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 2>로 다시 만나요!
독자 여러분은 제목을 보고 의아해하실 수 있다. 첫 이직인 건 그래, 알겠어. 그런데 엥? 마지막 이직이라고? 아, 이직한 회사에서 얼마 전에 퇴사를 했고, 그 이후로 두 번째 이직은 아직 안 했으니까? 그래도 뭐, 어쨌거나 이직을 다시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벌써부터 마지막 이직이라고 못을 박는지? 자, 지금부터 해명 타임에 들어가겠다.
아, 이 사람 곧 퇴사하겠구나, 이직하겠구나는 아실 수밖에 없는 게 우선 이 브런치 북 10화와 11화에 예고를 충분히 드렸다. ‘택배 노동자 아이템이 이직 결심에 단초를 제공했다’(10화), ‘이직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됐다’(11화)와 같은 문장들이 있었다. 퇴사와 이직 계기도 독자들이 추정하실 수 있었다고 본다(라기보다 믿고 싶다). 하고 싶은 뉴스, 해야 한다고 믿었던 뉴스들을 마음껏 하지 못해서 그랬나 보다, 라고. 11화에서 나는 노동 분야 기사를 쓰며 부장과 선배들의 눈초리를 받은 경험과 심지어 취재 중단 지시까지 감내한 날을 이야기했으니까. 그래서 약간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남은 택배 노동자 아이템을 보도하려고(?) 이직을 결심했다.
당연히 이직하게 된 회사의 채용 공고가 떴기에 가능했다. 언젠가 경력 많이 쌓아서 이직해야지, 했던 언론사에서 마침 취재 기자 경력 공채를 냈던 것이다. 사실 지원 요건에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경력 3년 이상의 저널리스트만 지원하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당시 2년 4개월째 기자인, 3년 ‘차’ 저널리스트였으니까. 하지만 찬 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3년 경력 못 채워 떨어트린다고 하면 뭐, 그때 가서 “알겠습니다” 하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입사 지원을 했다.
역대급으로 눈물 나는 자기소개서가 완성됐다. (우리 엄마는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그저 저널리즘 스쿨에서 배웠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언론사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일해보고 싶다고 썼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담긴 10개 원칙을 말합니다. 기자 준비생들과 현직 기자들이 꼭! 읽어야 하는 대표적인 저널리즘 교재예요.) 전 직장에서 이 원칙들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반대로 이곳 선배들이 저널리스트답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동경하게 됐다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는 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길 꿈꾼다고 했다.
기자로 겪었던 나의 좌절과 성취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자기소개서를 간명히 정리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설득력 있게 적다 보니 더욱이 마음이 결연해졌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19 때문에 지역 보건소 앞에서 현장 중계를 마치고 전화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스마트폰 너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이직이 확정됐다. 4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이직한 회사 즉, 얼마 전 퇴사한 전 직장(C 방송국은 이제 전전 직장이 되시겠다.)에서 보낸 4년 반 정도 시간은 다음 브런치 북으로 보여드릴까 한다. 이름하야 <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 2>가 될 예정. (예상하셨죠? 아니면 말고요….) 현재 끝나버린 기자로의 시간을 되감아 하나씩 살펴보고, 이렇게 글로 옮기는 과정이 꽤 정신적으로 고돼서 언제 컴백하겠다고 당장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보다, 이제 왜 ‘마지막’ 이직이라고 칭했는지 설명드리려고 한다.
마지막 이직이라고 단언했었다. 이직할 때 내 마음은 정확히 이랬다. 여기서 기자 한 번만 더 해보고, 또 적응 못 하면(적응을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기자 진짜 그만둔다.
기자로 일하기에 여기보다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은 없다고 확신했었으니까. 노동이면 노동, 권력 감시면 권력 감시, 이런 식으로 분야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뉴스와 해야 하는 뉴스를 전부 하고 있는 언론사로 판단됐다. 보도되는 뉴스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책임져야 하는 출입처도 따로 없고, (예를 들어 D 경찰서 출입 기자는 D 경찰서 발 기삿거리를 하나라도 놓치면 선배들에게 된통 욕을 먹는다.) 기자들에게 취재할 시간을 비롯해 취재하는 데 드는 각종 비용 등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 주는 것 같았다. 막상 다녀보고 나서는 여기도 엄연한 회사이거늘, 과 같은 ‘현타’가 오긴 했지만, 여타 언론사와 비교하면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던 게 사실이었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좋은 회산데 너 또 적응 못 한다고? 그럼 기자 그만둬야지. 그냥 기자가 안 맞는 거지. 그러니까 기자, 이 직업으로 이직하는 건 지금 회사가 마지막이야, 라고 생각했던 거다.
