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신겨주는 그 발(foot) 맞아요
왼쪽에 있는 너, 오른쪽에 있는 너야. 내 얘기 좀 들어봐. 너희 바닥마다 움푹 팬 거기, 바닥 안쪽에 아치 부위 있잖아. 요즘 종종 쑤시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지난달 휴일 언제더라? 유산소 운동을 너무 안 해서 계속 살이 찌나 싶었었지. 그래서 남편 꼬셔서 한강 공원에 갔었잖아. 그리고 발견했지. 사지가 균일한 속도로 왔다 갔다 하며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나도 그들을 뒤따라 달렸었어. 다 너희들 덕분이었지.
별생각 없이 뛰기만 했지, 무사히 뛰기 위해 너희를 건강하게 단련시킬 생각은 솔직히 못 했다. 사무실 의자 밑에 발난로를 두고, 그 앞에 너희를 놓고서 추위를 녹여주는 게 전부였지. 그러니 경보보다 조금 빨랐던 달리기 한 번에 너희가 지금도 고통스러운 거겠지. 본격적인 이야기하기 전에 사과부터 할게. 미안했다. 앞으로는 잘할게, 진짜.
실은 아파하는 너희들을 보다가 지현 씨가 떠올랐어. 너희들이 있지만 그저 있었던 내 친구, 기억나지? 강원도에서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지현 씨를 알게 됐지. 그때 우리 회사 코앞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었잖아. 걸어서 1분 거리였어. 거기서 일하는 장애인 활동가였던 지현 씨와 가끔 중앙시장 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셨었지.
전동 휠체어를 탄 지현 씨는 너희들 속도에 맞춰 평소보다 천천히 걸어가곤 했어. 그의 발이었던 휠체어 바퀴, 배려심 가득했던 그 친구들. 참 멋졌었지. 그런데 이 친구들이 수시로 난관을 만났었잖아. 인도에서 발목 높이의 연석을 만났을 때고 그렇고, 가게 문 앞에 턱을 마주할 때면 바퀴 발은 걷지 못했어. 울퉁불퉁한 길과 경사로가 없는 어딘가에서 지현 씨의 진짜 발은 땅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못했어.
지현 씨와 저상버스 타러 간 날 기억나지? 여기에 촬영기자 동기(지금 우리 남편이잖아.)와 촬영 보조 동료까지, 넷이서 설레는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갔었지. 착잡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지현 씨는 저상버스를 기다렸어. 휠체어가 버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문에서 스르륵 나와야 할 발판은 아무리 기다려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지. 지현 씨는 버스 기사에게 물었고, 기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으며, 승객들은 지현 씨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었어.
강원도 D 지역의 저상버스 중 절반 가까이가 발판이 작동하지 않는 등 고장 난 것으로 확인된다는 뉴스를 내보냈어. 그와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뉴스였지. 전파를 탄 1분 30초, 이 시간 곱절의 곱절만큼 그의 바퀴 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간절한 바람에도 잘 되지는 않았다. 서울로 이직한 지 4년이 넘어 가지만 그의 발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너희도 발이니까 이런 내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려나.
그나마 다행인 건 지현 씨가 운전을 한다는 거였는데, 한 번은 남편이랑 지현 씨 차를 얻어 탔잖아. 그때 “놀라지 마세요”라고 했던 지현 씨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
휠체어에서 내려 몇 초 동안 그가 발로 땅을 디딘 걸 봤지. 그의 키는 초등학교 저학년생 정도였던 것 같아. (그는 선천적 장애인이거든.) 일어선 모습을 본 적이 없기도 하고, 그가 갑자기 휠체어에서 내려올 줄은 몰랐어서 내심 (사실은 깜짝) 놀랐었어.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운전석에 앉아 능숙하게 D 역으로 또 다른 바퀴를 굴리는 그를 보며 진심으로 놀랐었지.
그런데 있잖아. 지현 씨는 왜 “놀라지 말라”고 했을까. 왜 내가 놀랄 거라고 생각했을까. 비장애인처럼 걷지 못하는 발, 비장애인 성인 남성 평균에 못 미치는 키, 비장애인의 모습처럼 운전할 수 없는 그의 몸을 내가 어떻게 바라볼 거라고 짐작했던 걸까.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의 언행이 언젠가 그에게 닿았던 건 아닌지, 뒤늦게 고민해 보고 있어. 그와 보낸 시간들을 머릿속에서 아찔한 마음으로 돌려보고 있어.
너희도 알지? 발뒤꿈치부터 시작해 앞꿈치가 닿았다 떨어지면서 회사와 학교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걸어온 나 역시 지하철 선로 앞에 서 있어. 나처럼 지하철을 타려는 것뿐인데,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위협을 받는 휠체어 장애인들도 옆에 있지. 바퀴 모양인 그들의 발은 너희와 다르게 생겼지만, 사실은 똑같아. 똑같은 발이야.
기억해. 지현 씨의 바퀴 발들과 너희가 나란히 걸었던 그날을. 바로 그날, 직립 보행하는 사람들로 꽉 찬 버스에 끼어 있는 지현 씨가 걱정이 돼서 묵묵히 휠체어 뒤를 버티고 있던 너희들도 물론 기억해. 그래, 우리는 바퀴 발과 같이 걷자. 바퀴 발이 세상 어디든 힘들이지 않고 다 걸어 다닐 그날까지 꼭 함께 하자.
그래서 언젠가, 지현 씨의 바퀴 발과 너희가 나란히 바꿔나갈 험지들을 취재할 때 지치지 않도록, 나는 너희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줄게.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 한번 더 달려보는 거야, 오케이? 거절은 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