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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Jan 04. 2024

나인 줄 알았으나 우리였던 순간들

 

 세상이 눈으로 하얗던 날에 백로를 봤다. 반가운 마음에 개천 얼음 위를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얼음에 굵은 발자국을 몇 번 내는 사이 백로는 금세 날아가 버렸다. 느려진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사이, 눈 길 위에 큼지막한 소주 포장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쓰레기 줍기 선배님의 말떠올랐다. '쓰레기는 몇 개라도 주우면 좋잖아요.'

'그래. 몇 개라도 줍자~'


 쓰레기가 보이면 주웠다. 돌아가는 사이에 주황색 택배 봉투와 플라스틱 과일 용기에도 냉큼 손길을 내밀었다. '제대로'하기 위해 시작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이대로' 하게 된 건 모두 그 사람 덕분이다.

 

 올해는 내가 만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집 앞 꽃 집에서 사 온 꽃을 화병에 꽃은 순간, 생소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사장님이 선물해 주신 이름 모를 꽃과 유칼립투스가 내가 고른 꽃과 어우러져 더 조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한 줄 알았지만 내가 한 게 아니었구나.'


 문득 나인 줄 알았으나 우리였던 순간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나의 존재가 낯설지만 아름답게 느껴질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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