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사 1명

협박 전화도 받았지만 취재할 수밖에

by 사샤

의도한 결과든 아니든 간에, 기자라면 아마도 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게 되는 분야가 하나쯤은 다들 있을 것이다. 내게는 노동 분야가 그렇다. 지금 회사 안에서도 동료들에게 나는 ‘노동 전문 기자’로 통한다. 말이 전문 기자지, 실제로 내가 노동 분야에 특출난 전문성을 가진 기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노동 분야 기사를 주변 기자들보다 많이 썼고 조금 더 깊이 있는 보도를 하려고 노력해 왔기에 붙여진 별명이랄까. 이 별명으로 불리기를 의도한 적은 없다. 우연치 않게, 어쩌다 보니 그 계기가 어느 날 찾아왔을 뿐이다.


6년 전 막내 기자였던 나의 주 업무는 하루 동안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챙기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일으킨 사건 사고들, 가령 화재나 교통사고 그리고 범죄 사건 등의 내용을 6하 원칙에 맞춰 파악해야 했다. 막내 기자가 경찰서와 소방서를 출입하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이런 사건 사고를 신고 받아 처리하는 곳이 경찰서와 소방서이기 때문. (경찰 기자, 소방 기자의 일상을 엿보고 싶다면 4화, 6화 참고.) 경찰과 소방을 취재해 확인한 사실들을 부장께 보고하고, 필요하다면 기사를 작성해 보도까지 책임지는 게 당시 내가 맡은 임무였다.


2019년 12월이었다. 소방을 통해 사망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됐다. 강원도 A 지역의 시멘트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6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20미터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는 것. 사망 사건은 단신 기사로라도 무조건 기사를 써야 한다. 사람이 죽은 것만큼 크나큰 피해는 없으니까. 급하게 소방과 경찰에 전화를 돌려 단신 기사부터 썼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건 현장에 가봐야 했다. 현장이 사라지기 전에,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나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산업 재해로 노동자가 숨진 사건을 한 번도 제대로 취재해 본 경험이 없었다. 사건 관계자들에게 무엇을 묻고 어떤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지 감이 서지 않았다. 선배들 중에도 산재를 포함해 노동 분야를 꾸준히 취재해 온 분이 전무했다. (참으로 원망스러웠던 부분. 나중에는 거꾸로 선배들이 노동 분야 취재를 할 때 내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오곤 했다.) 그때 힘을 실어준 사람이 훗날 남편이 된 촬영기자 동기였다. 전 회사에서 이미 산재 취재를 숱하게 해온 그는 이 사건을 단신 기사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들 대다수가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도 모르는, 그렇게 아무도 관심 갖지 않게 될 누군가의 죽음을 나는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용기를 냈다. 다음 날 취재 팀을 꾸려 현장으로 갔다. 사건이 터진 시멘트 공장에 도착했다. 원청업체 관계자들은 사건 현장 공개를 거부했고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하던 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동안 화재나 교통사고 취재한 것처럼 우선 6하 원칙에 따른 사건 개요부터 재확인. 경찰과 소방, 하청업체 관계자와 사망한 노동자의 동료들, 노동조합, 노동 전문 변호사 등에게 기초적인 내용부터 묻기 시작했다. 취재원들 답변에서 궁금한 것들이 생기면 꼬리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취재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자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보였다.


사망한 노동자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원청업체. 하지만 이를 감독해야 할 원청업체 안전 관리 책임자가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경찰. 사망 원인을 개인의 과실로 몰아가는 원청업체에 분통을 터뜨리는 유족. 여기서 더 나아가, 사건이 난 그날, 숨진 노동자가 사실상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취재가 이뤄졌다. 이 뉴스는 강원도 지역에만 보도되는 지역 뉴스가 아닌 전국 뉴스로 보도됐다. (방송국들이 저녁 8시, 9시쯤 내보내는 메인 뉴스로 보도된 것.) 전국 뉴스, 이 또한 처음이었다. 엉겁결에 산재 보도로 전국 방송에 데뷔한 지역 기자가 됐다.


원래도 나는 사망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문제보다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을 파헤치는 게 기자의 본령이라고 생각해 왔다. (브런치 북 <요가하는 기자> 7화 참고.) 이 시멘트 공장 추락사 사건을 계기로 내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고나 할까. 각종 노동 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왜 끊임없이 나오는지, 이 구조적 원인을 뿌리 뽑을 대책들이 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지 등을 파헤치게 됐다. 보도 이후 업체 관계자로부터 협박 전화도 받았는데도 참, 이렇게 됐다.


거의 “죽이겠다” 수준의 협박이었는데, 잔뜩 겁먹은 채로 이 사실을 부장한테 보고하니, 건장한 성인 남성인 촬영기자 동기를 나만의 보디 가드로 임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정말로 그는 매일 내 자취방 건물 문 앞까지 날 데려다줬는데(이때는 사귀는 중이기도 했다.) 그 없이는 심장이 떨려서 혼자 퇴근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참, 노동 분야 취재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요즘도 한 노동자의 죽음을 취재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업을 오래도록 마음껏 할 수 있게끔, 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염원이 이 죽음에도 담겨 있다. 그와 같은 염원을 가진 노동자들이 오늘도 이를 악물고 자신들의 업을 지키기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옛날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 이름처럼 노동 현장이란 곧 삶의 현장이기에, 업은 곧 내 일부이기에, 나 역시 노동자이자 직업인으로서 노동 분야 취재를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참고로 <체험, 삶의 현장>은 유명 연예인들이 전국 노동 현장을 찾아 일일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테면 영화배우 B 씨의 동해안 방어 잡이 어부 체험 같은.)


따라서 오늘도 파이팅, 을 외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은 없는 것이다.


9ec726aad94a469dd7048afed900db41.jpg 이게 바로 체험 삶의 현장. 굴뚝 청소부로 일했던 박신양 배우 편 (출처: https://extmovie.com/movietalk/86053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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