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II

피사체

by 윤담

처음에는 그녀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두 달 동안 붙어서 찍었는데도, 처음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얼굴이 아니라 선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검은 후드집업 아래로 먼저 드러나는 목의 기울기, 스트레칭을 하려고 머리를 묶어 올릴 때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매끈한 각도, 한쪽 다리를 뒤로 접어 올리고 서 있을 때 골반에서 허리로 연결되는 조용한 곡선 같은 것들. 얼굴은 카메라가 잡아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선은 직접 봐야 했다. 움직이는 중간에만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것들이라서.
나는 다큐멘터리 PD였다. 방송국 소속은 아니었고, 외주제작사에서 오래 일했다. 한때는 사람 냄새 나는 다큐를 만들겠다는 말에 진심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서른다섯이 지나고 나서는 그런 말이 거의 죄다 포장지라는 걸 알게 됐다. 사람 냄새라는 건 대체로 누군가의 상처를 적당히 예쁘게 편집한 말이었다. 고통은 클로즈업되고, 침묵은 의미를 부여받고, 눈물은 BGM 위에서 천천히 빛났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오래 먹고살았다. 누군가의 진심을 분량으로 바꾸는 일. 솔직히 말하면, 제법 잘했다.
그런데도 그 촬영은 조금 달랐다.
아이템은 간단했다. 공연을 앞둔 현대무용수 한 사람의 연습과 일상을 따라가는 50분짜리 예술 다큐. 제목은 아직 없었고, 투자처는 지방문화재단과 예술채널 공동제작. 나로서는 크게 욕심낼 것도, 크게 망할 것도 없는 작업이었다. 현장에서 몇 컷 건지고, 인터뷰 잘 따고, 편집실에서 적당히 리듬을 맞춰 내보내면 되는 종류의 일. 적어도 촬영 첫날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윤서였다.
처음 만난 날, 나는 그녀가 생각보다 말이 없다고 느꼈다. 유명세가 조금 붙은 무용수들은 대개 자기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알고 있어서, 카메라 앞에서 적당히 매끈한 문장을 꺼낼 줄 안다. 자신이 얼마나 고독한지, 예술이 무엇인지, 몸이 기억하는 상처가 어떤 것인지, 그런 말들. 그런데 윤서는 마이크를 채우자마자 내 질문을 듣고도 대답을 길게 하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계세요?”
그녀는 발목을 한 번 돌려보더니 말했다.
“공연은 마음으로 준비하는 건 아니어서요.”
“그럼요?”
“몸이 따라오면 하고, 안 따라오면 못 하는 거죠.”
내가 웃자 그녀는 웃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연습실에는 큰 거울이 있었고, 늦은 오후였다. 창문 바깥으로 사선의 빛이 들어와 바닥 끝을 누르고 있었다. 윤서는 인터뷰 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않았다. 등받이에 등을 붙이지 않고, 허리를 세운 채, 금방이라도 일어나 다시 움직일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무용수들은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완전히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몸 어딘가에 아직 동작의 잔열이 남아서. 윤서가 딱 그랬다.
“카메라 불편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녀가 내 렌즈를 한번 보았다.
정확히는 렌즈를 본다기보다, 렌즈 너머에 있는 내 얼굴을 희미하게 가늠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도 잘 협조해 주시는 편인 것 같은데요.”
“협조는 해요.”
“싫어하면서도?”
“네.”
그때 나는 조금 웃었다. 이번엔 그녀도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를 움직였다. 그 정도면 첫날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촬영본을 편집실에서 다시 돌려보면서 나는 이상한 걸 느꼈다. 인터뷰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밋밋했다. 쓸 만한 문장이 거의 없었다. 대신 쓸데없이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았다. 대답하기 전에 한 번씩 목을 쓸어내리는 습관, 질문이 마음에 안 들면 오른쪽 눈썹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가는 표정, 물병을 들 때 손가락이 병목을 꽉 쥐지 않고 반쯤 걸치듯 잡는 방식. 그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기 직전과 직후가 자꾸만 남는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찍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공연 준비 다큐니까 당연히 동작 위주로 갔다. 워밍업, 바 워크, 즉흥 장면, 안무가와 동선 맞추는 순간들. 그런데 촬영이 쌓일수록 나는 엉뚱한 데서 카메라를 멈췄다. 발목에 테이프를 감는 손. 연습 끝나고 바닥에 앉아 양말을 벗는 장면. 샤워를 하고 나온 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틀어쥔 채 창문 밖을 보는 몇 초. 분장실 거울 앞이 아니라, 분장실 문을 나서며 표정이 비어버리는 순간. 나는 점점 춤보다 춤이 끝난 뒤를 더 오래 찍고 있었다.
