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II

실시간 민준

by 윤담


비가 오기 전의 공기는 늘 금속 냄새가 났다. 지하철 선로 아래를 파고든 물기와 브레이크 패드가 갈리며 남긴 가루 냄새, 오래된 환풍구를 지나며 식어버린 기계의 숨 같은 냄새가 저녁마다 플랫폼 위를 얇게 덮었다.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지 못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퇴근한 얼굴, 이어폰을 꽂은 얼굴, 장을 본 비닐봉지를 발끝에 매단 얼굴, 어딘가로 급히 메시지를 보내는 얼굴. 모두 화면 안쪽으로 조금씩 몸을 기울인 채, 마치 지금 이 순간보다 다음 순간이 더 중요하다는 듯 기다리고 있었다.
민준은 그 틈에 서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라이브 방송 대기창엔 아직 열세 명이 들어와 있었다. 열세 명. 화면 아래엔 “형 오늘 뭐 터뜨리나요?” “진짜 제보 맞죠?” “낚시면 차단함” 같은 말들이 하얗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입술을 한 번 핥고 카메라 각도를 바꿨다. 형광등 불빛이 얼굴 한쪽에만 걸려 피부가 더 창백하게 보였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진실처럼 소비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민준의 계정 이름은 실시간민준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이름은 아니었다. 대학을 그만두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하게 게임 영상을 올리던 사람이었다. 조악한 편집, 별것 아닌 리액션, 친구들과 잡담하며 한 시간을 허비하는 식의 방송.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그 자신도 그걸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겨울, 한 번의 우연이 생겼다. 집 앞 편의점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진열대를 걷어차고 경찰이 오기까지 십 분 남짓 소란을 피웠다. 민준은 심심풀이로 그걸 찍어 올렸고, 다음 날 아침 영상 조회 수가 수십만이 되어 있었다. 제목은 “새벽 2시, 우리 동네 미친 사람 떴다”였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그를 게임하는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다음 소동을 기다렸다. 다음 싸움, 다음 폭로, 다음 제보, 다음 ‘실시간’. 세상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고, 타인의 불행은 생각보다 빨랐다. 누군가 넘어지는 장면, 누군가 울며 소리치는 장면, 누군가 망신당하는 장면은 언제나 다른 영상보다 더 멀리 갔다. 그 속에서 민준은 처음으로 숫자가 돈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후원금이 들어왔고, 광고 제안 메일이 도착했고, “민준님, 이번 건 같이 키워볼 수 있을까요?” 같은 메시지가 DM으로 쌓였다.
그해 봄, 어머니가 다니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재개발 때문에 상권이 죽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앞치마를 개켜 두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한동안만 쉬자, 뭐.” 그러나 그 말의 끝이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처럼 서늘하게 들렸다. 집에는 중학생인 여동생 서윤이 있었고, 전세 계약은 몇 달 남지 않았고, 밀린 카드값이 냉장고 옆 자석 밑에서 봉투째 늘어났다. 민준은 점점 더 오래 화면 앞에 앉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처음엔 싫어했다.
“남 망신 찍어서 먹고사는 건 아니지.”
“그럼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데.”
“편의점이라도 가든가.”
“편의점 가서 한 달 백오십 버는 동안 여기선 이틀 만에 들어와.”
그때부터 어머니는 더 말하지 않았다. 반대해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의 침묵이 생겼다. 대신 그 침묵은 식탁 위에 놓이는 반찬의 수를 줄였고, 밤마다 세탁기를 돌리다 말고 베란다 창밖을 오래 보는 시간을 늘렸다. 민준은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지 않는 쪽으로 집 안을 걸었다.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처음의 거짓말은 작았다.
“오늘 밤 큰 거 옵니다.”
그 말은 정말 아무 뜻도 없었다. 큰 게 올 거라는 제보는 없었다. 다만 그날따라 조회 수가 바닥이었고, 후원도 뜸했다. 그는 사람들을 붙잡아둘 말이 필요했다. 그러자 누군가 채팅창에 물었다.
“어디요?”
민준은 손가락을 튕기듯 대답했다.
“아직 장소는 못 깜. 확실해지면 바로 킵니다.”
그 말은 그저 시간을 버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다렸다. 열세 명이 백 명이 되고, 백 명이 오백 명이 되었다. 그 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기대를 먹고 더 늦은 시간까지 남았다. 결국 새벽 두 시가 넘어가자 채팅창은 욕으로 가득 찼다. 민준은 죄송하다고 했다. 제보자가 막판에 발을 뺐다고, 자기도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고, 다음엔 제대로 가져오겠다고.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다음 방송엔 더 많이 들어왔다. 혹시 이번엔 진짜일까 싶어서.
민준은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사실 진실보다 기대를 더 오래 붙들고 있다는 걸. 한 번 놓친 사람들은 다음번엔 놓치지 않으려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걸. 거짓말이 들킨 자리에도 다시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걸.
