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 씨, 혜연 선배

진짜 아나운서, 진짜 선배였던 동료들

by 사샤
현재 목차의 11화로 정한 <택배 기사 김재식>에는 내 기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 담길 예정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을 결심하는 데 단초를 제공했던 취재 아이템이다. 브런치 북 <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 1>의 하이라이트는 <택배 기사 김재식>인 셈.
대망의 하이라이트로 진입하기 전에, 강원도 C 방송국에서 만났던 귀한 동료들 이야기를 번외 편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원래 계획에는 없던 글이다. 하지만 브런치 북 연재를 매주 이어 가며, 그래, C 방송국 때 직업 생활을 말한답시고 이분들 이야기가 빠지는 건 말이 안 되지, 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 회사 동료들에 대한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요즘, 그때의 동료들이 유난히 그립다.



이 글에 등장하는 내 동료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기자로서든 그저 한 인간으로서든 제대로 들어보고 말하지 못했던 과거를 뒤늦게 반성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세상의 구분 짓기에 굴복해 나와 너, 서로의 동료 자리를 벗어나버린 현재를 원망한다. 내 마음속에 맴돌고 있는, 동료였던 이들의 실명을 오늘에서야 하나씩 떠올려본다.



# 지희 씨


“박사샤 기자님.” 발아래 틀어놓은 난로에도 항상 춥게만 느껴지던 보도부 사무실에 한 줄기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희 씨였다. 2019년부터 강원도 C 방송국 취재기자로 일할 당시 지희 씨는 이곳 아나운서였다.


“오늘 F 대학 뉴스는 이런 내용인 거죠? 앵커 멘트도 이렇게 갈까 하는데 어떠세요?”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동태처럼 된 내 눈을 바라봤다. 막내라는 이유로 야근과 주말 근무는 1순위로 맡고, 수시로 선배들 눈칫밥을 먹어가며 만성 피로에 시달리던 어느 찰나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와 촬영기자를 비롯한 동료들이 만든 이 뉴스를 시청자에게 성심성의껏 전달하려는 아나운서가 내 눈앞에 있었다. 지희 씨가 있었다.


그때 나는 F 대학교라는 지역 대학의 사학 비리를 3년째 추적하고 있었다. (F 대학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5화 참고.) 지희 씨는 내가 쓴 F 대학 기사를 좋아했다. 몇 안 보이는 “뉴스 같은 뉴스”라면서 말이다.


정해진 방송 시간만큼 매일 뉴스를 ‘때워야’ 하기에 일정 수준 “뉴스 같지 않은 뉴스”는 불가피했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뉴스로만 방송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였다. (뉴스 같지 않은 뉴스란, 소중한 공공재인 전파를 통해 굳이 시청자들에게 이 뉴스를 알려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모든 뉴스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시청자들도 ‘딱’ 보면 아는 그런 뉴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뉴스가 뉴스 같든 그렇지 않든 간에, 아무 고민 없이 기자가 써놓은 앵커 멘트를 말 그대로 읽기만 하는 아나운서들의 등장. 그날 앵커로서 책임진 뉴스들을 숙지하고, 최대한 쉽고 적확한 표현으로 진행 원고를 정리하고, 강조해 읽어야 할 지점까지 확인하는 아나운서는 일하면서 딱 한 명밖에 못 봤다. 바로 지희 씨.


“방송국이라는 몇 안 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는 막내”라는 수많은 의아함 속에서 내 결정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 몇 안 되는 동료 역시 지희 씨였다. 내가 세상에 내놓을 “뉴스 같은 뉴스”를 기대해 줬다.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회사 근처 카페 안의 온기가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내가 퇴사하고 얼마 있지 않아 지희 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아무도, 심지어 본인조차도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지 않았다. 프리랜서 계약 기간이 끝나자 모두의 예상대로 지희 씨는 앵커 자리를 떠났다. 지희 씨의 또렷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로 F 대학 뉴스가 방송을 타던 그 시간들이 가끔씩 그립다.