그게 왜 그런지 처음에는 몰랐다.
알게 된 건 촬영 3주 차, 지방 공연을 따라 내려갔을 때였다.
공연장이 오래된 문화회관이라 분장실 천장이 낮았다. 환풍기는 돌아가는데도 화장품 냄새와 땀 냄새가 잘 빠지지 않았다. 다른 무용수들은 떠들썩했지만 윤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의상으로 갈아입기 전에 검은 나시 차림으로 혼자 거울 앞에 서 있었는데, 나는 그 장면을 문 밖에서 한참 찍었다. 직접 들어가면 그 공기가 망가질 것 같아서.
모니터 속 윤서는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등에 붙은 얇은 땀막이 형광등 아래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척추를 따라 내려오는 가는 홈, 그 양옆으로 숨에 맞춰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 허리께에서 안으로 살짝 접혔다가 다시 골반으로 풀리는 선. 지나치게 드러난 몸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눈을 잡아끌었다.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누군가를 압도해서가 아니라, 오래 보게 만들어서 사람을 무너뜨리는 쪽의 아름다움.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화면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더 보고 싶어서.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촬영분을 정리하다가, 나는 한 프레임에서 꽤 오래 멈춰 있었다. 윤서가 고개를 숙인 채 발목 보호대를 고쳐 매는 장면이었다.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었고, 대신 목 뒤가 보였다. 묶은 머리 아래로 드러난 목의 시작점, 거기서 어깨로 기울어지는 얇은 선. 물기 없는 연필로 한 번만 그은 것 같은 단정한 선인데, 이상하게 그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먼저 조용해졌다가 조금 늦게 흔들렸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이 사람을 잘 찍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더 개인적인 쪽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걸.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큐를 찍다 보면 착각하기 쉽다. 오래 보다 보면 친밀해진 것 같고, 질문을 몇 번 받아주면 마음을 연 것 같고, 피사체의 사소한 버릇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직업적인 환상이다. 나는 그 환상을 경멸하는 쪽이었고, 스스로는 거기에 안 걸린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서른일곱이나 먹고, 렌즈 뒤에 숨어 사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한 무용수의 목선 같은 것에 며칠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윤서는 그런 내 변화를 눈치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날부터 내 질문을 전보다 덜 경계하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엔 무슨 생각해요?”
내가 묻자, 그녀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감싸 쥔 채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무 생각 안 하려고 해요.”
“쉽지 않잖아요.”
“쉬우면 예술가 안 했겠죠.”
“그 말은 좀 뻔한데요.”
그녀가 그제야 나를 보고 웃었다.
“PD님도 뻔한 질문 하셨잖아요.”
나는 그 웃음이 좋았다.
활짝 웃는 얼굴보다, 비웃는 것 같다가 말고, 금방 지워질 것처럼 옅게 번지는 웃음. 윤서는 예쁜 여자였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예쁨은 얼굴의 형태보다 표정이 생기는 방식에서 더 도드라졌다. 그녀는 정면에서 보는 얼굴보다 옆으로 돌아설 때가 더 좋았다. 웃을 때도 입보다 먼저 눈 아래가 아주 약하게 풀렸고,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얼굴보다 턱선 아래로 내려가는 그림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꾸만 그녀의 옆모습을 찍게 됐다. 나중에는 스스로도 좀 웃겼다. 온갖 공연 실황은 정면으로 다 챙기면서, 정작 그녀 개인 컷은 반 이상이 옆선이었다.
문제는 편집실에서 벌어졌다.
