 같다. 평소 불금 저녁 같으면 웬만한 가게들은 다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데, 어딜 가든 반쯤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기 있는 가게는 이 와중에도 90% 정도 자리가 차 있거나 웨이팅이 있긴 하다. 밖에서나 전철에서는 열심히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만 식사할 때는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눈다. 집단 감염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은 확진자 수를 의도적으로 늘리지 않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에 의해 관광버스와 택시 운전기사가 감염된 순간부터 일본은 이미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들과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국민성 덕분에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기침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꽃가루 알러지 때문에 재채기하고 코 푸는 사람들까지 늘어나서 종일 병균의 온상에 있는 기분. 유럽에서는 치료의 효율성을 위해 노인 환자보다는 젊고 회복 가능성이 큰 환자를 선별적으로 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연금을 비롯해 각종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자 노인 인구를 줄이려 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거고, 젊은 사람들은 걸려도 그냥 알아서 회복하라는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