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보는 관점 다시 세우기 : 마케팅은 생존이다
사회자 : "마케팅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 : "돈 벌어다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마케팅 컨퍼런스에서 패널로 초청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회자분과 대담하던 중에 제가 생각하는 마케팅에 대해서 한 줄로 설명한 기억이 납니다.
혹시 "마케팅으로 돈 벌어 온다니. 마케팅은 돈 쓰는 부서 아니었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케팅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조직이 매출을 만드는 것에 반드시 기여해야만 합니다.
마케팅을 단순히 "돈 벌어다 주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게 너무 짜치거나 가볍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제가 지난 10년간 마케팅을 경험하면서 체감한 가장 현실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정의입니다.
마케팅에 대해서 거창하고 위대한 비전과 포부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마케팅 조직의 비전을 "우리 서비스를 모든 사람이 알게 하자!"와 같은 멋진 포부를 갖고 일하기도 합니다. 멋진 도전 의식이지만 마케팅은 그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마케팅 성공 사례가 넘쳐납니다. SEO를 잘한 사례, 퍼포먼스와 크리에이티브가 독창적인 사례, 팝업스토어나 브랜드 필름 등 브랜드 마케팅으로 호평받는 사례 등등. 하지만 그게 정말 비즈니스에 이롭게 작용했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합니다.
"여기 마케팅 잘했다!"라고 비중 있게 다뤄진 기업인데 어느 순간 경영이 어렵다고 기사가 나는 경우도 많지 않던가요? 슈퍼스타를 모델로 쓰고 때깔 좋은 영상을 뽑아내며 마케팅은 호평을 받았지만, 기업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는 회사가 있습니다. SEO로 돈 안 쓰고 성공적인 마케팅 성과를 냈다고 하는데 여전히 수익은 없다면 아직 한참 갈 길이 멉니다. 팬과 소통하며 기업 이미지를 높인 사례로 기사에도 나오고, 담당자가 연사로도 활약하는데, 정작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 갑자기 다른 길로 빠져드는 회사도 있습니다.
마케팅을 잘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 사실 그건 마케팅 잘한 게 아닌 겁니다. 한창 스타트업 붐이 일던 시절, 비즈니스를 고려하지 않고 마케팅에 너무 투자한 나머지 그로 인해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물론 성공과 실패에는 다양한 요소가 작동합니다. 위에 언급한 모든 상황이 단지 마케팅을 못 해서 초래한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케팅과 비즈니스는 직결됩니다. 마케팅은 회사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직이 건강하게 자리 잡으려면 2가지 축이 견고히 서야 합니다. 첫 번째는 비전이라고 하는 가치이고, 두 번째는 수익이라고 하는 현실적 기반입니다. 마케팅이 수익과 성과를 외면하고, '비전'이라는 가치만 바라보는 순간 기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브랜딩과 팬덤이 중요하다고 해서 마케팅에 비전과 가치를 강제하면서, 마케팅으로 만들어야 할 수익성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면... 글쎄요, 생존해 낼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조직을 사업체, 또는 법인이라고도 합니다. 사업체는 한자어로 '몸 체(體)'를 씁니다. 법인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사람 인(人)'을 쓰지요. 조직에는 여러 부서가 있고 부서마다 맡은 역할이 다릅니다. 사람의 신체로 이해하면 쉽지요. 피를 순환시키는 역할, 소화를 돕는 역할, 생각을 하고 지시하는 역할, 물건을 드는 역할을 하나의 조직이 다 할 수 없습니다. 각기 맡은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신체로 동작합니다. 각자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어느 직무가 어느 직무를 무시하거나 사일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케팅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 마케팅 직무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본말이 전도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저는 제가 해온 경험과 또 하고 있는 현재의 마케팅을 '돈 벌어오는 일'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돈 버는 일에 집중한다고 회사의 비전과 제품의 가치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따로 노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사의 가치와 비전에 공감하기에, 동료 구성원들의 열망과 헌신과 집중력을 존중하기에, 제품의 탁월함에 자신이 있기에, '돈 벌어 오는 마케팅'을 열심히 해서 마케팅으로 사업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짜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명색이 마케팅 조직장인데 어디 가서 "마케팅은 돈 벌어오는 일 해야 해요."라고 하기가 폼나지는 않는 거 같아서 다른 표현법을 좀 찾기는 했습니다.
이미 마케팅에 대한 학술적 개념 정의들은 많습니다. 불필요하게 다 찾아서 설명하는 건 지면 낭비일 거 같으니 다 패스할게요. 여기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을 소개합니다. 필립 코틀러가 말하는 마케팅입니다. <코틀러의 마케팅원리 제18판> 에서 부분 발췌하였습니다.
마케팅은 고객 인게이지먼트를 높이고 수익성 있는 고객 관계를 관리하는 과정
마케팅은 개인과 조직이 다른 이들과 가치를 창출하고 교환함으로써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는 사회적·관리적 과정
마케팅은 기업이 고객을 관여시키고, 강력한 고객 관계를 구축하며, 그 대가로 고객으로부터 상응하는 가치를 얻는 과정
중요한 키워드들을 꼽아보자면 "고객, 수익성, 관계, 가치, 교환"이 아닐까 합니다. 코틀러의 마케팅 정의를 다르게 표현하면 곧, "기업과 고객의 가치 교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서로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다르니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와 고객이 그에 상응하게 기업에게 돌려주는 가치의 모양과 형태는 다른 것이죠.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에는 기업의 비전과 미션이 담겨 있을 것이고, 기능적인 편리함이나 감성적인 만족감 등을 모두 아우릅니다. 반대로 고객이 기업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매출, 수익성, 고객 자산이 포함됩니다. 다시 말해서 마케팅은 "수익성"을 고려하는 게 기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멋지고 화려한 마케팅, 뉴스레터와 언론에 소개되는 마케팅 사례를 꿈꾸지 말라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그게 마케팅의 핵심이 아니며, 사업이 성공적으로 굴러간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기업과 고객의 가치 교환'이라는 마케팅의 정의를 어떻게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코틀러가 제시한 개념들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마케팅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이 가치 교환의 구조를 커뮤니케이션 모델로 치환해 마케팅 구조를 설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케팅으로 파고 들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