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45일 만에 돌아온 사샤입니다

중대 발표(?)가 있어요

by 사샤

노트북 앞에 앉아 딱 한 문장만 쓰겠다고 하는데,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어색한지요. 한 달 넘게, 그것도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소식이 끊겼던 저는 바로 여러분의(?) 사샤입니다.


우선 죄송했습니다, 라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아무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작가, 아니 저자와 독자의 사이라지만 약속은 천금 같아서 못 지킬 것 같으면 최대한 빨리 언질을 드렸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허허. 그냥 마음대로 홱 사라져 버렸다가 또다시 이렇게 홱 돌아와 죄송할 따름입니다.


핑계를 대보자면요. (최근 MBC 신인감독 김연경이란 프로그램에 푹 빠져 '핑계'라는 단어에 꽂혀있더랬죠. 이 프로그램 강추입니다. 연경신 짱.) 제 딴에는 꽤나 큰일이 있었더랬죠. 여러분이 어느 정도 예상하실 수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제 알고리즘만 이 단어로 도배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마치 상당수가 이 중대 결심을 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요즘인데요. 네, 저도 그 '퇴사'라는 것을 했습니다.


어쩌다 퇴사까지 하게 됐느냐, 전직을 수도 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작가 프로필 소개에 써놓더니 진심이었냐, (그러고 보니 작가 프로필부터 수정해야겠네요. 허허.)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궁금하실 것 같아요. 궁금...... 하시죠? 저 까먹으셔서 안 궁금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궁금해해 주시길요. 허허.


제 퇴사일은 11월 1일이었습니다. 그 전달 23일이 마지막 근무일이었고요. 퇴사, 이직해 보신 분들 다 아시겠지만 잔여 연차 소진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재직일을 지난 월말로 맞춘 거였죠. 네, 그래서 저는 퇴사 9일 차입니다. 열흘도 안 됐다고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퇴사 통보를 추석 연휴 직후에 했기에 사실상 일을 안 한 기간이 열흘 플러스 3주 정도는 돼야 한답니다. 네, 저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고 있지요. 저는 이제, 드디어, 백수가 됐습니다.


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솔직히 막막하긴 합니다. 물론 기록은 해두었어요. 전부는 아니지만요. 이 시기에 끄적거린 글들이 쫌쫌따리 있긴 한데 어떤 방식으로 보여드리는 게 좋을지 고민해 볼게요.


얼마 전부터는 요가 일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날의 몸과 마음 상태, 요가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 오늘의 요가가 선물한 아이디어 등을 마구잡이로 노트에 적고 있는데요. 제 글감 모음집처럼 돼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요가하는 기자>를 사랑해 주셨던 독자님들께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요가원에 새로 등록을 해 다니고 있습니다. 하타, 빈야사, 아쉬탕가 등의 정통 요가를 주로 가르치시는 곳이에요. 따뜻한 노란색을 띤 포근한 수련 공간이 마련돼 있답니다. 만족하며 다니고 있어요.


공지 글을 쓰다 보니 퇴사 후 제 요가 라이프도 공유드리고 싶군요. 아아, 저는 하고 싶은 일이 계속해서 생기는 상황이에요. 이 상황이 저를 퇴사로 이끈 주 동력이 됐어요. 요가도 더 진지하게 해서 나중에, 언젠가는 요가 지도자 자격 따고 싶고요. 명상 지도자 과정도 밟고 싶고요. 여전히 책도 내고 싶고요. 독립 출판과 글쓰기 강사, 글쓰기 심리 치료에도 관심 있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사 되기, 그냥 여행, 그냥 독서, 그냥 휴식, 지역에서 일해 보기 등등.... 끝이 없군요.


물론 다시 기자 되기, 도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가능성들을 섣불리 삭제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세상에 알리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진 일입니다. 그동안 끝내 퇴사를 하지 못했었던 주 동력이었죠. 그 멋진 일을 해야 나도 멋질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아. 기자 아닌 그냥 사샤만으로도 충분해'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게 사실이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샤 씨의 색깔을 잃지 말라고 했던 혜연 선배. (<기자, 널 사랑하지 않아 1> 10화 참고.)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언제나 언니를 응원할 거라고 했던 친구이자 전 직장 동기 A. (A와의 이야기는 제게 매우 소중한데요. 이미 예전에 써둔 글도 한 편 있는데, 다음번에 자세히 글로 보여드릴게요.) 그리고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는 우리 남편. 또 양가 식구들. 제 곁에 따뜻함들이 있어 용기를 내봤습니다.


어제 한 독립서점에서 주최한 독서 모임에 가봤어요. 각자 읽고 있는 책과 나누고 싶은 질문을 한 가지씩 가져와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여러 말을 주고받으며 제가 느낀 건, 퇴사가 별 거 같지만 또 별 거가 아닐 수 있다는 거였어요. 나한테는 이게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일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는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또 일할 건데 뭐' 정도의 일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도 뭐, 별 거이면서도 별 것도 아닌 퇴사 생활을 잘 보내보려고 합니다. 일명 '갭이어'라고 해둘까요. 하하. 32년 인생 살며 처음으로 제대로 자아 탐구를 해보는 중입니다. 또 제대로 노는 중인데요. 솔직히 노는 것도 쉽지가 않네요. 다행히 제게는 돈 잘 버는 남편이 있고 (남편.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미고사.) 퇴직금과 올해 임금 인상 소급분도 곧 받을 예정이라 금전적 여유가 당분간은 있거든요. 7년 가까이 기자 일 하며 모아놓은 귀여운 비상금도 있고요. 허허. 노는 것과 자아 탐구 관련해 제가 하면 좋을 것 같은 게 있다면 댓글 남겨주셔도 좋아요.


대부분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좋기만 한 건 아니랍니다. 당연한 거겠죠. 때때로 퇴사를 했다는 게 실감 나지 않고 전 직장 동료들이 보고 싶고 제가 했던 과거의 일들이 그립고 그렇습니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거의 사라진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 그래도 지금의 시간, 다시 갖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니 소중하게 지나가 보겠습니다. 앞으로 브런치도 어떻게 꾸려가볼지 고민해 볼게요. 여러분이 재밌어할, 유용해하실 만한 글들을 제가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도비 이즈 프리니까요. 더욱이 자유로워진 글로 돌아올게요. 연재를 하다 만 브런치북들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지 고민이 많답니다. (흑흑.) 새로 써 보고 싶은 시리즈들도 있고요. 그러니 공지가 또 필요할 것 같으면 공지 남기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편안한 일요일 오후 보내시길 바라요. 사랑과 존경을 담아, 나마스떼. (꾸벅.)


KakaoTalk_20251109_150942191.jpg 그래 난 빛나는 기자였어, 사샤였어, 라는 의미로 촛불을 불었던 밤. 남편과 함께한 퇴사 축하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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