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대학 신문사 입사!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정말이에요

by 사샤

험난한 시간이었다. 뜬구름 같은 단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며 달리기에는 아득한 세월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학이란 이름의 뜬구름은 외국어 고등학교를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부터 머리 위를 떠다녔다 봐도 무방하다. 내게 외국어 고등학교는 사실상 서울대 외교학과를 가기 위한 발판이었으니까. (당시 내 꿈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뒤를 잇는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1화 참고.) 외고 입학에 실패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물정을 잘 몰랐던 탓인지, S대 신입생이 되겠다는 의지는 약해졌을지언정 계속 유효했다. 다만 기자라는 새로운 꿈이 등장하면서부터 목표 대학과 학과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외고를 못 가서 그렇지, 확신의 전교 1등이었던 나는 그 기세를 고등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이어 갔다. 결정적으로 고3이 돼 치른 수능 모의평가(6월 모평 아니면 9월 모평이었다.)에서 언어와 수리, 외국어 영역 모두 1등급이 나왔다. 전교 1등이었다. 이 성적은 최종 지원 대학과 학과를 정하는 지표로 통했다. 말 그대로 하늘로 여겨지는 ‘SKY’ 대학들의 소위 신방과(신문방송학과를 비롯한 언론계열 학과)를 진학하는 게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담임 선생님은 ‘안전빵’을 강권했다. 어떻게든 당신 반 아이들, 재수 안 시키고 대학 보내고 싶으셨겠지. 학교 대입 실적도 올려야 되니까. 어쩌면 오락가락하는 내 성적을 근거로 SKY는 무리라고 판단하셨을지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수능의 쓴맛을 본 적 없는 현역 수험생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들 수시도 써 보자는 ‘담탱이’ 말에 서운함과 분노만이 치솟는 것이었다. 특히나 신방과는 대학을 불문하고 입학 성적 하한선이 높은 편이었다. 결국 교무실에 불려 가 “네 성적에 무슨 (SKY) 신방과냐” 류의 일갈을 들었다. 비수처럼 날아온 그의 말에 텅 빈 야자실(야간자율학습실)로 뛰어가 혼자서 오열을 했던 기억은 10년이 넘게 지나도 여전히 선명하다.


신방과는 못 간다 그러지, 솔직히 SKY가 따놓은 당상도 전혀 아니었고, 그렇다고 눈을 확 낮추자니 나도 부모님도 그게 될 리가 없었다. 무슨 잭팟 맞은 것 마냥 수능 모평에서 일, 일, 일이 떴었으니까! 모름지기 목표란 높게 잡아야 최소 중간은 간다는 말이 횡행하던 사회였다. 우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라는 뜬구름을 주시하며 공부했는데, 이 뜬구름이 언젠가부터 눈에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대학을 목표로 살아온 지 어언 6년째였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 버렸다. 목표의 실체는 빙산의 일각조차 보지 못한 채로. 심지어 버텨야 할 날들은 늘어났다. 담탱이의 경고를 외면하고 하늘 쪽만 바라본 결과 수시는 ‘광탈’, 정시 역시 죽을 쑤고 말았다. 재수생이 됐다. 힘들어도 조금만, 조금만 더 해보고 싶었다.


대학 신문사에 가볼까?


이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란 목표는 더는 내게 동기 부여를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기자가, 이쪽 언론 판이 그렇게 대학 이름값을 따진다는데 명문대 타이틀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외고도 못 갔는데 취업만큼은 남들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언론사, 돈도 많이 주는 큰 회사로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대학 무슨 과, 이것만으로는 꿈을 이룬 미래의 내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자고로 ‘R=VD’(Realization=Vivid Dream)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서울대생 브이로그 수준으로 생생하게 미래가 그려져야 하는데, 그때는 유튜브가 활성화한 시기도 아니었고, 친구들 대학생활 이야기 주워들은 것만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 됐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목표를 만들어야겠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앞으로 1년은 꾹 참고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게 만들 나만의 특별한 목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에 하늘 비스무리한 대학에 들어가면 무엇을 하며 하하 호호할 것인지, 기자라는 진짜 꿈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갔다. (아직 대학 합격 안 한 건 안 비밀이다.) 알아보니 대부분 대학에는 해당 대학과 대학사회 전반을 감시하는 학내 언론이 있었다. 학보사로 불리는 대학 신문사, 대학 방송국, 영자 신문사 등 다양했다. 이중 신문사가 끌렸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나는 원래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학창 시절 각종 백일장과 논술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글쟁이의 삶을 꿈꿨다. 그렇지만 뭐, 여느 취업준비생들이 그렇듯 정작 나를 뽑아준 회사는 방송국이었고 막상 방송기자가 되고 나니 이 또한 끝없이 글을 쓰는 삶…. 아무튼 이렇게 18살의 나는 불현듯, 상상의 세계에서 서울대 학보사 <대학신문> 건물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집에서 멀기도 참 멀다. 버스를 타고 동네 지하철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갈아타 서울대입구 역에 내렸지만 아직 캠퍼스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또 버스를 타고, 또 내려서 10분쯤 걸어간다. 그 유명한 ‘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집 떠난 지 90분은 족히 넘었을 시각. 드디어 대학교를 본다. 캠퍼스를 거니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학보사 건물 앞에서 학생 기자들이 만든 학보를 집어 든다.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인 나는 지난 한 주간 열심히 취재해 쓴 내 기사를 베를리너판 종이 신문에서 찾아본다. 내 기사를 읽으며 흐뭇하게 웃는다. 저 멀리 나를 부르는 학보사 동기를 발견한다. “오늘 편집실에서 치맥, 콜?” 입맛을 다신다.


스크린샷 2025-07-24 203125.png 지난 6월에 발행된 서울대 <대학신문> 1면 일부입니다. 저도 여러분 덕에 학보 참 오랜만에 보네요 (출처: 대학신문 홈페이지)


독립 영화의 한 장면 뺨치는, 나의 살아 있는 이 꿈(목표)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현실이 됐다. 재수생으로 본 수능 성적은 비극적이게도 고3 때 성적에 못 미쳤고, 더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성적에 맞춰 A 대학 학보사(학과는 법학과)에 들어갔다. 학과 동기이자 학보사 동기였던 친구는 얼마 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니 같은 사람이 기자를 해야 하는 거구나, 그때 알았지. 난 기자가 안 맞다는 걸 언니를 보고 깨달았어.”


학보사는 잘 맞았지만 전공이 나와 완전히 상극이었으므로 (폐쇄적이고, 뭐든 여지가 별로 없는 법학은 내게는 답답하고 어려웠다. 그래도 법학을 전공했다면 여러모로 좋았겠….) 이번에는 삼반수생이 됐다. A 대학 학보사 생활을 되뇌며 남은 반년 동안 다시 수능 시험을 준비했다. 괴롭고 외로웠지만 전 해보다, 전전 해보다 훨씬 버틸 만했다. 1시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에도 다 담기지 않을, 살아 숨 쉬며 마구마구 움직이는 나만의 꿈이 가슴속에 새겨졌으니까.


그리고 이듬해, 나는 B 대학 학보사의 수습기자가 됐다. 아, 전공은 사회학이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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