촬영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일정 체크하고, 촬영감독과 컷 분배하고, 사운드팀 정리하고, 인터뷰 추리고 나면 생각할 틈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편집실에 혼자 앉아 그녀의 장면들을 반복해서 돌려볼 때면, 나는 늘 한 군데서 붙들렸다. 윤서가 말을 멈춘 뒤. 누군가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대답하지 않고 숨을 한번 고르는 몇 초. 리허설 끝나고 모두 나가는데 혼자 거울 앞에 남아 손끝으로 허공의 동선을 한번 그어보는 짧은 순간. 그런 데서 나는 자꾸 멈췄다. 그 몇 초가 지나치게 길고 사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을 이렇게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실제로 보고, 모니터로 보고, 편집으로 다시 보고, 컷을 고르려고 프레임 단위로 또 보는 일. 그쯤 되자 나는 그녀가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아주 조금 더 늦게 올라온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그녀의 컨디션이 나쁜 날은 오른쪽 발목을 먼저 턴아웃에서 빼낸다는 것도.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 직업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밤 편집실에서 모니터를 멍하니 보다가, 윤서가 화면 속에서 무심히 고개를 젖히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을 때, 그건 더 이상 직업병만은 아니었다.
그날 집에 돌아가서도 잠을 못 잤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밤이었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커튼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데도 머릿속으로 그녀의 몸이 계속 지나갔다. 무대 위에서 크고 정확한 동작이 아니라, 그보다 사소한 것들. 머리를 묶을 때 드러나는 목, 무용화 끈을 매려고 몸을 숙일 때 한순간 깊어지는 허리선,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 종아리 뒤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힘.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것들 앞에서만 마음이 조용히 무너졌다. 얼굴을 좋아한 게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 자기 몸으로 살아온 시간 같은 걸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좀 우스웠다.
한 사람이 아니라 실루엣을 사랑하는 것 같아서.
공연을 열흘쯤 앞둔 시점부터 윤서는 눈에 띄게 예민해졌다. 안무가와 부딪히는 날도 있었고, 리허설을 두 번이나 중단한 날도 있었다. 발목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걸 말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착지 직전에 턱이 더 높아지고, 회전 후 마지막 중심을 잡을 때 왼쪽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카메라는 그런 걸 숨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먼저 알게 만드는 쪽이었다.
한 번은 인터뷰 도중에 내가 물었다.
“많이 힘들죠?”
윤서는 물을 마시다 말고 나를 봤다.
“그 질문 싫어요.”
“왜요?”
“힘들다는 말 하면 다 좋아하잖아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물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술하는 사람은 조금 망가져 있어야 진짜 같고, 아파야 깊어 보이고, 울면 더 팔리고.”
“나는 그렇게 안 봐요.”
“정말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다기보다 피곤했다.
오래 비슷한 시선을 겪어온 사람의 피로.
“그럼 뭘 봐요?”
그 질문에 나는 말을 고르지 못했다.
정답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버티는 걸 보죠.”
윤서가 눈썹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망가지지 않으려고 계속 추는 거. 안 되는 날에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 나는 그게 더…”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좋다고 하기엔 너무 솔직했고, 아름답다고 하기엔 너무 흔했다.
윤서는 이상하게 한참 동안 나를 보았다. 내가 무슨 말까지 삼켰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 뒤로 그녀는 나를 좀 다르게 대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연습 끝나고 다 같이 밥 먹으러 갈 때 내 쪽을 한번 더 보고, 인터뷰를 하기 싫은 날도 완전히 피하지는 않았고, 가끔은 내가 묻지 않은 얘기를 먼저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나는요.”
그녀가 연습실 바닥에 앉아 발등을 주무르며 말했다.
“몸이 제일 정직하다는 말도 좀 싫어요.”
“왜요?”
“몸도 속여요. 잘 버티는 척하고, 괜찮은 척하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요.”
“그럼 마음은요?”
그녀가 웃었다.
“마음은 더하죠.”