그 뒤로 그는 종종 불씨를 만들었다.
“대형 카페 사장 갑질 제보 받음.” “연예인 지망생 스폰 논란 자료 있음.” “우리 동네 학원 원장 폭행 사건 곧 공개.”
어떤 날은 제보가 있었지만 빈약했고, 어떤 날은 제보가 없었지만 제목이 있었다. 제목은 사건을 끌고 왔고, 사람들은 사건이 오기 전에 먼저 몰려왔다. 민준은 늘 아슬아슬한 선을 걸었다. 명확한 이름은 가리지 않되 확정적인 단어는 피하는 식으로, “~라는 말이 있다”, “제보가 들어왔다”, “확인 중이다” 같은 회색지대를 발밑에 깔았다. 그러면 책임은 조금씩 흐려졌고, 관심은 더 선명해졌다.
그는 점점 잘하게 되었다. 화면 앞에서 숨을 한번 멈추는 타이밍, 입술을 조금 깨무는 타이밍, “이건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라고 뜸 들이는 타이밍까지. 거짓말은 문장이 아니라 호흡이라는 걸 그는 배웠다. 사람들은 말보다 망설임을 믿었다. 확신보다 떨림을 믿었다. 진짜로 본 것 같은 침묵, 차마 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빛 같은 것을 믿었다. 그는 그 모든 걸 연기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화면 밖에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자주 잊히는 것들. 어머니가 퇴근 없는 집안일을 하며 허리를 펴는 순간의 숨소리, 서윤이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 셔츠 소매를 두 번 접고 냉장고를 여는 습관, 그리고 다혜.
다혜는 민준이 아직 평범하던 시절에 만난 사람이었다. 문예창작과를 다니다 휴학했고, 카페에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썼다. 그녀는 민준이 처음 영상을 시작했을 때도 “그래도 네 말투는 사람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민준이 화제가 된 이후에도 다혜는 그의 방송을 거의 보지 않았다. 대신 만나면 물었다.
“요즘은 어때.”
민준은 처음엔 솔직하게 말했다. 잘나간다고, 힘들다고, 잠을 못 잔다고,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자꾸 더 큰 걸 해야 할 것 같다고. 다혜는 커피잔을 돌리며 들었다. 유리컵 벽을 따라 미세한 물방울이 내려오는 것을 손등으로 만지다가, 조용히 말했다.
“계속 그렇게 달려가면 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스스로 못 볼 수도 있겠다.”
“다들 이 정도는 해.”
“다들 하는 게 네가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러나 오래 남는 말이 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민준은 다혜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숫자에 중독되고 있었다. 구독자 수, 조회 수, 동시접속자 수, 후원금 액수. 그것들은 물처럼 흘러가면서도 손에 잡히는 유일한 현실 같았다. 무엇보다 그것들은 집에 당장 필요한 것이었다. 서윤의 학원비, 어머니의 병원비, 밀린 관리비. 그래서 그는 늘 속으로 변명했다. 나는 욕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고. 나는 버티기 위해 이러는 거라고. 가족을 위해 이러는 거라고.
하지만 거짓말은 늘 목적보다 빠르게 자란다. 처음엔 생계를 닮은 얼굴을 하고 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신을 먹고 커진다.
어느 초여름 밤, 민준은 한 지역 정치인의 불륜 제보를 다루는 방송을 켰다.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사진은 흐렸고, 인물도 분명치 않았다. 배경 역시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날 경쟁 채널 세 곳이 동시에 비슷한 이야기를 흘리고 있었다. 민준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방송에서 말했다.
“제가 단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너무 정황이 많아요. 그리고 추가 자료도 들어오는 중입니다.”
추가 자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채팅창은 폭발했고, 클립이 퍼졌고, 이튿날 오전엔 지역 커뮤니티가 시끄러웠다. 문제는 그 정치인의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서윤이 그날 울면서 돌아왔다는 데 있었다. 누군가 그 소문의 영상을 보고, 서윤이 민준의 동생이라는 걸 알아본 뒤 교실에서 말을 던진 것이다.
“네 오빠 또 사람 하나 잡았더라.”
서윤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턱을 타고 교복 깃으로 스며들었다. 민준은 거실에서 노트북을 닫다 말고 굳어 있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다가 상황을 보고 서윤을 끌어안았다.
“왜, 무슨 일인데.”
서윤은 흐느끼며 말했다.
“학교에서 다 알아. 다 알아. 오빠 영상 보여주면서… 애들이….”
어머니의 시선이 민준에게 향했다. 그 눈빛엔 분노보다 먼저 피로가 있었다. 오래 참아오다 마침내 무엇이 무너졌는지 확인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너, 도대체 어디까지 갈 거니.”
민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돈 가져다주는 거, 고맙지. 안 고마운 줄 아니. 그런데 사람이 사람 얼굴 못 들고 살게 만드는 돈이면 그게 무슨 돈이냐.”
“확정된 것도 아니었어. 다들 그런 식으로 말해.”
