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계란

계란아 고맙다 보고 싶어요 반장님들

by 사샤

나는 역시 기자가 안 맞다고, 7년째 이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성격이다. 기본적으로 기자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니까. 그중에도 기사가 되는 이야기란 대개 사람들이 말하고 싶지 않은, 특히 기자에게 ‘흘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그놈의 MBTI에서 대문자 ‘I’를 맡고 있는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용을 써서 사람을 만났어도 그가 숨기려는 속얘기를 끄집어내려면 소위 ‘라포’를 형성해야 하는데 즉, 친해져야 하는데 원래가 친구도 별로 없는 내게 이렇게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기자, 설령 되더라도 할 수 있을까?


이미 몇 년째 품고 있는 고민이었다. 대학 신문사, 이후 주간지 인턴기자 시절에도 사람을 상대하고 일종의 ‘영업’을 해야 하는 이 일이 꽤 자주 버겁게 느껴졌던 터. 기자가 되더라도 큰일이다, 라는 마음으로 25살의 나는 특목고 입시와 대학 입시보다 훠얼씬 더 고단한 취업 관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삼키며 우직하게 버틴 2년 여 끝에 “C 방송국 지역권 취재기자에 최종 합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먼저. 그다음, 기자가 됐다는 기쁨이 스쳐간 뒤에는 ‘오 마이 갓. 이제 어떡하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와리’라는 말을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빙빙 돈다는 뜻의 일본어다. 대다수 직업마다 그 직업인들만 쓰는 은어가 있을 텐데, 이 언론 판에서 마와리가 그렇다. 포털 국어사전에 마와리를 검색하니, 놀랍게도 ‘기자들의 은어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를 도는 일’이라고 나온다. 국어사전에 수록될 정도로 유명해진 마와리, 나도 했다. 2019년 2월, 강원도 D 시에 위치한 D 경찰서 앞. 그곳에 내가 있었다.


오전 6시. 안 그래도 인구 소멸이 쏜살같이 진행되고 있는 D 지역에서 이 새벽은, 길거리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경찰서 건물은 도대체 몇십 년 전에 지어진 건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시각에 경찰 한 명 지나지도 않으니 꼭 개점 휴업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큰 탈 없이 산 덕에 인생 처음 경찰서에 발을 디뎌 보는 오늘. 지난밤에 사소한 사건사고는 없었는지, 1시간 안에 확인해 사수 선배께 보고해야 하는 엄중한 미션을 부여받았다.


띵~동. 형사과 사무실의 빨간색 동그라미 초인종 버튼을 누른다. 자동문이 열리고 형사 한 명이 눈을 비비며 걸어 나온다. “이번에 입사한 C 방송국의 박사샤 기자라고 합니다. 간밤에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지난밤 D 지역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를 해결했을 그 당직 형사의 머릿속에는 내게 말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을 테지만,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다만 귀찮다, 성가시다 등의 단어들이 그의 얼굴에 비칠 뿐이다. 감사하게도(?)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고 형사과 사무실에 들어선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을 정도로 수습기자들을 쫓아내는 경찰들도 많다고 들었다. D 경찰서 형사님들, 고마웠어요.)


비교적 너그러운 경찰이었던 그들은, 대신 티끌만큼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다들 비몽사몽이다. 하긴, 한숨도 못 자고 밤새 일했는데 얼마나 피곤하실까.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꼰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팔짱을 낀 채로 선잠에 든 형사들 얼굴을 한 명씩 살펴본다. 도저히 털끝 하나 건들 자신이 없다. 솔직히 형사들이라고 하니, 어린 마음에 뭔가 조금 무섭기도 하고. 괜히 기세에 눌린 나는 절간보다도 조용한 그 공간을 서성이며, 그나마 곧 눈 뜰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앞에 멈춰 서서 빤히 쳐다보기를 택한다. 아무래도 팀원급 형사님들보다는 팀장님, 과장님, 계장님들 위주로 잠을 깨워보려고 한다. 어느 조직이든 윗사람들이 총대를 매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허허)


D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에 홀로 선 나 자신 (출처: 뽐뿌 커뮤니티)


꿈뻑꿈뻑. 속눈썹끼리 스치는 자그마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 눈동자가 움직인다. 슬금슬금 다가가 그에게 레이저를 쏘며 이렇게 말한다.


“저… 팀장님.”

“(깜짝 놀라며) 어, 아이고. 아, C 방송국 수습기자라고요? 없어요.”

“네?”

“(약간 신경질을 내며) 별일 없었다고요.”


끝났다. 대화. 3초나 흘렀을까. 진짜 아무 일도 없었냐고, 어제 몇 팀이 당직 서신 거냐고, 다 알려주실 수는 없더라도 뭐라고 보고할 거리 좀 주시면 안 되냐고, ‘뭐라도 걸려라’는 마음으로 별의별 이야기들을 내 쪽에서 쏟아내지만 소득은 없다. 실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쪽인데. 하지만 보통은 이런 식이었다.


방금 전 ‘3초 대화’로 잠이 깬 듯한 다른 형사님들께 빠르게 접근, 똑같이 질문하고 똑같이 고배 마시기를 반복한다. 안달이 난다. 보고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때부터는 부끄럽고 머뭇거리고, 이런 감정들은 사치스러워진다. 한 명씩 붙들고 애걸복걸하다 저 이러다 회사에서 잘려요, 이런 말도 뱉어봤다가 회사 다니기 미치게 힘들다고 급작스럽게 징징거리다 보면 가끔씩은 “아이 참, 어제 변사 사건 하나 있었어요. 됐죠?” 류의 뜻밖의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그 즉시 나는 한 마리의 거머리가 돼 실마리를 던진 그에게 찰싹 붙어, 사건 파악을 위해 6하 원칙에 따른 질문들을 끈질기게 이어간다.


