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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Sep 18. 2020

리더는 비난하지 않는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으니까

퇴근 무렵, 협력사 D사장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오클랜드 하버가 보이는 해산물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Auckland Habour 야경

오클랜드는 현재 lockdown 레벨 2.5. 버스나 기차 등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다.   

이곳은 화이트 와인과 생굴의 조합이 일품이다

오래간만에 저녁 나들이다.
형제처럼 지내는 D사장과 만난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반가웠다. 

그는 상하이 출신이다. 20여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 전부터 이미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다. Covid-19의 여파로 업계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D사장은 과감한 시설 재투자를 결정, 현재 진행 중이다. 타 협력사들이 감원과 재택근무를 일상화한 상황에서 주말도 없이 매일 사무실에 나와 3개월째 시설 투자를 진두지휘 중이다. 

"모두가 움츠려들 때가 바로 업계 선두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술잔을 비우며 지난해 함께 다녀왔던 소주, 서주, 상해로 이어진 중국 출장과 오클랜드 근교의 등산 등 사적인 얘기들을 한동안 나눴다. 화제는 다시 시설 투자로 옮겨졌다. 내년 하반기 프로젝트 론칭을 위한 시설 투자가 회사의 사활을 건 엄청난 도박임을 그의 얼굴에 언뜻언뜻 드리운 그림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9월 말 끝나는 1단계는 D사장 회사의 중간 간부인 X가 실무 책임을 맡고 있다. X와는 나도 여러 차례 함께 일을 해봤던 차라 의외였다. 왜냐하면 그는 D사장의 핵심 간부가 아니다. 일 처리가 똑 소리 나고 추진력이 대단한 반면, 독단적이고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항상 받아야 하는 자기애가 강한 성격이기에 주위에 적들도 많다. 

한국과는 달리 뉴질랜드에선 업무 영역 외에 성별, 출신 국가, 학력, 경력, 나이, 젠더는 장애 요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의 어느 하나라도 차별할 경우, 해당 차별자는 물론 책임자까지 일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명백한 증거 자료에 기반하여 법정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 각자가 맡은 업무 영역과 서열을 지키면서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방적으로 지시 내리고 따르는 흑백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당한 자율성이 부여된다. 그만큼 각자의 실력은 데이터를 근거해 수시로 평가된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첫 번째 단추를 X처럼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에게 맡겼다는 게 의외였다. 

'실력 하나 보고 맡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팀원들과 업무 공조하는 관리자들이 탐탁하게 볼 리 만무했다.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평판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번 시설 1차 단계가 끝나면 2차, 3차 단계의 책임자는 X와는 다른 무난한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건의까지. 

전방위적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지난주 전 직원회의를 소집해 단박에 쐐기를 박았다고 했다.

"어떻게 쐐기를 박았냐"라고 물으니, 그가 껄껄 웃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상사, 부하 직원들 중에서 바꾸고 싶고, 개선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누구냐고 묻지 않을 테니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손을 들라"라고 했다.

처음엔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한 둘이 손 들더니 결국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더라는 것이다.

"좋다. 우리 회사에 개선되어야 하고 개선시켜야 할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회사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우리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당신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 각자 자신부터 그렇게 만들어 보는 게 어떤가? 자신의 단점을 먼저 찾아내고 서서히 바꿔나가는 것이 당신이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 상대를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실현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D사장은 시설 투자 2단계, 3단계까지 모두 X에게 맡길 것이라고 했다. 

"비판하고, 비난하고, 불평하는 것은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다. 실지로 대부분의 바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내 오십 평생에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봤고 겪고 있다. 아무리 날 선 비판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지적하더라도 사람의 본성은 결코 고쳐지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고 고치기 전까진."
그는 X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떠벌이고 팀원들을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때론 직원들의 공을 가로채기까지 한다는 것까지. 멀리서 봐도 빤히 보일 것이다. 

평상시에 필요한 '무난한 관리자'는 차고 넘친다. 생사를 건 전투에 임해선 승리하는 지휘관이 필요하다. 그는 특유의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반발과 비난을 무릅쓰고 정해진 일을 기한 내에 끝낼 것이다.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고, 그 신뢰를 저버릴 만큼 무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선적이지만 그런 지휘관이 부하들의 목숨을 살린다. 정작 그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나도 D사장도 X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의 부정적인 면만 들춰내서 비난하는 대신, 장점을 찾아내는 것이 비상시 오너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다.

가끔씩 주의를 준다고 한다. 

"잘한 일을 한 다음에 그 잘한 것을 먼저 화끈하게 칭찬하고 솔직하게 인정해준다. 그다음 알아듣게 슬쩍 지나가는 얘기로 건드리는 정도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과연 그것이 X에게도 D사장에게도 훨씬 유익한 선택일 것이다. 

바보들을 품을 수 있는 리더는 그 바보들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품는다. 비난하고 비판해봤자 그 바보의 자존심이라는 화약고에 불만 당길 뿐이다. 그 화약고가 폭발하면 그 바보를 포함한 주위의 어려 사람들이 다친다. 일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돈과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칭찬과 비난이냐, 생존을 위한 전투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간은 없다. 

선택은 언제나 리더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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