“다들 그런다고 네가 괜찮아지는 건 아니지.”
서윤은 그날 저녁을 먹지 않았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민준은 문 앞에 우유를 놔두고 서성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문 너머로 가끔 기침하는 소리가 났고,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아마 친구들의 메시지일 것이다. 아니면 놀리는 메시지일지도 몰랐다. 민준은 그 문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방송이 가족의 얼굴에 직접 닿는다는 사실을 아주 물리적으로 느꼈다. 마치 자기가 던진 흙탕물이 골목을 돌아 집 문틈 아래로 스며드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다혜를 만났을 때, 그는 처음으로 변명하지 않았다. 둘은 한강 근처 산책로에 앉아 있었다. 물 위에 흩어진 도시의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길게 찢어졌다 붙었다 했다. 다혜는 긴 시간 말을 아꼈다. 그녀의 침묵은 늘 상대가 스스로 말하도록 만드는 침묵이었다.
민준이 낮게 말했다.
“나 그만해야 할까.”
다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민준의 손등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이상하게 위로보다 작별처럼 느껴졌다.
“네가 정말 그만하고 싶은지부터 생각해야지.”
“그만하면… 집이 버틸까 모르겠어.”
“버티는 방식이 꼭 그것뿐일까.”
“다른 건 너무 늦어.”
“늦은 거랑 틀린 건 다르잖아.”
민준은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운동화 끝으로 바닥의 모래를 밀었다. 물가에서는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누군가 웃는 소리, 배달 오토바이의 모터음 같은 것이 섞여 들려왔다. 삶은 여전히 평범하게 흘러가는데, 자기만 너무 멀리 나가버린 느낌이 들었다.
다혜가 말했다.
“민준아, 나는 네가 유명해지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네가 스스로를 못 믿게 되는 게 무서워.”
그 말은 강물보다 더 차갑게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사람은 대개 가장 중요한 경고를 들은 직후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대신 잠깐 흔들리고, 흔들린 자신을 다시 원래 자리에 묶어놓는다. 민준 역시 그랬다. 며칠 동안 조용히 지냈고, 자극적인 방송을 줄였다. 대신 ‘동네 맛집 리뷰’, ‘무명가수 길거리 공연’, ‘새벽 편의점 알바 브이로그’ 같은 무난한 콘텐츠를 올렸다. 조회 수는 처참했다. 광고 단가는 떨어졌고, 월말 정산 금액을 확인한 어머니의 침묵은 더 길어졌다. 관리비 고지서가 또 왔다. 서윤은 학원 하나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괜찮지 않은지 가족이라면 다 알 수 있었다.
그때 민준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형, 이번엔 진짜 큼. 신도림 쪽 폐창고에서 미성년자 약물 파티 한다는 제보 있음. 사진 일부 확보. 경찰 아직 모름.”
발신인은 예전에 두어 번 사소한 제보를 보냈던 계정이었다. 정확한 사람인지, 장난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첨부된 사진은 어두웠다. 깜빡이는 조명 아래 탁자 하나, 알약처럼 보이는 것, 술병 몇 개, 젊어 보이는 뒷모습들. 진짜일 수도, 그냥 시끄러운 생일파티일 수도 있었다. 민준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건 위험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잘 팔릴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확인만 하자. 현장만 보고, 아니면 아닌 대로 철수하면 되지. 단정 안 하면 되지.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고, 이번 한 번만 지나면 숨통이 트일 거라고.
그날 저녁 그는 라이브 예고를 올렸다.
“오늘 밤 11시. 진짜 심각한 현장 갑니다. 미성년자 관련이라 조심스럽지만 그냥 넘길 수 없네요.”
게시물은 한 시간도 안 되어 빠르게 퍼졌다. 누군가는 정의를 말했고, 누군가는 경찰 신고부터 하라고 했고, 누군가는 “실시간민준 드디어 다시 일하네”라고 반겼다. 다혜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만해. 이번엔 느낌이 너무 안 좋아.
민준은 답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날 방송하러 나가는 민준을 보며 물었다.
“오늘도 늦니?”
“응. 제보 확인하고 올게.”
“위험한 건 하지 마라.”
“알았어.”
알았다는 말은 늘 쉽게 나왔다. 쉬운 말일수록 지키기 어려웠다.
신도림의 폐창고는 옛 인쇄공장 뒤편 좁은 골목 끝에 있었다. 간판이 떨어진 건물들, 셔터가 절반쯤 녹슨 가게들, 깨진 유리창에 합판을 덧댄 창문들이 줄지어 있었고, 바닥엔 어제 내린 비가 아직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민준은 라이브를 켜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함께 오기로 한 후배 편집자 준호는 몸살이 심해 못 왔다. 결국 혼자였다. 가방 안에는 보조배터리, 짐벌, 소형 무선마이크, 셀카봉이 들어 있었다. 도구들은 익숙한데 손바닥은 이상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라이브를 켰다. 시청자 수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천 명, 삼천 명, 오천 명. 채팅은 흘러내리는 폭포 같았다.
