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들 사이 너의 아픔이 새어 나온다
잘 헤어졌어. 얼굴이 못생긴 건 아냐, 네 말대로 괜찮아.
근데. 빈티 나게 생겼잖아.
알고 보니깐 걔 인생이 빈티더구만.
너 걔랑 결혼했으면 니 인생도 망했어. 알아?
작년 7월 말에 헤어진 후 한 번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 누가 감히 나에게 먼저 그의 이름 석자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내 결별에 대한 존중일까. 그리고 올해 추석 때 가정 방문을 했을 때 엄마에게 결국 듣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시간도 안돼 식탁에 앉아 근데 걔랑 왜 헤어졌니? 이젠 말할 수 있지 않니?라고 시작했다.
난 차마 내가 바람 폈어.라고 하지 못하고 그냥 싸웠지.라고 애매하게 대답해 내 죄책감을 숨겼다. 그리고 이어졌던 그 빈티 나는 사람이라는 비난과 판단들. 그때 ‘난 아 나 되게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런 모욕들을 대신 들어줄 수 있는 지경이 되었어. 많이 성질 머리가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어서 들어가.
내가 올해 초 술에 취해 집에서 자기 전 그의 이름 석자를 세 번 불렀다. 지우지 않은 그의 번호를 입력하고 문자로 말이다. 그는 대답했다. 어서 들어가라고. 난 집인데 말이다. 아마 내가 어디서 술에 취해 주정하는 줄 알았을 거다. 난 그를 왜 불렀을 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다.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고, 나에 대해 실망해서 미안하고, 널 분노하게 해서 미안하고, 너의 인생을 망쳐서 미안하다고.
나 원래 이런 애야.
그가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다그칠 때 난 미안하다고 하지 못했다. 왜 우리 부모님한테 잘한 거냐라고 내 예의 차린 태도를 이해 못할 때 난 비웃으며 말했다. 나 원래 이런 애야.라고 말하고 나니 나는 나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경멸이 느껴졌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원래 그렇다. 라니. 사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거고 역시 남자 문제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거고. 역시 그럴 줄 알았네. 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참 나다운 사건이었다. 난 참 별 수 없는 쓰레기구나라고 생각할 때쯤 그는 내 손을 뒤로 꺾고 목을 졸라 바닥에 내려쳤다. 그렇게 나는 생각을 멈추고 생존하고자 했다. 당장 그가 이 집을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두 번 다시 그와 마주 볼 수 없다고 다짐했다.
난 너 없으면 안 돼
그와 연애 초 자주 싸웠었다.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첫 큰 싸움은 내가 그를 위해 유부초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고 있었던 날, 그가 무슨 유부초밥 타령이냐고 나에게 면박을 줬고 난 모든 음식을 다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 난 그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두 달 정도 만났을 때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나에게 찾아와 너 없으면 안 된다며 울었다. 난 그 말이 그의 진심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내 마음이 지금 너무 아픈 건 지금도 그는 나를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나의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배신과 상처와 실망을 주었지. 헤어지더라도 그렇게 끝이 나선 안됐었다. 이제와 아무 소용없는 생각이지만.
자연스럽게 물들어가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 줄 알았더라면 난 좀 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했을 텐데. 적어도 헤어지더라도 영영 안 본다 하더라도 그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다시 가질 수 있을 만큼만 상처 줬어야 했는데, 오늘도 여러 말들 사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너의 아픔이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