그날 창밖엔 비가 왔다. 아주 가느다랗게 오래 내리는 비였다. 연습실 안으로 눅눅한 냄새가 스며들었고, 다른 무용수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도 바닥에는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REC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찍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이 늘어갔다. 어떤 장면은 남겨야 했고, 어떤 장면은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하면 보통 좋은 다큐는 망한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자꾸 망설였다.
천둥이 친 그 밤도 처음에는 그냥 추가 촬영 정도로 생각했다.
공연 사흘 전이었고, 안무의 마지막 독무 부분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며 윤서가 밤까지 남겠다고 했다. 촬영감독은 먼저 보냈다. 어차피 고정숏 몇 개면 되는 장면이라 내가 직접 카메라를 잡아도 됐다. 밤 열한 시가 넘자 건물에는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다. 복도 불은 반쯤 꺼졌고, 연습실은 천장 조명 몇 개만 살아 있었다. 창밖에는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달라졌다. 물이 아니라 무언가 무겁고 큰 것이 유리창을 계속 밀어붙이는 소리 같았다.
윤서는 검은 연습복 차림이었다.
등이 깊게 파인 상의였는데, 움직일 때마다 어깨뼈 아래가 먼저 빛났다. 음악이 다시 시작되고 그녀가 중앙으로 걸어 나가자, 나는 자동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춤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째쯤 가서 동작이 꼬였다. 회전이 밀렸고, 착지 후 중심을 놓쳤다. 윤서는 음악을 직접 꺼버렸다.
정적이 생겼다.
나는 카메라를 든 채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목 아래로 땀이 천천히 내려오고, 그 젖음이 척추선을 따라 허리까지 이어졌다. 머리를 높게 묶어 올렸는데도 젖은 잔머리가 뺨과 목 옆에 들러붙어 있었다. 빛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녀의 실루엣은 더 또렷했다. 얼굴보다 먼저 선이 살아났다. 젖은 목선, 축 늘어진 오른팔 끝에 아직 남은 긴장, 숨 때문에 아주 미세하게 들썩이는 갈비뼈 아래 그림자. 나는 화면 속 그 몸을 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
“그만 찍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바로 내리지 못했다.
그 몇 초가 길었다.
윤서가 나를 보고 웃었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친 얼굴이었다.
“좋죠? 이런 장면.”
“무슨 말이에요.”
“망가지기 직전의 사람. 숨차고, 안 되고, 표정도 별로고. 그런 게 진짜 같잖아요.”
밖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연습실 거울 전체가 하얗게 빛났다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카메라를 내렸다.
“아니.”
윤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네가 버티는 장면이 좋았어.”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말을 이제야 하는 사람처럼.
“안 되는 날에도 계속 해보는 거. 무너지려고 하는데도 자세를 다시 세우는 거. 나는 그걸…”
나는 또 말을 끝내지 못했다.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다 망가질 것 같았다. 다큐도, 거리도, 그녀가 지금 간신히 허용하고 있는 이 밤의 공기까지도.
그 순간 천둥이 바로 머리 위에서 쳤다.
불이 한 번 꺼졌다.
완전히 캄캄해지진 않았다. 복도 비상등과 창밖 번개가 번갈아 연습실 안을 스쳤다. 어둠이 오자 윤서의 몸은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밝을 때보다 덜 설명되고, 그래서 더 분명해졌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몇 걸음 걸어왔다.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지금도 찍고 싶어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나자 갑자기 숨통이 트였다. 두 달 동안 늘 손에 쥐고 있던 걸 처음으로 완전히 놓는 기분이었다.
윤서는 그걸 보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을 그때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경계가 조금 풀리고, 대신 다른 종류의 긴장이 올라오는 건 분명히 보였다. 번개가 한 번 더 지나갔다. 그 짧은 빛 속에서 그녀의 얼굴보다 목이 먼저 보였다. 목구멍이 아주 작게 움직였고, 그 아래 젖은 피부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녀가 내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땀 냄새와 비 냄새와 바닥의 송진 냄새가 한꺼번에 났다. 공연 직전의 냄새였다. 몸이 지쳤지만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사람의 냄새. 나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윤서가 먼저 내 셔츠 소매를 잡았다. 아주 약하게. 확인하듯.
“한 번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깨질 것 같아서.