“경찰 불렀나요?” “형 조심.” “진짜면 레전드.” “이번엔 증거 제대로 잡자.”
민준은 카메라를 자신 쪽으로 돌린 뒤 낮고 빠르게 말했다.
“지금 제보받은 장소 앞에 와 있습니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었고요. 일단 상황만 확인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보시겠지만, 이건 공익 제보 차원입니다.”
공익. 그는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목 안이 조금 말랐다. 그러나 시청자 수가 만 명을 넘기자 그 건조함마저 흥분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힌다는 감각. 손끝 하나, 발걸음 하나가 실시간으로 소비된다는 감각. 그 감각은 어쩔 수 없이 달았다.
창고 옆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서 분명 음악 소리가 들렸다. 베이스가 낮게 바닥을 울리고 있었다. 민준은 카메라를 앞으로 들이밀며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예상보다 넓었다. 천장 파이프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고, 한쪽엔 버려진 인쇄 기계가 검은 덩어리처럼 서 있었다. 멀리서 조명이 번쩍였다. 정말 누군가 파티를 하고 있었다.
민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카메라를 낮춰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게 하며 앞으로 갔다. 젊은 남녀 여러 명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고, 중앙의 테이블엔 술병과 과자 봉지, 작은 플라스틱 통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약물인지, 그냥 비타민인지, 과자 캔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소파에 기대 웃고 있었다.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얼굴도 있었지만, 요즘 스무 살도 어려 보이는 건 흔했다.
민준은 주춤했다. 이건 애매했다. 너무 애매했다. 여기서 “약물 파티”라고 확정하면 큰일이었다. 그냥 빠져나가는 게 맞았다. 그는 입술을 떼고 조심스럽게 말하려 했다. “현재까진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정리하고 끝내려고.
그때 채팅창이 폭주했다.
“테이블 확대!” “알약 있다!” “형 빨리 신고!” “도망가면 증거 없어진다!”
만 명 넘는 시선이 휴대폰 안에서 등을 밀었다. 사람들은 이미 이야기의 결론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는 그 결론에서 물러나는 것이, 갑자기 겁을 먹은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번 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한 발 더 다가가 카메라를 테이블 쪽으로 들이밀었다. 누군가 그를 발견했다.
“야, 뭐야?”
민준은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여기 미성년자 약물 의심 파티 제보로 왔습니다! 이거 뭐예요? 설명해보세요!”
음악이 뚝 끊겼다. 몇몇이 소리를 질렀다. 카메라 앞에 손이 들어왔다. 화면이 흔들렸다.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촬영하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민준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방송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극적인 장면이 잡힐 거라 생각했다. 그 짧은 순간, 그는 위험보다 그림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은 늘 통제되지 않았다.
창고 안쪽에서 어떤 여자가 뛰어나왔다. 긴 머리가 어깨에 엉겨 붙어 있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소리쳤다.
“누가 119 좀 불러요! 사람 쓰러졌어!”
순간 현장이 뒤집혔다. 음악을 틀던 스피커 소리보다 더 큰 침묵이 생겼고, 모두의 시선이 구석 소파 쪽으로 쏠렸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바닥에 기대 축 늘어져 있었다. 입가에는 토한 흔적이 묻어 있었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찾았고, 누군가는 “술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아까부터 호흡 이상했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민준은 얼어붙었다. 이건 방송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신고해야 했다. 달려가 도와야 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여전히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화면 속 시청자 수는 이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채팅은 아수라장이었다.
“어 뭐야 진짜네” “119 불러요” “캠 돌리지 말고 도와” “주작 아니지?”
민준은 허둥대며 119를 누르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면 너머에서 익숙한 닉네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윤봄_ : 오빠 제발 그만하고 도와.
그 순간 손끝이 얼음처럼 굳었다. 서윤이 보고 있었다. 민준은 머릿속이 텅 비는 걸 느꼈다. 여동생이 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 수만 명과 함께. 오빠가 또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장면을.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방송을 끄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그를 밀쳤고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이 깨지며 영상이 삐뚤어진 채 천장을 비췄다. 욕설, 울음, 발소리, “숨 쉬어? 숨 쉬어?” 같은 말이 뒤엉켰다. 민준은 허리를 숙여 휴대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며 119와 112에 동시에 신고했다. 말을 더듬으며 주소를 설명하는 동안 혀가 입안에서 자꾸 꼬였다. 손은 떨렸고, 눈앞이 번졌다.
