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F 대학
F 대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첫사랑이랄까. 그가 내게 준 95% 이상의 것들이 ‘처음’이었으므로. 첫 앰부시(관련 글 링크 하단 참고.), 첫 수사, 첫 재판, 첫 기자상 응모, 첫 최장 기획…. 모두 F 대학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F 대학은 지난해 초순 문을 닫았다. 나와 동료들이 만든 22개의 리포트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터. 바라던 결론이 절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될 일이었던 건지. 기자로서 그와 헤어진 지 4년이 훌쩍 지난 오늘. 복잡한 마음으로 F(대학)와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린다.
수습 딱지를 못 뗀 때였다. 선배가 본인이 받은 제보 하나를 넘겼다. 제보 내용을 직접 확인해 기사를 써보라고 했다. 제보자는 강원도 F 대학의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교수였다. 바야흐로 인구 절벽 시대, 급감한 학령인구는 그마저도 향후 생존에 유리한 수도권 대학들로 집중됐고,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한 수많은 지역 대학들은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보자는 ‘대학’의 ‘교수’였지만 전국의 ‘고등학교’들을 찾아가 ‘영업 사원’으로 일했다.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고민하는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F 대학에 오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영업 사원이 아닌 교수였던 것이다. 윗선에서 원하는 만큼 신입생을 유치하는 데 실패한 결과, F 대학 총장으로부터 사직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게 제보 내용의 핵심이었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어쩌다 지역 기자가 돼 꿈에도 상상 못 한 강원도 살이를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들, 특히 지역 대학들이 맞닥뜨린 냉정한 현실을 부끄럽게도 취재를 하며 처음 알게 됐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문제니 제대로 알리자는 단순 명료한 마음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첫 보도는 F 대학의 민낯을 드러낸, 빙산의 일각의 일각의 일각이었던 것. 첫 보도 이후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신입생 충원율 수치를 조작한 것. 학생들이 자퇴서를 냈는데도 일부러 자퇴 처리를 미뤄 재적생 숫자를 부풀리려고 한 것. 현장 실습이란 필수 요건을 채우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에게 전문 자격증을 수년간 허위로 발급해 준 것.
대학이 오랜 세우러 벌인 비리의 정황들이 계속 나타났다. 고구마 줄기를 뽑으면 뽑을수록 흙에 파묻혀 있던 고구마들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의도치 않게 F 대학의 비리들을 고발하는 기획 보도를 이어가게 됐다. 1년 차 기자였던 나의 대표 기사는 F 대학 기사들이 됐으며,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는 점차 사학 비리 전문기자 비스무리한 것이 돼 가고 있었다.
취재를 통해 사학 비리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다 보니, 그 끝에는 뿌리와 다름없는 총장이 있었다. 총장 임명 과정 등에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가 F 대학 총장을 소환한 그날. 훗날 남편이 된 촬영기자 동기(그는 F 대학 취재 현장을 나와 함께 뛰어다닌 동지였다.)와 동료들과 교육부 청사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로 갔다. 전화, 문자 메시지, 이메일, 공문.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동원해도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던 F 대학 총장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촬영기자의 카메라와 연결된 무선 마이크를 들고 그에게 돌진했다.
첫 앰부시 취재였다. 차콜색 롱패딩을 입은 단발머리의 20대 여성 기자는 있는 힘껏 전진해보려고 했지만, 대학 관계자인 중년 남성들은 필사적으로 그의 앞을 막아서고 패딩을 붙들고 늘어지고 말았고…. 떨리고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현장이었다.
그 뒤 우리의 F 대학 비리 보도는 2막에 들어섰다.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선 첫 수사. 보도로 밝혀진 대학의 학생 충원율 조작, 전문 자격 허위 발급 의혹 등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백여 명에게 허위로 발급된 전문 자격증이 모두 회수될 상황이 다가오는 가운데, 해당 전문 자격을 관리하는 협회 측에서 F 대학을 상대로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첫 감사.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추진된 첫 법안 발의. 경찰과 검찰 수사에 이은 첫 재판.
취재와 보도가 만든 이런 변화들을 담아 처음으로 이달의 (방송)기자상에 응모도 해봤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는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좋은 기사들을 매달 추려,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에게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여한다.) 안타깝게도 상은 못 받았다. 두 번이나 응모했는데. (흑흑) 지금 다시 기사들을 읽어봐도 왜 상을 못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남편과 나의 통일된 의견이다. 기자상 지원할 당시 쓴 공적서도 꽤 괜찮았는데. (허허)
내 기자 생활에 여러 개의 최초를 만들어준 F 대학. 진심으로 F 대학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를 바랐다. 총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부조리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고, 다시는 그런 부조리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대했다. 학생과 교수를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진짜 대학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했다. 더 나아가 활력을 찾은 대학가 덕분에 지역 경제도 함께 살아나기를 꿈꿨다. 나와 남편과 동료들이 F 대학의 비리들과 피해 학생, 교수, 교직원 등의 목소리를 2년 넘게 추적했던 이유다.
F 대학 문 닫게 하려고 이러냐, F 대학 폐교하면 지역 경제 다 무너진다, (F 대학이 위치한) 지역 주민들이 C 방송국 싫어한다더라, 박 기자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F 대학은 내 첫사랑인데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 F 대학 보도를 하겠나. 돌이켜 보면 일만 하는 것도 힘든데 일 외적으로도 힘들게 하는 것들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참, 나 자신,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꿋꿋이 취재와 보도를 이어갔다. F 대학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사랑이 나타나려나. 취재와 보도에 대한 집념을 그 시절 수준으로 되살린다면야, 곧 내게 얼굴을 내밀어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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