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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아 May 10. 2019

어쩌다 만난 자온길,
보물찾기의 시작

자온길과의 운명적인 만남


마을 할머니와의 추억

시골마을 규암


자온길은 백제의 가장 찬란한 기억, 부여의 백마강변 작은 시골마을 규암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의 후보지는 규암이 아니었습니다. 부소산성 아래쯤이나 궁남지 주변 등 사람들이 많이 오는 관광지 옆 공간들과 외곽들까지 두루 살폈는데 어디도 제 마음에 딱 들지 않았어요. 심지어 부여 시내는 평당 천만 원까지도 가격이 나갔고 궁남지 주변도 평당 오백만원에서 칠백만원까지 호가했습니다. 건물 하나가 아닌 거리가 필요했기에 그렇게 비싼 가격은 우리가 시도하기 힘들었고 제가 원하는건 새로 무언가를 짓는 게 아닌 비어지고 버려진 공간이었거든요. 그러다 불현듯, 규암이 생각났습니다.


규암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생 때였습니다.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 공예학과에 재학 중이던 당시 부여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 갔었는데 가녀린 할머니가 혼자 때를 밀고 계셔서 제가 등을 밀어 드렸어요. 할머니는 그 모습이 좋으셨는지 “우리 집에 놀러와!”라고 하셨고 마침 민속 조사 중이기도 했던 저는 할머니가 너무 정감 있고 좋아서, 그 댁에 덥석 놀러갔습니다. 그 마을이 규암이었어요. 그 할머니의 집은 구조가 매우 특이했고 골동품들이 꽤 있었고 마을에 오래된 건물이 드문드문 있었던 게 어린 제 마음에도 신기한 기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의 옛 이야기를 듣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제가 매우 좋아하는 일입니다.


할머니는 옛날 부여로 피난오신 이야기, 피난 와서 지금의 할아버지를 만난 이야기, 피난 올 때 재봉틀을 힘겹게 메고 온 이야기 등을 해주셨고 옛날 입었던 옷,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쉽지만 할머니는 규암에 현재 살고 계시지 않고 할머니댁은 커다란 오피스텔로 바뀌었어요. 그 점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텅 빈 마을 속

보물찾기 시작!


지방 어디를 가든 빈 집, 버려진 공간이 많고 이걸 오래 방치하면 귀한 자원이 흉물이 되기도 합니다. 시내의 부동산도 여러 군데 다녀보고 부여를 샅샅이 살폈지만 실패하고 심란해 하다가 아주 예전 목욕탕에서 만난, 그 할머니 댁이 생각났어요. 마지막으로 다리 건너 규암에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암 강변거리에 딱 섰을 때 (믿지 않으시겠지만) 삼청동 거리가 변하던 것이 시뮬레이션처럼 보였습니다.




상가가 있으나 모두 문이 닫힌 거리. 너무 놀라워서 혹시나 싶어 밤에 다시 와 봤습니다. 진짜 사람이 사는지 안사는지 불 켜진 걸 보면 아니까요. 밤에 다시 와 보았는데 모두 불이 꺼져있고 거리는 스산했습니다. 다방 몇 군데만이 남아 있는 신기한 거리. 거리는 예전의 영화로웠던 흔적을 간직한 채 멈춰 있었습니다. 이렇게 거짓말처럼 거리가 다 비어 있다니.


제가 찾던 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웠습니다. 그 때부터 동네의 숨은 보물찾기가 시작되었지요. 페이스북 친구들도 저의 숨은 보물 찾기를 함께 지켜보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규암은 아주 오래전 백마강에 배가 드나들던 때 매우 컸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오래전에는 극장도 있고 양품점(오늘날의 백화점)도 있고 양조장도 있었던 걸로 보아 얼마나 번성했던 마을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떠나고 이제는 텅빈 상가와 오래된 빈 집이 가득한 이곳에서 유휴공간들을 활용해 문화시설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공간은 서점이 되고 작가의 공방이 되고 문화숙박시설이 되고 로컬푸드 식당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갤러리도, 카페도, 베이커리도 펍도 만들 예정이에요.



힘들 때도 많았고 여전히 많이 서툴지만 이 작은 움직임으로 오래 전 아름다웠던, 멈춰 있던 마을이 다시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차길 바라봅니다. 다음에는 그렇게 보물찾기를 해서 만들어 낸 공간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 이야기를 알고 나면, 자온길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스스로 '자(自)' 따뜻할 '온(溫)'.
스스로 따뜻해지다. 자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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