구급차와 경찰이 도착하기까지의 몇 분은 이상할 만큼 길었다. 그는 창고 문 밖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스스로를 쓸모없는 물체처럼 느꼈다. 누군가에게 물 한 컵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문턱에 걸린 사람. 무엇보다 머릿속에는 방금 본 닉네임이 계속 떠올랐다. 서윤봄_. 여동생은 얼마나 오래 그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어떤 얼굴로 보고 있었을까.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들것에 실어 나를 때, 카메라가 없는 민준은 오히려 더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경찰은 현장을 통제했고, 민준에게도 이것저것 물었다. 어떻게 제보를 받았는지, 왜 먼저 신고하지 않았는지, 어떤 경위로 들어가 촬영했는지. 민준은 대답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 것 같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몇몇은 그를 알아보고 노려봤다. 어떤 여자는 “사람 죽을 뻔했는데 방송부터 켠 거예요?”라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민준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날 새벽 두 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 불은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서윤은 식탁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지만, 공기 전체가 이미 무언가를 다 보고 난 뒤처럼 무거웠다.
민준이 문을 닫자 어머니가 물었다.
“살았대?”
그는 잠시 멈췄다. 경찰이 병원으로 이송했다고만 말했지, 생사를 확답하지는 않았다.
“아직… 모르겠어.”
어머니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오래 말이 없었다. 마침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사람 살리러 간 거니, 죽는 장면 찍으러 간 거니.”
민준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서윤이 그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오빠, 나 학교에서 놀림받는 건 참을 수 있었어. 엄마도 힘든 거 아니까. 근데 오늘은….”
그녀는 여기서 말을 멈췄다. 한참 뒤,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이어 말했다.
“오늘은 오빠가 너무 무서웠어.”
그 말은 욕보다 아팠다. 민준은 숨을 제대로 들이마실 수 없었다. 집 안의 모든 사물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냉장고 위의 약봉지, 싱크대 옆 행주, 서윤의 학교 가방, 어머니의 낡은 슬리퍼. 그는 이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믿으며 달려왔는데, 정작 이 집 안에서 가장 먼저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일주일 동안 민준은 방송을 켜지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쉬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의 라이브 영상을 복제해 퍼뜨렸고, 자극적인 장면만 짜깁기한 쇼츠가 쏟아졌다. 제목은 제각각이었다. “실시간민준, 마약파티 현장 급습!”, “사람 쓰러졌는데 방송한 유튜버”, “가짜 제보로 난입한 렉카의 최후”. 댓글은 둘로 갈렸다. 누군가는 공익 제보라고 했고, 더 많은 누군가는 관종이라고 했다. 몇몇 언론은 그의 실명을 가리지 않은 채 기사를 썼다. 광고주 둘이 계약을 취소했다. 협찬 예정이던 브랜드는 답장을 끊었다.
다혜는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민준도 먼저 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화면만 바라봤다. 계정 구독자는 하루에 몇백 명씩 빠져나갔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악명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세상은 늘 누군가 무너지는 장면을 소비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붕괴를 팔아왔듯, 이제 사람들은 그의 붕괴를 팔아먹고 있었다.
사흘째 되던 밤, 그는 병원 앞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소파에 쓰러졌던 그 청년의 상태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차마 병동 안내 데스크 앞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사람 쓰러질 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병원 정문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는 거의 마시지 못했다. 찬 기운만 손바닥에 오래 남았다.
결정적인 소식은 닷새 뒤 왔다. 그 청년은 끝내 죽지 않았다. 위세척과 응급처치로 목숨은 건졌지만, 흡인성 폐렴이 왔고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약물은 불법 마약이 아니라, 누군가 해외직구로 구해온 다이어트 약과 수면유도제를 술과 함께 먹은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미성년자는 섞여 있었지만 모두가 미성년자는 아니었고, 창고는 파티룸처럼 무단 사용 중이던 공간이었다. 민준의 ‘미성년자 약물 파티’라는 프레임은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진 것이었다.
기사 말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현장에 난입해 인터넷 생중계를 한 20대 스트리머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및 명예훼손 혐의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민준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종이 위 잉크처럼 문장이 눈 안쪽에 스며들었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벽을 오래 보았다. 벽지는 한쪽 모서리가 살짝 들떠 있었다. 예전엔 몰랐던 작은 틈이었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그는 거기서 자꾸 집이 새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뒤 다혜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짧은 메시지였다.
할 말이 있으면 만나자.
둘은 처음 만났던 카페 근처를 걸었다. 벚꽃은 이미 다 지고 없었고, 인도 가장자리에 마른 꽃자루와 먼지만 얇게 남아 있었다. 다혜는 예전보다 더 말라 보였다. 밤을 몇 번 설친 사람처럼 눈 밑이 어두웠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을 때 말했다.
“병원은 가봤어?”
“앞까지.”
“들어가진 못했고?”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서?”
“응.”
다혜는 신호등이 바뀌는 걸 보며 조용히 말했다.
“네가 잃은 게 뭔지 알아?”
민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돈일까, 계정일까, 이미지일까, 가족의 평온일까. 어떤 것도 쉽게 입 밖에 나올 수 없었다.
다혜가 말했다.
“네가 제일 먼저 잃은 건 두려움이었어. 하면 안 되는 일 앞에서 사람이 느껴야 하는 두려움. 그게 없어지니까 네가 점점 더 멀리 간 거야.”
