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코로나라의 앨리스씨

코로나 난민의 제주표류기 ⑨

by 연필소녀

12월이다. 2020년의 첫 달에 한국에 와서 마지막 달을 맞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아직도 꿈에서 깨지 못한 앨리스. 시계토끼를 쫓아온 게 아니라, 코로나에 쫓겨 온 이방인. 내 나라였지만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던 곳에서 한 해를 보냈다. 상처도 받고, 치료도 받고, 보호도 받고, 위로도 받으며 그렇게 일 년.


앨리스처럼 이제쯤 꿈에서 깨면 좋겠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나는 이미 만료돼버린 비자를 지푸라기처럼 붙잡고, (3차 유행으로 다시 보류된) 긴급비자의 재개를 기다리며, 동시에 언제 또 취소될지 모르는 항공표를 천국행 티켓처럼 어렵게 귀한 뒤, 이것들이 성공한 경우에! 수십만 인파의 공항을 거쳐 핵산검사 5번과 혈액검사 2번, 혈청검사 1번, (인간의 존엄성을 몇 초 훼손당하며) 항문검사 1번을 완벽히 통과하고, 14일의 호텔격리를 여전히 '음성'인 채로 마쳐야 한다.


내 삶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복잡해, 이상한 나라에 그냥 눌어 앉고 싶은 심정이다. 매일 한번 휴대폰의 전면 카메라로 만나는 남편과의 재회는 이제 기약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비유적인 봄이 아니라 진짜 봄. 날이 따뜻해지면 성난 코로나도 조금은 진정해주지 않을까. 그러면 도저히 마음먹어지지 않는 그 귀갓길도 조금은 짧아지지 않을까.


내 나이의 세대는 언제나 격동하는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있다. 유일하게 '한해 2번의 수능'을 난데없이 겪었고, X세대라고 부르는 이름이 붙었으며, IMF를 대학 졸업시기에 맞아 너도나도 대학원생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이라는 다시없을 대축제를 즐겼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국어를 성인이 되어 배웠으며, 바다 위 삼백 여명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고, 촛불의 이름으로 국민이 승리하는 시대를 맞았고, 미국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미국의 집값을 훌쩍 뛰어넘는 광경을 매일 지켜보다 못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 좀비에 습격되어 이제는 매일 감염된 숫자를 보고서처럼 받아보며 산다.


뉴노멀이라는 말이 이제와 유행이지만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지나온 날들은 격동과 변화로 점철되었다. 게다가 나는 코로나 이후로 공황장애 치료를 받으며 정말로 뉴노멀을 맞이하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애초에 내가 평화롭고 지루한 삶을 살던 앨리스씨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상하이의 내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이곳에는 이제 내 공간이 없어. 2020년 한 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라며 틈틈이 자조했건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삶이 본래 지루하고 안온한 스타일은 아니었네.


하물며 지난 열두 달도 사라져 버린 게 아니었다. 내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해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짧은 출장도 긴 여행도 가지 못했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아파 집에서만 오래 있었다고 해서 사라져 버린 삶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도 똥머리, 안경, 츄리닝의 삼합을 갖추고 프리랜서로 열심히 일했고, 성실하게 치료받았고, 공황장애 완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내 집과 내 공간이 없이 얹혀사는 삶에 꽤 적응했고, 언니 집에서 조카들에게 '바른 자세를 가르치는 과외선생'으로 나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도망쳐 온 이상한 나라에서도, 삶은 최선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게 내가 동화 속 앨리스와 다른 결말 -동화 속에서는 그 모든게 꿈이었다-을 맞는 이유일 것이다. 낯설고 불안한 코로나라에 당도한 공황장애 앨리스씨는 그저 주어진 또 다른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거니까. 여전히 깨어있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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