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련의 사건들에도 결국 기자가 된 나
지금이야말로 사직서를 던질 때인가, 라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됐다. 12년 정도? 현직 기자로 명함을 판지가 7년 째지만 사직서는 그전부터 내 품에 있었다. “개인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합니다”라고 쓰인 사직서 문서 파일에 내 이름을 적고 그대로 출력해서 매일 들고 다니던 L자 파일 맨 앞에 넣어 뒀었다. 21살이었다. 학과와 학번까지 적힌 사직서. 그때 나는 학보사 편집장이었다.
애초에 편집장이 될 연차가 아니었다. 당시 대다수 대학들의 신문사 편집장은 3~4학년이 주로 맡았다. 나는 2학년이었다. 나이야 뭐, 수능을 3번이나 봤으니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 언론 판에서 나이가 뭣이 중한가. 경력은 이제 1년, 기사 비슷한 것들을 겨우 써봤을 뿐이었다. 공교롭게 편집장을 해야 할 3학년 선배들은 군 입대 등의 이유로 전부 퇴사한 상황. 방법이 없었다. 학보사 문을 닫지 않으려면 남은 후배 기자들 중에 편집장을 뽑아야 했다. 어쩌다 편집장 ‘대행’이 된 배경이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라 추억이 된 건지, 아니면 너무 힘들었던 시간들이라 뇌의 망각 회로가 부단히 작동한 탓인지 기억이 잘 안 났었다. 이 글을 쓴다고 예전 기록을 찾아보다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알게 된 충격적 사실 하나. 2014년 그해 내가 한 유명 온라인 매체와 짧은 인터뷰를 했었더랬다. 그 현직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나 자신은 당차게도 이렇게 답했단다. 다음은 해당 기사에 실린 내 답변을 간추린 것이다.
박사샤 B 대학 신문사 편집장은
“학내 소식이 담기는 보도 지면을 두고 학교 측과 마찰을 빚어 왔다.
또다시 마찰이 벌어진다면
제작 거부 등을 통해 강경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 신문사(학보사)는 기본적으로 학교에 소속된, 학교 예산을 받아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학교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학년 짜리 편집장 대행과 그의 동기 기자들 5명으로 구성된,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어버린 학보사였으니 ‘급’ 만만해 보였을까. 내가 편집장이 되자 학보사를 총괄하는 교수와 교직원 즉, 주간 교수와 편집편성국장은 기사와 지면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학교를 비판하는 기사가 많다. 학교에 우호적인 기사를 써서 균형을 맞춰라. 우호적인 기사를 1면에, 지면 상단에 배치하라” 등의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집요하게, 강압적으로. 편집권 침해였다.
한 학부의 전임 학생회장이 학생회비를 불투명하게 관리한 정황을 확인, 이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배치하기로 했는데 마감일 밤 주간 교수가 돌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신문 발행일이 당장 내일이었다. 심지어 편집장이 돼 처음으로 만든 개강호 신문의 대표 기사였다. 믿고 의지할 선배 하나 없이, 겁에 질린 기자들이 나만을 쳐다보던 그날. 그대로 이 현실 세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도 신문은 나와야 했기에, 대학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우리의 기사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발행일은 미뤄졌다.
그저 스승인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신문 발행 전날 기사 삭제를 통보하는 주간 교수. 우리의 고생을 알아줄 거라 믿었던 학보사 출신 선배였는데, 단체 행동을 하려는 기자들에게 “편집장만 나오라”고 엄포를 놓는 편집편성국장. 나만이 학보사를 대표해 연 이틀을, 그 새까만 어른들을 상대로 속이 새까매지도록 떨면서 설득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기사 빼면 편집장 그만두겠다”고 내 딴에도 엄포를 놓으며 어찌어찌 타협점을 찾고, 늦었지만 윤전기가 돌아가 신문이 배포되고, 총학생회 중심으로 각 학과·학부 학생회비 명세가 체계적으로 공개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이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형식을 갖춘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래도 편집장이라고, 동기 기자들 앞에서 울 수가 없어 편집실 라꾸라꾸 침대에 홀로 벽 보고 누워 눈물을 삼켰던 어느 밤이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들키지 않으려고 편집실 문 앞에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교수님이랑 얘기 잘했어?”라며 긍정적인 소식을 고대하는 편집실 안의 그들을 향해 “걱정 마. 나만 믿어!”를 의젓하게 외치던 어린 내가 있었다. 주말이고 방학이고 학교로 ‘출근’해 밤을 꼬박 새우고 오는 딸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중요한 역할이잖아. 포기하지 마. 중도에 포기하는 기억을 만들지 마”라고 격려했던 엄마도 있었다.
나도 참, 아무것도 몰랐을 20대 초반에 사실상 ‘쌈박질’이 일상인 1년을 지나오고서도, 끝내 기자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심지어 또 기자가 돼 버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21살 때 나는 진심으로 잘 생각해봤어야 했다. 현직 되면 더 힘든데, 비슷한 일이 일하는 내내 계속될 텐데, 오히려 이 ‘체험판’ 1년이 일찍이 주어진 걸 우주 만물에 감사해야 해 사샤야…. 2025년의 나는 과거 쪽으로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들린다 한들 그 패기 넘쳤던 아이 귀에 이 목소리가 들어갈 리 만무한 것. 그 결과 나는 오늘도 기자 명함을 들고 회사로 출근한다.
지난해 우연찮게 학보사 후배 편집장에게 연락이 왔다. 학보사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는데 축사를 써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조차 필요하다면 스마트폰을 들어, 민망한 속내를 감춘 채로 ‘을’로서 지면 원고 청탁을 해야 하는 편집장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쓰겠다고 했다. 축사는 학보사 기자들을 격려하는 내용으로 간단히 쓰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제목을 달았다. 나도 현직 기자로서 내가 있는 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내 역할을 다할 테니, 당신들도 그래줬으면 좋겠다고 글을 끝맺었다.
여전히 매일의 취재가 막막할 따름이다. 기사를 쓰려면 이 기사가 왜 필요한지, 언제나 윗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가끔씩은 말도 안 되는 결정이 내려와 항의도 해야 한다. 나를 응원하는 팀장을 바라지만, 조직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그저 조용히 해 뜰 날을 기다리며 감내하는 시기를 보내기도 한다. 요즘은 이런 시기 중에도 나쁘지 않은 때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팀장 밑에서 해보지 않은 아이템들을 취재하며 배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은 아이템도 열심히만 한다면 세상 밖으로 빛을 보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겠다. 11년 전의 내가 기특하게도 사직서 안 내고 편집장 임기를 무사히 마무리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