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넷> 리뷰 아님 주의
나의 첫사랑은 수학 학원 선생이다. 17살이었던 나보다 15살 정도 더 많았던 남자 선생은 유부남이었고 애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지만 대담하게 접근했다. 일부러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고 차가 끊겨 나를 데려다주게 만들었다. 난 정말 수학을 못했지만 욕심은 커서 친구 답안지를 외워 수학 시험 일등이 되기도 했다. 커닝을 해서라도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었나 보다.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자신도 그렇다고 했지만 그 사랑의 뜻은 서로 달랐을 것이다. 나는 이성적인 사랑을 말했고 그는 아마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마치 ‘인류를 사랑하라’는 종류의 사랑이었을 거다. 내가 대학을 진학한 후 그는 자연스레 멀어지면서 시간이 지나 내 또래의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그렇지만 그때 그를 향한 진한 사랑의 추억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아련한 기억에 잠기게 했다. 나의 모든 마음을 뒤흔들었던 어렸을 때의 진심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옅어질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을 쏟아 심장이 아프다 해도 놓을 수 없었던 중독 같던 감정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이제 나는 그때의 수학 선생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남자도 많이 만났다. 수도 없이 없는 마음을 쥐어짜 내어주려고 했고 무자비하게 할퀴어지기도 했다. 마음도 어쩌면 근육 같은 걸까. 내 마음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훈련시키고 움직이면 그쪽으로 발달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마음에게 물어보니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타인에게 마음을 주고 정성을 다하고 상처 받고 다시 회복해서 재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만 하고 싶다고 했다. 마음결을 구성하는 근육에 진이 다 빠져나간 듯 뻣뻣했고 건조했다. 마음에도 색깔이 있다면 과거에 부끄러운 핑크빛이나 싱그러운 개나리색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지금은 담뱃재처럼 까맣게 회색빛의 가루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십 대 초반에는 내가 마음을 정성껏 다 바칠 때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마음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마음이 전달될 수 있길. 너를 좋아하고 신경 쓰고 있다는 그 진심을 상대에게 최대한 쏟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나에게 못된 짓을 할지라도 내가 상대에 대한 마음이 크다면 어떻게든 견뎠다. 그게 젊은 날의 열정일까 어리석음일까. 마음의 정체가 무엇이든 주인이 기다리는 택배처럼 목적지를 향해 끝내 도달했던 것이다. 그랬던 나의 마음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잘해왔다고 토닥여주고 싶기도 하다. 내가 내 마음을 보살피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참히 희생시키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마음이 이토록 굳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제로에 가깝도록 사라지고 타인에 의한 인정 욕구마저 관심 밖이 되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나의 삶을 살게 되었고 남들이 나에 대해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마음은 표정을 잃었지만 나의 삶은 점점 평온해졌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감정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됐지만 현 삶의 행로는 더욱 평탄해졌다. 나의 내부의 혼돈이 증가해 엔트로피 수치가 높아져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생명을 띄고 질서 유지를 위해 애쓰도 있다는 얘기다. (영화 테넷의 개념을 활용해봤다.) 상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뒤흔들렸던 나의 수많은 망상, 오해, 질투, 안달 남 등의 무질서한 감정들로 가득했던 젊은 날의 추억.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높은 엔트로피 수치는 높은 푸르고 푸르렀던 나의 에너지들을 주체할 수 없음에서 온 일종의 고행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누군가 사랑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넌지시 얘기해주고 싶다. 지금의 에너지가 높이 솟구친다면 그것이 소진될 때까지 마음을 다하라고.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있다. 불장난 따위로 잿가루가 되지는 말 것. 불타서 가루가 된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깐. 우리 마음의 엔트로피가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드는 대가가 얼마나 클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에게.
나는 언제쯤 다시 혼돈을 소화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