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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May 04. 2020

리더는 모른다고 말한다

팩트와 의견의 차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매일 화상 회의의 연속이다. 

뉴질랜드 현지 법인의 운영 전반에 걸친 의제들과 그룹 전반을 관통하는 의제들이 시시각각 올라온다. 

Sales & Marketing (SM) Division에 속한 나는 뉴질랜드에서 매일 정오에 열리는 임원 회의뿐 아니라 호주-뉴질랜드 지역을 관장하는 시드니 본사와의 SM 회의, 세일즈 마케팅 HQ가 있는 싱가포르에서 주재하는 SM 화상 회의, 영국 제품 서비스의 호주 뉴질랜드 시장 진출을 위한 런던 소재 판매 책임자와의 회의까지 매일 많으면 7~8개, 최소한 3~4차례의 회의에 참석한다. 시드니와 시차 2시간, 싱가포르와 상하이가 5시간, 영국은 11 시간이 빠르다. 정기 일간, 주간 회의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의제가 생겨 열리는 즉석 회의들도 빈번하다. 밤 9시 회의나 주말 회의도 자주 열린다. 회의 시간은 짧으면 15분, 평균 30분 내외, 길어도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그룹 차원의 대 의제가 떠오르면 그 중요도에 따라 지역별 소 의제들로 분산되어 각 분과들, 예를 들면, 회계, 운영, 마케팅, 판매, 영업, 운영 법규팀까지 협업하는 소규모 회의들로 이어진다.

화상 회의는 Skype Business Call이나 Zoom Meeting Tool을 이용한다  (사진은 특정 회사와 무관)

시장 상황이 급변하니 그에 따른 회의를 주관하는 Senior Management급 고위 간부의 회의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회의 주관자는 상하이 본부장이다. 우선적으로 그가 주관하는 회의는 짧으면 20분 길어도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우선 미팅 소집과 함께 최소 하루 전 의제 리스트 (Meeting Agenda)가 이멜로 들어온다. 

곧 해당 의제 각각에 대한 데이터가 첨부돼 공유된다. 회의 참석 전 해당 보고서를 숙지해야 한다.

회의가 시작되면 각 지역 별로 해당 의제에 대한 보고가 차례로 이루어진다.

다음은 시장 확보 및 타개에 대한 전략과 준비 또는 실행 중인 전체 또는 지역 캠페인에 대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이다. 

회의를 하다 보면 데이터만 나열하는 지역 담당자, 해당 데이터는 젖혀 놓고 자신의 생각만 말하는 담당자, 데이터와 자신의 생각을 동일시해서 발표하는 담당자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런 발표 형식이 반복되자 본부장이 명쾌하게 선을 그어주었다. 모두의 발표가 순차적으로 끝난 후, 자신이 준비한 전체 요약으로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우선 시장 동향에 대한 데이터를 요약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는 검증된 팩트입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팩트는 누구나 접근해서 산출할 수 있는 절대 치이다. 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수립한 전략은 상대 치이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전략 수립의 첫 시작은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해 공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체 팩트 중에서 특정 부분만 짜깁기 해 전체를 오도하는 왜곡된 분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입증된 팩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각과 생각, 개인 경험과 감정을 담은 의견이 나오고 이에 대해 토론하면 된다. 리더는 그 팩트와 개인의 생각, 감정, 경험을 토대로 한 의견 사이의 선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어주어야 한다. 


그날 회의 말미 내가 발표한 뉴질랜드 호주 이민 정책 변경에 대해 그는 그렇게 바뀌었는지 미처 몰랐다고 스스럼없이 인정했다. 회의 참석자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 그가 무능한 본부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 변경이 발표된 것이 하루 전이었고, 각 지역별로 챙겨 볼 사안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루 이틀 내로 그 보고가 올라갈 것임 또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굳이 그걸 몰랐다고 인정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아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을 확실하게 꿰뚫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다.

그가 정책 변경에 따른 후속 조치를 지켜본 후 다음 회의 때 지역 별 전략 수립 안을 두 가지씩 준비하자며 회의를 마쳤다. 그가 주관하는 회의가 언제나 간략하고 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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