민준은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정말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남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 일도, 확실하지 않은 소문을 흘리는 일도,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도. 처음엔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두려움이 마모되자 경계도 같이 사라졌다.
다혜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네가 잃은 건 나일 수도 있어.”
민준은 숨이 멎는 듯했다. 다혜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녀의 속눈썹 끝에 빛이 아주 얇게 걸려 있었다.
“나는 네가 완벽하길 바란 적 없어. 실수할 수도 있지. 그런데 네가 네 실수를 매번 생계라는 말로 덮는 걸 더는 보기 힘들어.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점점 더 사람들의 환호를 먹고 있잖아. 나도 그걸 모른 척해주기 너무 오래 했어.”
“다혜야.”
“미안해. 나도 미안해. 일찍 더 세게 말했어야 했는데.”
민준은 무릎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차들이 지나가는 바람이 바짓단을 흔들었다. 신호등의 초록 불이 켜졌지만 둘은 바로 건너지 않았다.
“그만둘게.”
그는 가까스로 말했다.
“정말 그만둘게.”
다혜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젖어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만두는 건 네가 나를 붙잡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어야 해. 네가 네 삶을 다시 사람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하는 거여야 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다혜는 천천히 등을 돌려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민준은 부르지 못했다. 그녀의 뒷모습은 특별한 장면도 없이 멀어졌고, 오히려 그래서 더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다. 횡단보도 흰 줄 사이로 바람에 밀린 꽃자루가 굴러갔다. 아주 가벼운 것들이 떠나갈 때는 이상하게도 더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날 밤 민준은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 아무 장치 없이 방송을 켰다. 제목은 단순했다. 죄송합니다. 시청자는 금방 수천 명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사과를 보러도 몰려왔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조명도 켜지지 않아 얼굴 절반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제가… 많은 분들께 피해를 드렸습니다.”
입을 떼자 목이 쉬어 있었다. 그는 종이를 준비해두지 않았다. 준비한 문장은 결국 면피처럼 들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더듬더듬 실제로 떠오르는 말을 했다.
“확실하지 않은 제보를 부풀렸고, 자극적인 말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공익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관심과 돈을 놓치기 싫었던 것도 맞습니다. 그 결과로 현장에 있던 분들, 제 가족, 그리고 저를 믿었던 사람들까지 다치게 했습니다.”
채팅창은 여전히 냉소와 조롱, 욕설, 드문 위로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그걸 다 보며 계속 말했다.
“계정은 정리하겠습니다. 수익도 환원할 수 있는 부분은 정리해서 공개하겠습니다.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머릿속에 다혜의 말이 지나갔다. 네가 제일 먼저 잃은 건 두려움이었어.
“그리고… 저는 사람을 보는 눈보다,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그게 제일 큰 잘못이었습니다.”
그 말 이후 채팅창이 잠시 느려졌다. 그는 그걸 끝으로 방송을 종료했다. 화면이 검게 꺼지자 방 안엔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울렸다.
계정을 정리하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예전 영상 중 삭제할 것은 지웠고, 피해가 갈 수 있는 클립엔 비공개 처리를 걸었다. 후원 내역 일부는 상담을 받아 기부와 피해 지원 명목으로 정리했다. 법률 상담도 받았다.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끝까지 합의를 원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그의 진심을 믿지 않았다. 그 불신은 당연했다. 거짓말을 여러 번 본 사람은 마지막 진실조차 쉽게 믿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 모든 과정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저녁, 민준이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말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돼. 그런데 얼굴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 힘들다.”
민준은 물이 흐르는 싱크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접시의 물비늘이 형광등 아래서 희미하게 떨렸다. 그는 그 말이 꾸중이 아니라, 어머니가 아주 늦게 건네는 구조 신호라는 걸 알았다. 아직 완전히 등을 돌린 건 아니라는 뜻. 그 사실이 오히려 미안해서 더 아팠다.
서윤과는 더 오래 걸렸다. 그녀는 당분간 오빠를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식탁 위에 올려둔 삶은 달걀 껍질을 민준이 무심코 까고 있을 때, 서윤이 말했다.
“나 다음 주 발표회 있는데 올 거야?”
민준은 손을 멈췄다. 아주 사소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엔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는 뜻이 희미하게 들어 있었다.
“가도 돼?”
“와도 되고.”
그는 웃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삶은 달걀의 흰자에서 뜨거운 김이 얇게 올라왔다. 이렇게 작고 평범한 문장 하나가 어떤 사과보다 멀리 도달할 때가 있었다.
민준은 이후 택배 상하차, 편의점 야간, 행사장 철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몸은 훨씬 피곤했고, 돈은 적었고, 밤이면 종아리가 뻐근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잠은 전보다 더 깊이 왔다. 어느 날은 새벽 편의점 냉장고 유리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랐다. 초췌했지만, 이전처럼 누군가의 시선을 먹고 번들거리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건 초라함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늦게 되찾은 사람의 얼굴일 수도 있었다.