내가 입을 맞추자 그녀의 입술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하지만 숨은 뜨거웠다. 키스는 급하지 않았다. 오래 참은 사람들답지 않게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잘못 건드리면 이 순간이 도망갈 것 같아서, 서로 아주 느리게 입술을 겹쳤다가 멈추고, 다시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식이었다. 내 손은 결국 그녀의 뺨 옆, 젖은 머리카락 아래에 닿았다. 손바닥 안쪽으로 올라오는 체온이 믿기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수십 번 본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손안에 있는 한 사람의 온기라는 게.
윤서가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들어왔다.
젖은 연습복이 내 셔츠에 닿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떤 순간은 기록하지 않을 때 더 분명해진다는 걸. 찍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는 걸.
키스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곧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이마가 내 턱 아래에 닿아 있었고, 둘 다 숨이 조금 가빴다. 밖에서는 아직 비가 퍼붓고 있었지만 천둥은 조금 멀어져 있었다. 거울을 보니 어둠 속에 서 있는 두 사람이 희미하게 겹쳐 있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같은 밤 안에 서 있는 남자와 여자처럼.
윤서가 먼저 아주 작게 웃었다.
“이건 못 찍겠네요.”
나는 그제야 웃었다.
“응.”
“아쉽죠?”
예전의 나라면 그랬을 수도 있다.
이 장면을 못 남긴다는 게, 어떤 진실한 표정을 놓친다는 게 분명 아쉬웠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정말 아니었다.
“아니.”
나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이번엔 아닌 것 같아.”
그녀는 나를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눈을 내리깔고, 소매를 놓지 않은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더 예뻤다. 무용수 윤서가 아니라, 막 누군가에게 입을 맞춘 뒤 자기 몸의 떨림을 아직 다 수습하지 못한 여자. 무대보다 더 사적인 곳에서만 나타나는 실루엣. 나는 그걸 보고 있는데도 이제 카메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창밖만 봤다.
유리창에 빗물이 끊임없이 번졌고, 도시의 불빛은 전부 형태를 잃은 채 흘러갔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조용했다. 키스를 했다는 사실보다, 카메라를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았다. 나는 늘 렌즈 뒤에서 사람들을 봐왔다. 거기 서 있으면 안전했다. 가까운 척할 수는 있어도 다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밤에는 처음으로 그 안전한 자리를 버렸다.
그녀 때문에.
그리고 그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늦게 나를 흔들었다.
다음 날 편집실에서 나는 전날 촬영분을 확인하다가 중간쯤에서 화면을 멈췄다. 윤서가 내게 “지금도 찍고 싶어요?”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어둡고, 초점도 완벽하진 않았고, 소리에는 빗소리가 많이 섞여 있었다. 기술적으로 보면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프레임을 한동안 보았다. 그건 아마 다큐에 쓰지 않을 컷이었다. 쓰면 안 되는 컷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장면 안에는 내가 두 달 동안 찍으면서도 제대로 몰랐던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카메라 뒤의 남자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던 사람을.


나는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은 대개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과 조금 다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부끄럽다거나,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무용수는 원래 늘 보이는 사람이다. 연습실 거울 앞에서도 보고, 무대 위에서도 보여지고, 공연이 끝나면 누군가는 리뷰를 쓰고 누군가는 사진을 올린다. 보는 시선 자체가 낯선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지겨운 쪽에 가깝다.
내가 싫어하는 건, 찍히는 순간 사람이 자꾸 설명된다는 점이다.
렌즈는 늘 이유를 찾는다.
이 동작은 왜 나왔는지, 이 표정은 무엇을 뜻하는지, 이 침묵은 어떤 상처를 품고 있는지. 사람들은 춤을 보는 척하면서 결국 말을 만들고 싶어 한다. 몸은 그 자체로 두어지지 못하고, 금방 의미가 붙는다. 무용수의 발목에는 늘 서사가 감기고, 땀에는 고통이 부여되고, 침묵에는 과거가 매달린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이해되는 걸 오래전부터 싫어했다.