“이 정도 알려줬음 됐잖아요. 저 어제 한숨도 못 잤다고요.”

“반장님, 정말 정말 정말 죄송해요. 딱 한 개만 묻고 나갈게요. 진짜요.” (‘반장님’ 호칭 설명은 글 하단 참고.)


아직 질문할 줄도 잘 몰라 물은 걸 또 묻고 있는 수습기자 박모 씨. 박 씨에게 질릴 대로 질린 형사들은 사건의 실마리를 흘린 것을 그새 후회하는 듯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일은 해야겠으니까. 민폐라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 애초에 이 상황조차 자주 벌어지는 종류가 아니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반장님들 눈치를 덜 보면서도 내 보고거리는 챙길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순식간에 D 경찰서에 “C 방송국 수습기자가 요즘 마와리를 돈다더라”는 소문이 쫙 퍼졌고, 수순대로 형사들을 책임지는 E 수사과장님께 인사를 드리게 됐다.


“밤 꼴딱 새우고 아침까지 일하는데, 배고프잖아요. 삶은 계란 같은 거 주면 좋아할 거예요.”


삶은 계란? 나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과장님 제안의 핵심은 형사님들께 “먹을 걸 주라”는 것.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만렙’ 경찰 E 수사과장. 나 같은 초짜 기자들을 수십 년째 봐 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직 형사들 대하기를 힘들어하는, 자식뻘인 이들의 고충도 수십 년째 듣고 있겠지.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어떤 수습기자에게 말씀하셨을 그 제안을 과장님은 내게도 건넸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오랜 세월 직접 겪기도 하고, 가까이서 지켜봤을 그의 의견을 소중히 받아들였다. 나는 그날부로 자취방 냉장고에 구운 계란을 두 판씩 사두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나 먹을 것 차리기도 버겁던 때였다. 지금은 남편이 된 촬영기자 동기와 매일 밖에서 술과 안주로, 어쩌다 집에 와서는 냉동 닭가슴살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웠었다. 계란 삶을 여유는 없었다. 대신 구운 계란을 한두 개씩, 다이소에서 산 소형 비닐봉지에 조심스레 넣었다.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 싸놓은 계란 봉투들을 챙겨 택시를 타고 어김없이 경찰서로 출근했다. 반장님들 잠을 깨우기 전에 구운 계란부터 내밀었다. 고개를 떨구고 쪽잠을 주무시는 몇몇 반장님들 앞에는 구태여 인사드리지 않고 계란들을 두고 갔다. D 경찰서에 또 다른 소문이 났다. 내 별명이었다. 바로 계란.


“오, 계란!”

“어, 박 기자! 지난번에 두고 간 구운 계란 잘 먹었어.”

“오늘도 계란 갖고 왔어? 하여튼 대단해. 진짜 계란 기자야, 계란 기자.”


이런 반장님들 반응에 다른 것들도 사봤다. 개별 포장돼 있어 한 분씩 드리기 편한 박스형 과자나 할인 중인 초코 바, 에너지바, 비타민 음료수 등을 대량 주문했다. 이고 지고 싸서 새벽마다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로 성실하게 배달했다. 계속 얻어먹기만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언젠가부터 반장님들이 나를 먼저 찾았다. 간밤에 있었던 사건사고를 정리한 문서를 보여주시며 “얼른 적어 가서 보고하라”고 한 날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요즘도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밤 사이 벌어진 사건사고가 아니어도 최근 D 시에서 발생한 특정 일에 대해 “한번 알아보라”며 제보도 하셨다. 남편과 주말 부부시고 딸만 둘이며 형사 한 지는 얼마나 됐고…. 시시콜콜한 사적인 이야기들도 스스럼없이 나누다 보면 벌써 회사에 복귀할 시간이 됐다.


그 시절 추억의 구운 계란 (출처: 쿠팡)


수습 기간 3개월이 끝나고, 새벽에 꼭 경찰서를 가지 않아도 되는 시기를 지나, 이제 더는 경찰서를 출입하지 않는 현재 회사로 이직한 뒤로는 취재를 위해 구운 계란을 사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려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렇게까지 노력한 적이 요즘 있었나 싶다. 구운 계란이 만들어준 라포, 구운 계란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그 사람들의 그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지금껏 이만큼 기자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을 거라 확신한다. 여전히 사람이 어렵고 듣는 게 어렵지만, 정작 나는 먹지도 않는 구운 계란들을 새벽마다 챙겨가던 수습기자 때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기자로서 나는 못할 것이 진정 없는 것이다. 오늘의 박사샤 기자를 존재하게 해 준 D 경찰서 반장님들과 E 수사과장님, 수십 판에 달하는 구운 계란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는 바다.



형사님 = 반장님?

나는 경찰·소방관은 과장, 팀장 등 직책이 있는 분들 제외하고 다 반장님이라고 불렀다. 경찰·소방관들끼리도 서로를 “박 반장”, “김 반장”이라고 부르시기에 “저도 반장님이라고 불러 드리면 될까요?”라고 여쭤봐서 직접 확인한 호칭이다. 참고로 기자들은 ‘선수’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 그리하여 나도 종종 ‘박 선수’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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