가끔은 손이 근질거렸다. 큰 사건이 터졌다는 기사가 보이면 본능처럼 제목을 뽑고 싶어졌다. 예전처럼 한 줄만 던져도 다시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았다. 그 유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거짓말을 잘하던 사람은 거짓말의 편리함을 너무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민준은 그 유혹 앞에서 아주 선명한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창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청년의 희멀건 입술, 방송을 보던 서윤의 손가락, 어머니의 소파 위 굳은 어깨,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다혜의 젖은 눈동자. 그 얼굴들이 그를 멈춰 세웠다. 마치 한 번 불에 데인 사람이 난로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재듯, 그는 뒤늦게 두려움을 되찾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처음으로 공기가 조금 말라붙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민준은 서윤의 학교 발표회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뒷산 입구에 잠시 앉아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아직도 아이들 목소리가 멀리서 흘러왔고, 전깃줄 위엔 까치 한 마리가 몸을 부풀린 채 앉아 있었다. 서윤은 발표회에서 플루트를 불었다. 긴장해 음 하나를 살짝 놓쳤지만,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고 곡을 끝냈다. 무대 아래에서 그걸 바라보는 동안 민준은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람은 이렇게도 정직하게 제 몫의 숨을 불어 넣으며 한 곡을 끝낼 수 있구나 싶어서였다. 누구를 속이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해가 거의 넘어간 산기슭의 풀잎들은 하루 종일 받은 빛을 천천히 식히고 있었다. 민준은 손바닥으로 벤치 결을 쓸었다. 오래된 나무는 매끈한 곳과 거친 곳이 번갈아 있었다. 그는 문득 아주 오래전,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의 삽화를 떠올렸다. 양치기 소년이 언덕 위에서 아래 마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처음엔 장난으로 늑대가 왔다고 외쳤고, 사람들은 달려왔고, 그는 웃었다. 또 외쳤고, 또 사람들이 달려왔고, 그는 더 크게 웃었다. 그러다 진짜 늑대가 왔을 때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그 이야기의 끝에서 소년은 양을 잃었다.
민준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소년이 정말 잃은 것이 양 몇 마리만은 아니었다는 걸. 그는 누군가 자신을 믿고 달려와줄 거라는 세계 자체를 잃은 것이다. 세상과 자신 사이를 이어주던 아주 가느다란 다리 하나를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는 부서지고 나면 다시 놓기가 몹시 어렵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엔 다혜의 이름이 아니라,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받자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 민준 씨 맞으세요?”
“네.”
“예전에 창고 사건 때… 거기 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민준의 손끝이 굳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네.”
“그날 쓰러졌던 애, 제 동생이었어요.”
주변 소리가 갑자기 멀어졌다. 운동장의 함성도, 바람 소리도. 민준은 벤치 끝을 꽉 잡았다.
“죄송합니다.”
그 말은 너무 작고 늦었다. 남자는 잠시 조용했다가 말했다.
“사과 받으려고 전화한 건 아닙니다. 동생이… 퇴원했고, 아직 학교 복귀는 못 했어요. 인터넷에 얼굴은 안 나왔지만, 그날 일 때문에 많이 망가졌습니다. 저도 당신 엄청 원망했어요.”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데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누군가 보는 앞에서 계속 더 세게 놀고 더 망가지는 척했다고. 다들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기대를 깨기 싫어서. 당신도 비슷했을 거라고.”
남자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더 깊은 데서 올라오는 것처럼 들렸다.
“용서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당신도 끝까지 사람 아닌 쪽으로 가버리진 않았으면 해서.”
통화는 길지 않았다. 끊고 나서도 민준은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저녁의 어둠이 벤치 아래부터 천천히 차올랐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 안쪽이 뜨거웠다. 누군가 완전히 닫지 않은 문틈으로 아주 작은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빛이 구원인지 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진 않았다는 뜻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준은 편의점 앞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시 보았다. 예전 같으면 각도를 먼저 봤을 것이다. 조명이 어디서 떨어지는지, 얼굴선이 어떻게 살아나는지, 화면에 어떻게 잡힐지를 먼저 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냥 한 사람의 실루엣을 보았다. 약간 구부정한 어깨, 피곤한 눈, 그래도 똑바로 걷고 있는 다리. 특별할 것 없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이제야 조금 진짜 같은 사람.
현관문을 열자 집 안에 된장찌개 냄새가 퍼져 있었다. 어머니가 국을 끓이고 있었고, 서윤은 식탁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흘렀다. 아주 평범한 저녁이었다. 민준은 신발을 벗고 들어서다가 잠깐 멈췄다. 이 평범함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얼마나 쉽게 잃는 것인지, 그리고 한번 잃고 나면 얼마나 오래 걸려야 다시 문 앞까지 돌아올 수 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왔어?” 어머니가 물었다.
“응.”
“손 씻고 와라.”
“응.”
