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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개구리 Jul 11. 2016

그녀의 '덫' #31

가벼움과 무거움의 거리

무경과 같이 여행을 가기 위해서 하나와 근무 로테이션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오후 늦은 타임이어서 주부들이 많은 시간대였고, 난 하나 대신 수업에 들어가 몸을 풀고 있었다.


수강생이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명상음악을 BGM으로 이십여분 정도 흘러 점점 자세에 집중하고 있을 때, GX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거울 앞에 있는 나를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야! 네가 김하나야? 이 뻔뻔한 년! 네가 감히 내 남편을 꼬셔?"

"누구시죠?"

"누구? 너 나 몰라? 나 이동진 와이프다 이년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내 머리채를 잡았다.


"네가 우리 남편 꼬셨다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싫다는 사람을 네가 붙잡고 매달렸다며! 애까지 있는 유부남을!!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너 같은 년은 혼 좀 나봐야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갑자기 머리채가 잡힌 난, 그녀의 말을 듣다가


"이거 놓고 얘기하시죠?"

"뭐라고? 뭘 놓고 얘기해!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 상황을 지켜보던 주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더 힘을 주어 내 머리를 흔들어댔다. 난 다시 그녀에게


"좋게 말할 때 놓으세요."

"안 놓으면? 어? 안 놓으면 네가 어쩔 건데?"


그 상황에서 난, 마음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고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머리채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비틀어 꺾었는데, 무게 중심이 무너지면서 그녀가 비명을 질렀고,


"아야! 이 년이 사람 잡네! 아이고! 남의 남편 꼬셔서 바람까지 핀 년이 나까지 잡네! 아이고!!!"


바닥에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쳐다보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소리에 오여사와 센터 강사들이 GX실로 우르르 들어왔다.

오여사가 상황을 보더니


"서 선생!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왜 그래? 이 분은 누구시고!"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고 돌아온 하나가 뒤따라 안으로 들어오며


"예랑아!"


창백해진 얼굴로 다가온 하나.

동진의 와이프는 당황한 듯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김하나 아니야?"

"김하나는 전데요."


그녀에게 담담하게 말하는 하나.

그러자 동진 와이프는 또다시 눈이 뒤집혀 하나의 머리채를 휘잡았다.


"네가 김하나야? 넌 오늘 죽었어!"


하나의 머리가 뽑힐정도로 흔들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오여사와 강사들이 달려들어 말렸지만, 동진의 와이프는 아랑곳없이 악을 쓰며 하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참지 못한 난, 그녀의 머리채를 같이 붙잡았고, 요가실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세 여자가 기묘한 자세로 서로의 머리를 휘어잡고 소리를 질러대자, 강사들이 서둘러 수강생들을 GX실 밖으로 내보냈고, 오여사는 핸드폰을 들었다.


"거기 경찰서죠? 여기 스포츠센터인데 수업 중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행패를 부려서요. 잠시 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셋은 그렇게 서로 발로 차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거 놓으세요!"

"시끄러워 이년아! 어디서 이 저래라야?"

"좋게 말할 때 그만하세요."

"안 좋게 말하면 어쩔 건데! 어? 너 지금 날 협박해? 넌 김하나도 아니면서 뭔데 나서고 지랄이야? 넌 빠져!"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오여사가 피티실로 호출을 했고, 잠시 후, 헬스 강사 셋이 안으로 들어왔다. 건장한 남자들이 떼어내자 그의 팔에 매달린 동진 와이프가 헬스 강사까지 때리며 계속 악을 썼고, 난 머리가 산발이 된 채 하나를 쳐다보았는데, 그녀의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하나야!"


그녀는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이내 눈가가 촉촉해졌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 역시 찢어질 듯 아팠다.


잠시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GX실 안으로 들어왔고,







얼마 후, 파출소에서 나란히 앉은 하나와 나. 그리고 끌려와서도 계속 발악을 하고 있는 동진 와이프를 진정시키기 위해 경찰관 두 명이 잡고 말렸지만, 도저히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어진 하나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자, 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네가 왜 울어. 울지 마. 네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 괜찮아."


그 말에 하나가 더 서럽게 울었고, 잠시 후, 경찰관의 연락을 받고 온 동진이 파출소 안으로 들어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와이프를 쳐다보는 동진. 그의 등장에 잠잠해진 그의 와이프.


