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인간 I
나는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순진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고의로 상처를 준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상은 우리를
“이기적이고 타락한 인간들”이라 불렀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닳아 있었다.
선의는 빠르게 침식되었고, 윤리는 거래의 언어가 되었다.
교회의 사람들은 신보다 헌금을 중시했다.
기도는 믿음의 언어가 아니라 투자 계획처럼 들렸다.
십자가 아래에서 속삭이던 말들 중,
진심보다 많은 것은 계산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악이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욕망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패턴이라는 걸.
사람들은 신을 흉내 내며 자기 확신을 예배했다.
조금만 더 벌면, 조금만 더 높이 올라가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믿음은 이미 균열난 땅 위에 세워진 신전이었다.
직장의 공기도 교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폭력은 언제나 규율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명령, 보고, 충성, 효율
그 단어들은 군대의 훈령이자, 회사의 철학이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었고,
누구도 완전히 순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일종의 전시 하에 살았다.
모든 회의는 참호였고,
모든 인사는 포로 교환처럼 이루어졌다.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얼굴을 봤다.
상냥하지만 잔혹한 사람들,
도덕을 말하지만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거울 속 자신을 보지 않았다.
그저 오늘을 버티기 위해,
조금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매일 자신을 덜어냈다.
그 덜어낸 만큼 인간의 결은 닳아갔고,
그 자리를 자기합리화가 메웠다.
그때 나는 한 사람을 기억한다.
회사에서 늘 조용하던 과장이었다.
그는 점심시간마다 사원 식당의 한 구석에 앉아
같은 반찬만 먹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사라졌다.
출근길에 쓰러졌다는 소식만 남았다.
그의 책상 위엔 메모 한 장이 있었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한다고 믿었다.”
그 문장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그의 부재는 단순한 결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윤리가 침식된 자리였다.
그 자리는 지금도 내 안에서 빈공간으로 남아 있다.
모든 상황은 전쟁 같았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 웃음은 방어기제였다.
폭력은 언어로 이루어졌고,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 되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나도 조금씩 변해갔다.
비겁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새 나도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거짓말.
겸손하지만 무력한 순응.
그건 살아남기 위해 배운 문법이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침식은 단 한 사람의 탓이 아니었다.
그건 구조와 세대, 그리고 두려움이 함께 만든 현상이었다.
선량한 사람들조차 방어하려다
같은 방식으로 남을 다치게 했다.
삶의 체계가 허물어질 때,
인간은 선악보다 생존을 선택한다.
그건 본능이자, 시대의 윤리였다.
나는 교회의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도 결국 자신이 믿던 질서 속에서 침식된 존재였다.
믿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믿음을 유지할 방법이 사라졌던 시대였다.
그들의 탐욕은 신앙의 왜곡이 아니라,
공동체가 무너진 후에 남은 불안의 형태였다.
지층의 표면이 깎이면,
그 아래엔 오래된 물결무늬가 드러난다.
인간도 그렇다.
윤리가 깎인 자리에는 또 다른 무늬가 생긴다.
그 무늬는 부끄럽지만, 진실하다.
그건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시간이 인간에게 새긴 존재의 단면이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겪은 침식은 죄가 아니라 기록이다.
그 기록은 다음 세대를 위한 암석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 결은 단단해지고,
언젠가 누군가 그 표면을 쓸며 말할 것이다.
“여기, 인간이 살았다.”
나는 여전히 탐사 중이다.
거리의 표정, 교회의 설교, 회사의 공기,
그리고 내 안의 잔향까지.
침식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침식은 더 조용하고, 더 정교하다.
그 속에서도 나는 믿는다.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인간은 여전히, 다시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