그런데도 다큐를 허락한 건,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다가오고 있었고, 지원금은 늘 빠듯했고, 이름이 조금 더 알려져야 다음 작업이 덜 궁색해질 거라는 걸 나도 안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현실 감각까지 없을 수는 없다. 결국 나는 계약서에 사인했고, 촬영팀이 연습실에 들어왔다. 스태프는 익숙한 얼굴들이었고, 장비는 늘 보던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 남자였다.
처음 봤을 때, 그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키가 아주 큰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자기 일에 과하게 열정을 드러내는 종류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피곤하다. 예술가를 만나면 세상이 바뀔 것처럼 구는 사람들. 그는 그렇지 않았다.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 손에는 카메라, 말투는 무심하고 질문은 예상 가능했다. 이번 공연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 무용수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는 그런 질문을 너무 많이 들어서, 거의 자동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어떤 감정에서 출발했나요?”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잠깐 발목을 돌렸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습관이 있다.
“감정보다 동작이 먼저였어요.”
그가 웃는 기색을 보였지만, 나까지 따라 웃지는 않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괜찮다. 예민한 편이니까.
그는 카메라를 든 채 나를 오래 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보통은 처음부터 얼굴을 확인한다. 어떤 각도가 예쁜지, 웃을 때 표정이 어떻게 풀리는지, 인터뷰할 때 시선이 어디로 흐르는지. 그런데 그는 내 얼굴보다 다른 데를 먼저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냥 느낌이었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대답하는 입보다, 대답하기 전에 숨을 들이쉬는 목을 찍었다. 걸어 들어올 때 얼굴보다 어깨를 먼저 잡았고, 리허설 영상을 확인할 때도 큰 동작보다 동작이 끝난 뒤를 길게 남겼다.
나는 그런 시선이 조금 불쾌했다.
사람을 훔쳐보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다큐를 찍는 사람들은 대개 두 종류다.
하나는 대놓고 파고드는 사람. 울어야 할 것 같은 질문을 일부러 건드리고, 상처를 입 밖으로 끌고 나와서, 그걸 좋은 장면이라고 믿는 사람. 다른 하나는 전부 존중하는 척하면서 결국 똑같은 걸 가져가는 사람. 그는 둘 다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묻다가도 멈췄고, 찍다가도 카메라를 조금 내렸다. 중요한 얘기를 할 때 오히려 표정을 들이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는 사람은 피곤하다.
예측할 수 없으니까.
첫 촬영 주간이 끝나고 나서, 나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오래 했다.
뜨거운 물이 어깨를 치고 내려오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그 남자의 카메라가 계속 생각났다. 찍히는 건 익숙했지만, 그에게 찍히는 건 조금 달랐다. 내 얼굴이 어떻게 나올지보다, 그가 대체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며칠 뒤 지방 공연을 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시선을 분명히 느꼈다.
분장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나는 의상으로 갈아입기 전에 검은 나시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등을 폈다가, 다시 힘을 빼고, 발목을 한 번씩 접어 보던 중이었다. 무용수는 공연 직전 거울을 볼 때 얼굴을 보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표정 같은 건 그때 중요하지 않다. 몸이 어디까지 열리는지, 오늘 등은 얼마나 가벼운지, 중심이 발바닥 어디쯤에 있는지, 그런 걸 본다.
문 쪽에 인기척이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문밖에 서서 나를 찍고 있었다.
나는 거울 속으로 그를 봤다.
문틀에 반쯤 가려진 채, 들어오지도 물러나지도 않고 서 있는 남자. 렌즈는 올라가 있었고,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쾌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다른 감각이 왔다. 저 사람은 지금 내 몸을 훔쳐보는 게 아니라, 망치지 않으려고 밖에 서 있는 거라는 생각. 그건 아주 미세한 차이인데, 한번 알아차리고 나면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내 등을 떠올렸다.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곳. 거울로만 겨우 확인하는 곳. 그가 찍고 있었던 건 아마 그런 쪽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자기 얼굴은 잘 알지만, 자기 등의 표정은 잘 모른다. 춤출 때 등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 날에는 견갑골 사이가 굳고, 무언가를 참는 날에는 허리가 먼저 잠긴다. 나는 내 등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 남자는 그런 걸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내 쪽을.