"여보!"


그는 자신의 와이프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뺨을 때렸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 이젠 내 뒷조사가까지 하냐?  돈 벌어다주면 집에서 얌전히 살림이나 하고, 애나 잘 키우면 돼지.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동진의 와이프가 금세 빨갛게 부어오른 볼을 감싸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그게 아니고, 난 당신이 걱정이 돼서."

"네 걱정이나 해! 이게 무슨 망신이야! 내 얼굴에 똥칠하고 싶냐? 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조용하라고 했다."


동진이 낮게 으르렁대자 와이프가 숨을 참으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경찰관에게 다가간 동진.


"이 여자 남편입니다. 보아하니 여자들끼리 오해가 생겨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심각한 것도 아니니까 조용히 해결하시죠."


그의 당당한 모습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경찰관.


"선생님. 상호 간에 육체적인 폭행이 있어서요. 이건 서로 합의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동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니, 무슨 이 정도 합의를 보고 말고 해요? 누가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이건 그냥 해프닝이지."

"그래도 선생님 와이프께서 먼저 시작하신 거라, 아예 없던 일로 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이 분과 합의하시죠."


경찰관이 하나를 가리키자, 동진이 그녀에게 다가가


"하나야! 우리 그냥 없던 일로 하자. 너나 나나 일 커지면 좋을 것 없잖아?"


그의 말에 하나가 고개를 들어 그를 쏘아보았는데, 그녀의 눈빛에 움찔한 동진.


"아니, 솔직히 너 유부남 만나면서 이런 거 예상 못한 거 아니었잖아. 안 그래?"

"네가 먼저 말했어?"

"뭐?"

"네가 가정이 있다고 나한테 말을 했었냐고."

"야, 그건! 어차피 내가 말했어도 달라질 것 없었다니까. 나 좋다고 죽어라 쫓아다닌 건 너잖아."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난,


"이세요. 이동진 씨."


그가 흘깃 날 쳐다보았는데, 난 앞에 놓인 종이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던졌다.


"당신 지금, 그게 할 소리냐 이 개자식아?"


그가 물에 흠뻑 젖어 욕을 하기 시작했고, 난 하나의 앞에 놓인 종이컵을 들어 다시 그의 얼굴에 던졌다. 찬 물에 이어 뜨거운 믹스커피로 물벼락을 맞은 동진이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고,


"너 XX 죽고 싶어?"


달려와 내 앞에서 손을 번쩍 치켜든 동진.

그 순간, 그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뻗어나오더니 동진의 주먹을 막았다.

무경이었다.


"무경 씨."


그는 동진을 한 손으로 제압해 넘어뜨렸고, 동진은 순식간에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넌 또 뭐야 이 새끼야! 왜 남의 일에 끼어들고 지랄이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빌딩을 몇 개를 갖고 있는 줄 알아?"


그런 동진을 한심하게 쳐다본 무경이 나에게 다가와


"자기야, 괜찮아? 어디 다친덴 없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샅샅이 바라보는 그를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에선 기가 죽은 동진의 와이프와 벌떡 바닥에서 일어난 동진이 삿대질을 하며,


"네 애인이었어? 저 년이 내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끼얹어서 내가 지금 화상 입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고소할까? 이거 병원 가면 전치 10주는 받아. 저런 또라이를 애인이라고. 나 참."


그 말을 듣고 있던 무경이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는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강변호사님. 오늘 일이 좀 생길 것 같은데, 처리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깽값이 나갈 것 같네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 무경이 차분한 표정으로 동진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멱살을 잡았다.


"다시 말해 봐. 방금 뭐라고 했어?"


동진은 그에 아랑곳없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입을 놀렸는데,


"네 애인이 미친X 또라이라고 했다. 왜?"

"그래? 그럼 그런 나한테 맞아도 당연한 거네. 그렇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동진의 얼굴에 '퍽!' 주먹을 날린 무경.

다시 바닥에 뒹군 동진이 막으려 바둥거렸지만, 무경의 힘에 꼼짝을 못했고, 그 모습에 동진 와이프가 비명을 지르며, 파출소 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난 보았다. 동진에게 주먹을 날리는 그의 표정을.

싸늘하면서도 웃고 있는 무경의 눈빛. 마치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이.......




그녀의 ''은 연속간행물입니다. 1편부터 보시면 스토리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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