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난민의 제주표류기 ⑩
날이 너무 추워졌다. 창밖 풍경은 체감 온도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저 바다색과 구름만 매일 변화무쌍하다. 그런 면이 좋다. 늘 같은 모습이기도 하면서 매일 다채로운 풍경. 세상 이렇게 좋은 액자가 없다. 이 집(10개월째 얹혀사는 언니집)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제주시 시내의 남자 고등학교에서 며칠 전 한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그 학교의 확진자는 12명으로 늘어났다. 학교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검사를 받았고, 많은 이들이 검사 결과를 대기 중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지만 시내의 모든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까지 들썩였다.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같은 학원들.로 아이들은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단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시절도 있었는데, 하루 확진자가 스물여섯 명이 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작은 도시는 매일 시끄럽다. 최근의 확진자가 모두 지역 감염자고, 수험생과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학원과 학교가 몰려있는 시내에서 학원을 운영한다. 지금은 중고등학교 시험기간이라 학원이 매우 바쁜 시기. 하지만 학원은 가장 많이 피해를 볼 수도,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곳이다. 학부모들의 연이은 문자와 전화, 수업 여부를 묻는 학생들로 언니의 휴대폰에 불이 났다. 언니는 고심 끝에 일주일 자체 휴원을 결정하고, 난생처음 온라인으로 아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와중에 확진자 학생이 주말 내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우리 학원 근처의 스터디 카페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학생이 편의점을 드나들며 라면을 그렇게 먹었다.는 (청소년이라면 당연한) 소리도 들렸다. 언젠가의 상하이에서 처럼, 언젠가의 대구에서 처럼, 언젠가 서울의 사랑이 넘친다는 교회에서 처럼,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소식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정확히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 소식을 듣고, 언니와 형부는 조카들의 학원 앞 편의점 출입을 금지시켰다. 조카의 학교 또한 모든 학생을 전수검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그것과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새 턱밑까지 다가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안녕, 내 얘긴 많이 들었지?
잡혀있던 글쓰기 수업과 중국어 수업을 모두 서둘러 취소했다. 전문가들이 티비에 나와서, 지금은 '지인'이 가장 위험하다고들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위험했던 (신천지, 이태원, 사랑의 교회 등) 시기에서 내가 가장 잘 아는,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측근이 제일 위험한 시기가 되었다. 바꿔 생각하면 가장 위험한 것은 지인도 측근도 가족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이다. 내가 바로 측근이고 지인이고 친구인 존재니까. 내가 무증상 감염자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 어떤 존재일지 모르는 자신을 당분간은 집안에 묶어두는 수밖에 없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히 제주도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된다. 또한 제주에 입도하는 모든 이들의 코로나 검사가 시행된다.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만 제주도에 들어올 수 있고, 잠시 육지를 방문했던 도민들도 음성을 받아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서울의 친한 국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탁이 있다고 했다. 베프의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리셨다고 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그만큼 친한 부모님. 그분들이 확진을 받으셔서 입원을 했다. 친구의 아버님은 바로 중환자실로 가셨고, 어머님은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위중한 상태이며, 한집에서 유일하게 음성 판정을 받은 친구는 집에서 혼자 격리하며 매일 눈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자신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 아픔이 나한테까지 와 닿았다. 기도했다. 그분들과 국장님까지 모두 이 고난을 잘 넘길 수 있기를. 이런 고난이 모두에게 (내가 겪었던) 공황장애 같은 것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우리 모두에게 다시 웃는 날이 와주기를. 그리고 턱밑까지 쫓아와 친한 척하는 그것의 턱주가리를 백신과 치료제로 시원하게 날려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