# 혜연 선배


C 방송국으로 발령받은 뒤 수습기자로 맡은 첫 업무는 경찰서를 도는 것이었다. 새벽 6시쯤 D 경찰서에 가서 전날 당직 근무를 하고 졸고 있는 형사들을 한 명씩 깨워 “특이사항 없었나요?”를 외치는 일이었다. 밤새 D 지역에 사건 사고가 없었는지, 예컨대 화재나 변사자 발견 같은 일은 없었는지 알아내서 6하 원칙에 따라 사건 개요를 정리해 사수 선배에게 보고해야 했다. (경찰서 마와리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4화 참고.)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걱정하던 차에, 사수 선배가 경찰서 첫날은 혜연 선배와 다녀오라고 했다. 다음날 잠결에 만난 혜연 선배는 능숙하게 형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엉거주춤하고 있는 나를 자연스럽게 그들과 인사시켰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사건 사고 여부까지 확인하고서 혜연 선배는 운전을 못하는 나를 차에 태워 회사로 향했다. 혜연 선배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렇게 다행인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혜연 선배는 육아 휴직을 간 취재기자를 대신해서 온 ‘대체 인력’이었다. 1년만 있다 갈 사람이라고 여겨서였을까. 다른 정규직 선배들은 취재기자 업무가 처음인 혜연 선배에게 차근차근 일을 가르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가 성장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되려 귀찮거나 힘든 일을 혜연 선배에게 미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기자를 데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경찰서에 갔다 오라는 식의 업무가 대표적이다. 산불이 나거나 폭설이 내리는, 사람들이 죽고 다친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도 그는 떠밀렸다. 막내 기자였던 나와 교대로 밤을 새우고 주말에도 일하고 피폐해져 갔다. 은은한 빛이 돌고 하얗던 혜연 선배 얼굴에 날이 갈수록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하지만 혜연 선배는 늘 웃었다. 그렇게 보였다. 그는 다른 선배들과 싸우지 않았다. 부당하든 온당하든 그 어떤 일이 떨어져도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소주 한 잔을 원샷하고 바로 선배에게 잔을 드리며 한 잔을 다시 채우는 일명 ‘잔 돌리기’가 횡행하던 회식 자리에도 그는 개근이었다. (다시 인연이 닿아 선배를 만나게 된다면 여쭙고 싶다. 웃을 수밖에, 씩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지.)


나는 아니었다. 회식 중에 잔 돌리기 장면들을 마주하면서도 꿋꿋이 모른 척했다. 부장이 무관심하다 못해 싫어하는 듯한 노동 분야 취재를 사실상 방해받을 때도 거침없이 싸웠다. “이 기사는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것”이라고 목소리 높이며 부당한 지시에 항의했다. 정규직, 심지어 대기업 정규직인 내가 설마 잘리기야 하겠냐는 알량한 믿음이 있어 그랬던 걸까.


이런 내 옆에 오직 혜연 선배만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샤 씨의 색깔을 잃지 말라”면서.


혜연 선배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서 다른 선배들은 “육아휴직 간 사람보다 혜연 씨가 훨씬 낫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댔다. (놀랍게도 그들의 말은 솔직히 사실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혜연 선배 자리에 복직한 선배가 출근하기 시작했다. 장칼국수를 좋아하던 부장에게서 벗어나 혜연 선배와 떡볶이를 먹으러 가던 점심시간이 한동안 눈물 나게 그리웠었다. 함께 밤바다를 거닐며 ‘그래, 여기가 강원도였지’를 되뇌었던 어떤 날도.


육아휴직 대체 인력 동료들을 ‘육휴’나 ‘육대’라고 줄여 부르며, 은근히 무시하는 전 회사 동기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같은 기수로 묶여있는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이별을 고한다. 나에게는 기수가 없는 혜연 선배만이 동료였을 뿐이다.


혜연 선배 덕분에, 오늘도 꿋꿋이 내 색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처: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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