서윤이 연필을 굴리다 말고 물었다.
“오빠, 발표회 영상 찍은 거 있어?”
민준은 잠시 서 있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반사적으로 말했다. 잘 찍었지, 예쁘게 편집해줄까, 조회 수도 꽤 나올 것 같다고. 그러나 그는 그냥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없어. 이번엔 그냥 눈으로 봤어.”
서윤은 뜻밖이라는 듯 그를 한번 보더니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래도 됐어.”
그래도 됐어.
그 말이 작은 불씨처럼 가슴 안에 남았다. 민준은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수돗물은 미지근했고, 손등 위를 미끄러지며 흘러내렸다. 거울 속 그는 여전히 초라했고, 아직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인터넷에 남은 영상들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끝내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상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손을 씻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아주 오래 잊고 있던 감각 하나를 느꼈다. 부끄러움과 비슷하지만, 부끄러움만은 아닌 것. 상처를 손가락으로 덮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때 생기는, 아프지만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 그것은 아마 다시 사람이 되는 쪽으로 몸을 돌릴 때 맨 처음 찾아오는 감각인지도 몰랐다.
밖에서는 어머니가 국자를 냄비 벽에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서윤이 문제집 페이지를 넘기는 바스락거림이 들렸다. 저녁은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창밖의 어둠은 유리창에 조용히 붙어 있었다. 민준은 수도꼭지를 잠그고 잠시 젖은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물방울이 한 알씩 손금 사이에 맺혀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털어내지 않고 문을 열어 다시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옛날 이야기 속 소년은 늑대가 왔을 때 양을 잃었다. 현대의 소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잃는다. 거짓말이 불러온 것은 늑대의 이빨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소와 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빈 얼굴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신뢰를 잃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맑은 눈을 잃고, 가장 늦게는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잃었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자리에서도 어떤 저녁은 여전히 식탁을 차리고, 누군가는 “그래도 됐어”라고 말해준다. 세상은 한 번 무너진 사람에게 그렇게 쉽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지만, 아주 작고 조용한 형태의 생활은 가끔 그보다 더 오래 버틴다.
민준은 식탁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밥그릇을 밀어주었다. 된장찌개의 김이 얼굴로 올라왔다. 그는 숟가락을 들기 전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잃어버린 것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 이름들은 당장 되돌릴 수 없었다.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혹은 끝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 그는 늑대를 부르는 대신, 저녁이 식지 않도록 제 앞의 밥을 먹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날, 아주 먼 훗날, 누군가 다시 그의 말을 믿어준다면 그때는 알게 될 것이다. 믿음이란 한순간 사람을 몰아세우는 조회 수보다 훨씬 느리고, 훨씬 가볍게 오는 대신, 한번 놓치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된다는 것을.
그는 말없이 첫 숟가락을 떴다. 국은 조금 짰고, 조금 뜨거웠다. 그 평범한 뜨거움이 이상하게 오래 혀 위에 남았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의 빗소리가 창문을 얇게 두드렸다. 아무도 늑대라고 외치지 않았다. 아무도 뛰어나가지 않았다. 그저 집 안의 세 사람이 제각기 다른 침묵 속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소리가, 민준이 이제 다시 붙잡아야 할 세계의 첫 번째 소리처럼 들렸다.


작가의 말


우리는 무엇을 붙잡기 위해 삶을 이토록 부풀리는가.
무엇이 사라질까 두려워 말을 키우고, 장면을 키우고,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키운 허상 속으로 밀어 넣는가.
그 끝에서 우리가 쥐는 것은 과연 헛것일까. 아니면 비록 일그러진 형태일지라도, 끝내 붙잡고 싶었던 어떤 실제였을까.
요즘의 세상은 더 이상 선과 악으로만 나뉘어 설명되지 않습니다.
뉴스를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수록, 우리는 너무 단순한 판결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누군가는 사랑받기 위해 과장하며, 누군가는 두려움 때문에 끝내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진실처럼 믿고 맙니다.
그리하여 잘못은 분명 잘못인데, 그 잘못에 이르는 마음의 결까지 단숨에 잘라 말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이 이야기는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진실보다 더 빠르게 부풀어 오르는 말과 이미지와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에 대한, 아주 편린적인 감각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누군가를 쉽게 단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타인의 시선을 먹고 자라며, 얼마나 자주 자기 자신조차 소비 가능한 이야기로 바꾸어 버리는지를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거짓말은 늘 악의 얼굴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생존처럼 보이고, 애씀처럼 보이고, 사랑의 다른 이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고, 그래서 더 늦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이야기 속 인물이 잃어버린 것은 단지 어떤 한 사람이나 기회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이어주던 믿음의 감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나는 이 소설이, 거짓말을 꾸짖는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부풀리고, 무엇 때문에 끝내 무너지는지를 되묻게 하는 이야기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아주 늦더라도 다시 사람 쪽으로 몸을 돌릴 수 있기를, 그런 희미한 가능성 또한 함께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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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