그 이후로 나는 그를 조금 의식하기 시작했다.
정말 조금.
그가 들어오면 연습실 공기의 농도가 달라지는 걸 아는 정도.
그의 카메라가 내 쪽을 향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을 한 번 더 세우거나 어깨를 푸는 정도.
그리고 그게 싫어서 더 무심한 척하는 정도.
나는 원래 누군가에게 쉽게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의 말은 대체로 비슷하고, 다정함은 종종 지루하고, 관심은 예상보다 금방 닳는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았다. 질문 자체는 평범했는데, 평범한 질문 뒤에 따라오는 침묵이 달랐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그는 대답이 늦어도 기다렸다. 내가 말을 고르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답을 찾을 때까지. 그것이 나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한 번은 연습이 끝난 뒤 내가 바닥에 앉아 발등을 주무르고 있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고, 창밖엔 비가 오고 있었다. 연습실 안에는 젖은 나무 냄새와 식어가는 체온 같은 게 남아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많이 힘들죠?”
그가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짜증이 났다.
힘들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예술가가 힘들다고 말하면 다들 안심한다. 아, 역시 진짜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망가지고 있으니 진짜 예술을 하는구나. 그 낡은 구조가 나는 늘 싫었다.
“그 질문 싫어요.”
그는 놀란 얼굴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이유를 기다렸다.
“힘들다고 하면 다 좋아하잖아요.”
나는 물병을 내려놓고 그를 봤다.
“예술하는 사람은 조금 망가져 있어야 믿음직하니까.”
“나는 그렇게 안 봐요.”
그 대답이 너무 빨라서, 나는 반대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뭘 봐요?”
그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가벼운 변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말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버티는 걸 보죠.”
나는 그를 봤다.
“망가지지 않으려고 계속 추는 거. 안 되는 날에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 나는 그게 더…”
그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뒤를 들었다.
더 좋다고.
더 오래 남는다고.
더 찍고 싶다고.
그날 이후로 나는 그를 조금 덜 미워했다.
그가 카메라를 드는 방식도 전보다 눈에 들어왔다. 조급하게 들이대지 않았다. 좋은 장면이 왔다고 흥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무너지려는 순간에는 조금 멀어졌다. 처음엔 그게 직업적인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그게 일종의 배려라는 걸 알았다. 상처를 확대하지 않는 방식의 배려. 나는 그런 시선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상한 건, 그럴수록 내가 더 많이 찍히고 싶어졌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쁘게 찍히고 싶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망한 날의 내 얼굴, 붓기가 안 빠진 눈, 발목 때문에 착지가 흔들리는 순간, 리허설이 끝난 뒤 넋 빠진 표정. 그런 것들을 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본다면, 이상하게도 덜 초라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보기 좋은 쪽만 허락하는 건 사실 아주 쉬운 일이다. 진짜 어려운 건 흐트러진 쪽을 보여주고도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 일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믿고 있었을까.
그 질문은 오래 미뤘다.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정해질 것 같아서.
공연을 사흘 앞둔 밤, 나는 결국 연습실에 혼자 남겠다고 했다. 마지막 독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감정이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였지만, 그런 문제일수록 더 집요해진다. 그는 추가 촬영을 하겠다며 남았다. 촬영감독까지 남기기엔 늦은 시간이라, 장비는 대부분 빠지고 그와 나만 남았다.
비는 저녁부터 왔고,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거칠어졌다.
유리창이 물에 젖은 악기처럼 울었다. 연습실 조명은 반쯤 꺼져 있었고, 거울 속 공간은 실제보다 더 넓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음악을 틀고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반복했다. 돌고, 멈추고, 숨을 고르고, 다시 시작했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고 발목은 둔했다. 세 번째쯤에서 나는 완전히 동작을 놓쳤다. 회전이 밀렸고, 착지 후 중심이 흐트러졌다. 나는 짜증이 났다. 음악을 직접 꺼버렸다.
정적이 생겼다.
허리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는데, 그가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아니, 이유는 있었다. 너무 오래 참았던 종류의 화였다.
“그만 찍어요.”
