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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Sep 11. 2016

함께 일하고 싶은 리더

A 부장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매사 '네가 알아서 하라'는 주의였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당시의 난 의욕이 만개하던 시절인지라 그것이 엄청난 불만이었다.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가끔씩 특정 업무가 주어지면 1주일 넘게 굶주린 늑대가 토끼 사냥하듯 발가벗고 달려들어 뚝딱 해치웠다. 그리곤 다음 고기 덩어리가 던져지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굵직한 취재거리를 기다렸다.

그는 가끔씩 "건너편 신문에선 이런 기사가 나오는데 왜 우린 이렇게 쓰는 기자가 없지.." 마치 혼잣말하듯 잠시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한 2~3개월에 한 번씩 "이런 걸 저쪽 시각에서 기획해서 한 번 파보는 게 어때?"하고 다른 일간지의 비슷한 시리즈를 툭 내게 던지곤 그만이었다. 총총 사라지는 그의 낡은 슬리퍼 (당시 편집국에서 부장급 이상은 모두 슬리퍼를 신었다)를 쳐다보며 속으로 '이런 건 회의실에 마주 앉아서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툴툴거렸다. 

갓 입사한 새내기 기자가 그런 기획 시리즈의 전체 그림을 그린다는 건 맨 땅에 헤딩을 한 스물여섯 번쯤 한 뒤 피멍이 겨우 아물어 갈 때쯤 스토리의 핵심을 쥐고 있는 취재원을 찾게 마련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더듬거리고 가려니 더딘 데다 시행착오를 무차별 겪어야 했다. 시리즈를 마감한 날, 부장과 술자리에서 쌓인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가 대뜸 "네 프로필을 보고 부서 배정 첫날부터 눈여겨봤다가 그 시리즈를 준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2년 반쯤 후 부서 이동으로 B부장을 새로이 모시게 됐다. 그는 해당 부서 전체가 그로부터 시작해서 그로부터 끝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점심도 열댓 명이 모두 우르르 함께 나가 먹었고 메뉴는 '꽁보리밥에 소주로 모두 통일!' 하는 그런 식이었다. 좌중을 단박에 압도하는 카리스마도 있었고, 밑의 차장급부터 기수대로 줄 세우기를 좋아했다. 무엇보다 그는 실력이 있었다. 그가 과거에 쓴 몇몇 기사는 일간지 기사의 고전으로 꼽혔다. 그래서인지 기사체나 양식도 그의 틀에 맞추어야 했고, 취재에 대한 진행도 사사건건 개입하고 지시했다. 권위적이었다. 사다리 맨 끝에 달려있던 나와 내 동기, 우리 밑의 신참 내기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가급적 모두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하는 일과 장소는 전혀 틀리지만 팀원들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게 된 지 꽤 되었다. 물론 리더란 자신이 리더라고 떠벌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특히 팀원들이 리더라고 인정해야 참 리더가 된다. 두 가지 상반된 유형의 직장 상사를 비교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자주 되묻는다. 끄뜨머리에선 매번 똑같은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가?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은 리더가 되길 원한다. 팀원들 스스로가 따르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각자의 커리어에 방향을 제시하는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리더라면 이상적일 것이다. 팀원들이 두려워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의 시대가 가고 리더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서번트 리더의 시대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감성의 리더십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한편 거절할 줄 모르고 오히려 팀원들의 비위를 맞추며 안팎 모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착한 리더는 결국 모두에 대한 저주라도 얘기도 있다.


리더십의 원천은 그 리더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평소 생각과 가치관, 사물을 보는 시각과 접근하는 태도, 이에 따른 언행이 아우러져 일상에서 배어져 나온다면 내가 어떤 리더인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앞서 실례로 언급한 A와 B부장의 리더십 스타일은 A와 B부장의 인성과 품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 잘하고 못해서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리더가 먼저 시작하고 변화하지 않은 채 팀원들, 단순히 그들의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그들을 리더의 스타일에 짜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팀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고 따르고 싶어 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 두 가지 습관이 내 살갗 밑의 살처럼 살아 움직일 때까지 꾸준히 훈련한다. 

첫째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실한 이해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상황에선 이것 대신 저것을 선택했는지 그에 따른 결과를 보면서 나 자신의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걸으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자주 조용히 앉아 명상에 빠진다. 잡념을 몰아내고 나 스스로와 차근차근 얘길 나누면서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놀랍게도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너무 많다. 이렇게 나를 이해할수록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중국 일본 뉴질랜드 각양각색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들과 함께 매일 일하며 부서를 이끈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국 사람이란 생각하고 느끼는 것 마찬가지란 걸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표현하려고만 한다. 이때 그 사람을 먼저 이해하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따라서 소통도 원활해진다. A 부장은 부장 자신의 관점이 아닌 상대인 나의 관점에서 판단해서 프로젝트를 배정했다. 그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소통의 달인은 아니었을지언정.


둘째는 자기 신뢰, 즉 자신감이다. 자신감이란 좌중을 압도하고 휘어잡는 격렬한 카리스마도 시끄러운 떠벌림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넉살 따위가 아니다. 자신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남의 시선이나 생각, 수군거림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는 대신 자신을 활짝 드러낼 수 있는 용기다. 강하다는 건 결국 자신을 열어 보여줄 수 있다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한때 자신을 나락에 빠뜨린 실패, 패배감, 절망 그리고 외로움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에 언제나 당당하다. 훌륭한 리더 중에서 탄탄대로의 쉬운 과거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옛 말은 그래서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민주주의가 최악 중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엔 동의하지만 결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B부장의 예에서 보듯 자기 확신이 있는 리더는 언제나 민주적일 수 없다. 가끔씩은 "나를 따라와"라고 웅성거림을 일순 잠재울 수 있어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해"라고 밀어붙여야 조직이 적시적소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리더십 연마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환율이 올랐어, 사장이 도대체 비전이라곤 없어, 팀원들이 멍청이야, 고객이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을 들고 나와 골 때리겠어 라고 핑계부터 늘어놓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지위나 직급 경력 나이 따위를 내세우는 사람 역시 그저 흔해 빠진 직장 상사일 뿐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의 내면이고 그곳에서 마무리된다.


"사람, 사물 또는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을 바꾼다면 당신이 바라보는 그 대상들이 바뀔 것이다"

                                                                                                                                          - 웨인 다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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