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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Sep 14. 2020

나를 시험하는 의사를 만난 날

턱관절 통증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5일 전 턱이 아프기 시작했다. 5일 전의 그날 나는 교촌 치킨을 시켜먹었다. 배운 사람이라면 다들 선호하는 허니 콤보를 말이다. 반 이상의 닭 조각을 야무지게 씹었다. 쏙쏙 살을 발라내 닭뼈를 발굴하는 나의 능력에 감탄할 정도였다. 솔직히 그 날, 난 입을 꽤나 크게 벌려 닭튀김을 양껏 입에 물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차마 내가 교촌 허니 콤보를 먹다 맛에 흥분하여 입을 크게 벌리다 턱관절의 인대가 나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다. 안 그래도 몸무게의 숫자에 예민한 요즘, 인정하기 싫은 발언이 될 테니.

지난 7월부터 휴직 상태였고 8월 10일부터 입사를 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살이 쪘다. 바지가 작아졌고 화장실에서 나를 바라보면 옛날의 마른 몸이 아니다. 복부 쪽에 몰린 지방들이 피둥피둥하게 라인 밖으로 튀어나가 서로 주장한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다. 살이 찔 걱정도 없었다. 별명은 종이 인형이었는 데다 언제나 말라서 불쌍해 보인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이십 대의 얘기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 삶의 낙이 먹는 것에 집중되고 먹는 양이 그대로 살로 향했다. 과거엔 먹어도 어딘가의 에너지로 소비됐다. 그런데 지금은 최대한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는 나의 게으름이 1순위가 되어 에너지 방출에 상당히 보수적이다. 운동량은 줄었고 먹는 양은 늘었다. 나이도 꼬박꼬박 먹고 있다. 여성의 호르몬은 점점 줄어들고 생리양도 줄었다. 많아져야 할 것은 줄어들고 줄지 말아야 할 것은 줄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여성의 몸은 나이가 먹으면 미학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점점 지방층은 두터워져 굴러 다닐 모양이 되고 웬만한 사건 사고에는 신경이 무뎌지기까지 한다. 나는 여자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과학적인 것인진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턱관절로 돌아가서 나는 병원을 찾았다. 턱관절 통증을 진료한다는 치과였다. 의사는 내 턱을 수차례 누르고 내 턱을 각도에 따라 벌리게 하고 여러 증상을 확인하더니 인대가 늘어난 거네요 라고 진단했다. 턱은 팔다리와는 다르게 관절이 아주 작아서 작은 힘을 여러 번 가했을 때에서 잘 버티다가 어느 순간 통증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에게 턱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턱에서 정수리를 감싸는 방식으로 붕대를 칭칭 감아서 턱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단다. 나는 웃음이 났다. 지금도 웃음이 난다. 아니 그러면 저 어떻게 먹어요? 말은 어떻게 해요? 회사는 갈 수 있나?라고 혼잣말 겸 질문들을 따발총처럼 내뱉자 의사는 빨대로 드실 수 있는 음식만 드시고 말씀은 거의 못합니다.라고 덤덤히 답변하며 다시 한번 나의 의사를 물었다. 그래도 하시겠어요?라고. 나는 3초 정도 생각하다 해야 되면 해야죠 뭐. 재밌겠네요.라고 턱 깁스를 찬성하는 의견을 주었다. 그러자 의사는 이상한 분이네요. 보통 턱 깁스는 안 한다고 해요.라고 말하며 나의 바보 같음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턱 깁스를 합니까? 그걸 하면 생활이 안돼요. 그런데 말이다. 왜 나를 떠봐? 참내 젊은 의사 양반이 지금 나랑 장난 똥 때리나 보다. 그리고 다시 그 양반의 충고와 질문이 이어졌다. 물리치료를 꼭 하셔야 돼요. (명함을 건네며) 연락하셔서 기계를 사세요. 이백만 원 정도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백.. 만원? 하고 되뇌었다. 구매를 지금 결정해야 하나요?라고 조금 의기소침하게 되묻자 그 양반은 나에게 아니 왜 모든 걸 하려고 하냐, 누가 이백만 원짜리 물리치료 기계를 사냐고 또 나의 어리석음을 꼬집었다. 나는 그때쯤 내가 여기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데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져 실성한 웃음이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의사는 어어 안돼요. 입 벌리고 웃지 마세요. 이거 참 병원 와서 더 역효과가 나네.

그렇게 기괴한 진료가 끝났다.


턱관절 인대가 늘어난 것도 처음이지만 이런 장난꾸러기 의사도 역시 처음이다. 그는 이렇게 환자들에게 충격요법을 줘서 턱을 벌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글쎄요... 나에게는 단순히 웃긴 의사로 기억될 것 같다.


그나저나 턱은 낫질 않는다. 식욕이 좀 줄어들어야 될 텐데 그런 기미는 없다. 입이 짧다고, 단식 투쟁한다고 욕먹던 내가 지금은 주둥이가 아주 이만리로 나갔는지 입이 아주 길다. 주변에선 잘 먹어서 보기 좋다고 하지만 보기 좋다는 건 풍족하고 풍요로운 것을 볼 때 흔히 하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난 지방이 풍족한 상태인 거다. 뼈밖에 없으면 보기 싫다고도 하지만 난 뼈만 남고 싶다. 난 본래 삶의 의욕도 없었고 건강에도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다 주의였는데 지금은 이토록 살고자 하다니. 턱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치킨 다리를 뜯는 상태라니.


조금 덜 먹는다고 안 죽는다.


옷방에 가득한 예쁜 옷들은 내가 말라야 입을 수 있다.


그렇게 사들인 옷을 구제하자. 나만 바라보는 귀중한 아이들을 위해. 턱을 조금 덜 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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