그는 바로 내리지 않았다.
그 몇 초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좋죠? 이런 장면.”
나는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숨차고, 망했고, 몇 번을 해도 안 되고. 예술가가 제일 예쁘게 무너지는 순간.”
그는 그제야 카메라를 내렸다.
밖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유리창이 하얘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아니.”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너무 단순해서.
그래서 더 날카롭게 물으려는데, 그가 먼저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버티는 장면이 좋았어.”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안 되는 날에도 계속 해보는 거. 무너지려고 하는데도 자세를 다시 세우는 거. 나는 그걸 찍고 있었어.”
그 말이 내 안에 바로 들어오진 않았다.
조금 돌아서, 조금 늦게, 이상할 만큼 깊게 들어왔다.
버티는 장면.
누가 내 춤을 그렇게 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개 결과를 본다. 잘 된 공연, 실패한 공연, 오늘의 컨디션, 리뷰에 남을 장면. 그런데 그는 버틴다는 동사를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이 남자가 정말 다른 데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천둥이 머리 위에서 쳤다.
연습실 불이 한 번 꺼졌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복도 쪽 비상등이 희미하게 살아 있었고, 창밖 번개가 몇 초마다 실내를 스쳐 지나갔다. 어둠이 오자 이상하게도 그가 더 가까워 보였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를 봤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남자로. 늘 렌즈 뒤에 숨어 있어서 표정을 다 읽기 어려웠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그는 조금 지쳐 있었고, 조금 당황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나를 참고 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은요?”
그가 눈을 들었다.
“지금도 찍고 싶어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를 나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딱딱한 장비가 바닥에 닿는 그 소리.
두 달 동안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얇은 벽이 처음으로 물성을 갖고 무너지는 소리.
나는 그 순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셔츠에 비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하루 종일 장비를 들고 다닌 사람의 냄새. 깔끔하게 정리된 향수 냄새가 아니라, 오래 움직인 남자의 체취. 나는 이상하게 그게 안심이 됐다. 현실적인 냄새라서. 화면이나 문장으로 바뀌기 전의 몸 냄새.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았다.
정말로 그것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한 번만.”
그 말이 무엇의 허락이었는지 나도 모른다.
키스의 허락이었는지, 카메라 없이 나를 보라는 허락이었는지, 아니면 나도 당신을 보겠다는 뜻이었는지.
그가 입을 맞췄을 때, 나는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 장면을 알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의 입술은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좋았다. 그는 정말 한 번도 사람을 함부로 만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내게 닿았다. 나는 그 조심스러움이 마음을 건드렸다. 어떤 다정함은 손보다 먼저 속도를 통해 드러난다.
그의 손이 내 뺨 옆, 젖은 머리카락 아래에 닿았을 때 나는 눈을 감았다.
바깥에서는 비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고, 천둥은 조금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내 연습복은 땀에 젖어 있었고, 그의 셔츠는 약간 서늘했다. 두 체온이 맞닿는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찍히는 게 아니라 만져진다고 느꼈다. 몸이 장면이 아니라 몸으로 돌아오는 느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일이었다.
키스가 끝난 뒤에도 나는 바로 떨어지지 못했다.
이마를 그의 턱 아래에 기대고 서 있으니, 그의 숨이 위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면 오히려 싸구려가 될 것 같았다. 어떤 순간은 말보다 체온이 정확하다.
나는 조금 웃었다.
내 목소리가 너무 가까운 데서 나와서, 내 것 같지 않았다.
“이건 못 찍겠네요.”
그가 따라 웃었다.
“응.”
“아쉽죠?”
나는 농담처럼 물었지만, 사실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결국은 기록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오늘 밤만큼은 아닌지.
그는 나를 보고 말했다.
“아니.”
그 한마디가 이상할 만큼 좋았다.
찍히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남지 않아도 된다는 말.
누군가가 내 한 장면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
나는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한동안 설명할 수 없었다.
아마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봐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잘 추는 몸으로가 아니라, 잘 버티는 몸으로.
예쁜 장면으로가 아니라, 그 장면이 오기 전까지 무너지지 않은 사람으로.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