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 이렇게 설렐 일

열려라 참깨, 그날이 그립다

by 사샤

기자 일을 하며 이때처럼 명치끝이 간질간질한 날이 앞으로 올까. 단언하기 어렵다. 그만큼 설렜다. 단순히 특종, 소위 ‘단독’ 기삿거리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랜 세월 아무도 가보지 않은 현장. 그 현장에서 나만이 발견할 수 있는 문제들을 직접 확인한 그 순간. 기자가 되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내 이 업을 성취한 스스로가 대견했다. 기뻤다.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재밌었다. 오늘은 설렘 수치가 최고조였던 그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강원도 D 지역의 방송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여느 수습기자와 마찬가지로 경찰서와 소방서를 담당하게 됐다. (D 경찰서 이야기는 4화 참고.) D 소방서는 내 출입처였다. 새로 온 출입 기자라고 인사드리려고 D 소방서장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널찍한 사무실에 놓인 갈색 가죽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D 지역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과 지역 소방관들의 고충들…. 그러다 넌지시 D 소방서장은 한 터널을 말했다.


하루 사이 수천여 명의 탑승객이 지나는 철도 터널. 20km가 넘는 이 장대 터널에 화재가 발생할 시 물을 끌어올리는 송수관이 1km가 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수백 명의 승객을 화재 현장에서 대피시키는 데 쓰일 유일한 인명구조 차량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리어카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터널과 유사한 해외의 산악 철도 터널에서는 이미 대형 화재로 150여 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던 터. 두려웠다. 좌시할 수 없었다. D 소방서장의 제보 내용을 확인해봐야 했다.


그러나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터널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를 취재하고, 관련 공문서와 각종 터널 연구 자료 등을 수집해 숙지하고,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렴 터널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는 걸! D 소방서장 말대로 화재 진압에 사용될 연결 송수관 길이가 정말 몇 백 미터 정도로 짧은지, 터널에 배치된 인명구조 차량이 실제로 승객들을 구조하기에 턱없이 부실한 장비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문제는 철도 터널이 국가기반시설이라 언론사를 비롯한 외부 관계자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있다는 것. 방법을 찾아야 했다.


특별한 대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철도 터널을 운영하는 코레일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터널 출입은 물론 내부 촬영 허가까지 있어야 하는 상황. 매일의 뉴스들을 소화하는 와중에 짬짬이 코레일 쪽에서 요구하는 복잡한 절차들을 밟았다. 거의 보름 동안. 취재 목적과 내용, 들고 갈 장비 등을 세세하게도 묻는 코레일에 수차례 답변을 보내며 이래서 과연 터널에 들어갈 수 있겠나 싶었다. 기대를 내려놓고 거절당할 준비를 천천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코레일의 허가 결정이 떨어졌다! (이 문장부터는 모든 문장의 마지막에 느낌표를 찍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명치 부근에 정체 모를 감각이 느껴졌다.


나의 부족한 글 실력 탓에, 그날의 기억과 감정과 분위기 같은 것들을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시각. 하늘이 새까맣던 새벽 시간에 나와 동료들이 회사 차량에 탄다. 앞선 코레일 차량을 뒤따라 터널로 향한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국내 최장 길이의 산악 철도 터널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 그 자체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하는 중에 창밖으로 터널까지 몇십 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본다. 명치끝이 간질간질하다. 길잡이 차량이 멈춰 서고, 차에서 내린 코레일 직원들이 굳게 닫혀 있던 회색 콘크리트 터널 문을 연다. 열려라 참깨.


문이... 열린다! (출처: freepik)

보인다, 터널이. 터널이…. 보인다! 선로가 있는 터널 내부까지 들어가려면 차를 타고 계속 가야 한다. 회사 차량 조수석에 앉은 촬영기자 동기(아직 사귀기 전의 남편)가 영상취재용 ENG 카메라를 어깨 위에 걸친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오른쪽 눈을 밀착시키고 터널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본격적으로 터널 취재를 시작한 동기를 보며 속이 울렁거린다. 회사 차량 바퀴가 움직이며 열린 터널 문으로 우리는 함께 통과한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D 소방서장이 말한 터널 내 소방 시설이 설치돼 있는 터널 깊은 곳으로 빠르게 나아간다. 이제 곧 그것들이 존재함을 나의 온 감각기관을 동원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 앞으로 5분 뒤…! 설렘이란 것이 폭발하고 있다. 우리는 이 터널이 개통된 이래, 터널 내부를 촬영한 첫 기자들이었다.


마침내 확인했다. 터널 규모에 비해 심각하게 부족한 소방 시설의 실체를 마주했다. 말로만, 자료로만 “그게 있다더라”했던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시 또 오기 힘든 소중한 현장이었다. 나와 남편(당시 촬영기자 동기)과 동료들은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쩌면 나만 가라앉히면 됐을 그것.)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해냈다. 취재는 3시간 넘게 이어졌다. 동이 트고 있을 무렵 터널을 빠져 나왔다.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평생.


현장에서 복귀해 추가 취재를 거쳐 확인한 문제들을 보도했다. 소폭이었지만 보도를 계기로 소방과 코레일 측의 변화가 이뤄졌다. 그렇게 총 4번의 보도를 할 수 있었다. 내게는 지금도 하나하나 귀한 기사들이다.


이래서 문제다, 저래서 문제다 류의 뉴스를 하려고 할 때 그 문제가 진정 존재하는지조차 기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는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7년 차 기자임에도 여전히 해보지 못한 뉴스가 너무 많기에 잘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결국 그 문제가 존재함을 나 혼자 확인했을 때,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뉴스를 보도했을 때 뿌듯함은,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자주 경험하기는 어려운 감각이 아닌가 싶다. 그날이 그립다. 다시금 그날의 설렘을 느끼고 싶다.


"숨겨져 있는 비밀과 저 멀리 너를 찾아서 무한 터널" (출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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