막상 그 ‘좋은’ 회사를 때려치운 현재 내 속마음을 말씀드리겠다. 사실 나도 내가 이런 마음인지 몰랐는데, 며칠 전 전남 구례에 홀로 3일 동안 여행을 하고 곧 알게 됐다. 나 자신, 여전히 기자를 하고 싶어 한다고. 기자만큼 하고 싶은 직업, 입사를 꿈꾸는 직장, 돈벌이로 삼을 만한 일이 아직까지 없다고. 극심히 스트레스받고 많이 힘들었으니 그저,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기자 하고 싶은 것 같다고. 나 빼고 모두가 알았을 이 사실을 나만은 뼈 아프게,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좋은’ 회사, 어떻게든 다녀보지 그랬냐고 하실 수 있다. 혹시 내 매거진 <나는 기자가 참 안 맞다>의 글들을 보지 않으셨다면 일독을 권한다. 보이지 않는 것, 가장 강력한 적, 곽아람 기자님께. 이 세 글을 먼저 읽어보시라. 일하다 번아웃이 세게 왔었다. 우울증으로 두 달 휴직을 해야 했을 정도로. (휴직 때 쓴 글들은 매거진 <나의 심연>에 있어요.)
물론 전전 직장보다야 하고 싶은, 해야 하는 뉴스를 많이 그리고 잘 해냈다. 하지만 이곳 역시, 회사. 내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었다.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을 지나치게 꿈꿨던 것도 같다. 갓 사회생활 시작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참.) 다만 자아실현과 부속품의 비율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면 괜찮은데, (나도 알 건 다 아는 7년 차 직장인이었다.) 언제부턴가 손발이 묶인 채로 일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동료들이 “뇌 빼고 일한다”는 말을 종종 했는데 나도 그러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최소 2년은 일했고 나는 더 버티기가 어려웠다. 근 몇 년 안에는 회사도 나도, 환골탈태하기 힘들었다. 햇빛 볼 기약 없이 흘러가는 내 인생의 하루하루가 아까웠다. 사람들도 다 나처럼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나?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러던 중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친구가 희생됐고 그 친구가 오래전 써준 편지를 사무실에서 읽고 또 읽고, 수개월을 그랬다.
맞아, 이건 아니야. 문득 인생에 자주 오지 않을 순간이 찾아왔다. 중대 결심이 딱 되는 순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잔잔바리 후회는 생길지라도 지금, 여기로 되돌아 올 상상은 추호도 하지 않을 그런 결심이 섰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었고, (결심이 바뀌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연휴 동안에 퇴사 결심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월요일에 팀장을 불러다 퇴사 통보를 했다. 서서히 사내에 내 퇴사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적지 않은 동료들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퇴사한 지 근 한 달째. 미디어 리터러시와 토론 교육 강사,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출간 작가까지. 이 직업들의 세계를 앞으로 ‘찍먹’ 해 볼 작정이라고 이 글로 선포한다.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 정치인이고 연예인이고 공약은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 이 모든 직업들을 당장 다 해볼 수는 없겠지만 아, 이런 일을 하고 이런 보람을 느끼고 이런 고충이 있는 직업이구나, 정도는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출간 기획안을 다듬어 출판사 문을 두드려보는 일도 계속 미뤄만 왔는데 도전해보려고 한다. 백수인 나는 시간도 많고 도전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실패도 다 과정이니까. 성공하면 좋은 거고. 경험한 만큼,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다. 정말로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에서 그동안 못 느껴본 재미를 맛보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 기자를 하려는 마음이 끝내 변하지 않을는지 이 과정을 통해 시험해 볼 예정이다.
아무튼, 처음이자 마지막 이직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거였다. 이직한 회사에서 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느냐 마느냐를 판단하겠다, 이런 마음도 어쩌면 오만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과정을 지나 봐야, 그 길을 걸어가 봐야 진정 알 수 있는 것을, 결론을 미리 내놓고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으니…. 이것 봐. 그 이직한 회사 그만두고 나서도 다음 직업 후보군에 아직 기자가 남아 있잖아 박사샤. 사샤,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인생이란 과정을 더 밟아봐야, 가봐야겠구나.
전전 직장에서 전 직장까지, 나만 재밌는 줄 알았던 나의 기자 생활을 함께 지켜봐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말씀을 올린다. <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 1>의 12개 글을 쓰며 과거의 나와 격렬히 재회했고 그때의 나를 비로소 긍정하고 안아줄 수 있게 됐다.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이다. 앞으로도 지나간 (또 시작될지도 모르는) 내 기자 생활 에세이를 여러분이 지켜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