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과 오은영이 불편한 이유
‘백종원’이라는 방송가의 블루칩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맛있다는 그의 레시피는 초보 주부와 요알못 청춘을 넘어 전 국민을 사로잡았다. 실용주의 요리와는 반대편에 있다 여겨지는 이들조차 그를 좋아했다. 비법 식재료를 정성으로 우린 육수와 가문의 레시피를 지키는 것이 미덕인 사람들—이를 테면 대를 잇는 음식점이나, 종갓집 며느리에게 그는 해방감을 선사했을지 모른다.
설탕과 조미료 사용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시판 고추장을 쓰지 않겠다는 고집을 시대에 뒤떨어지는 꼰대로 취급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백종원식 요리는 방송을 넘어 모두의 요리 캠페인이 되었다. 사업가이자 방송인으로서 실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뼈를 때리는 단호한 언변으로 우리를 설득했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좋았는데 특히 <골목식당>은 내게도 강력한 도파민을 선사했다.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면 아무리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다 괜찮아졌다. 그가 출연자 선정에 관여한다거나 거친 말을 쓴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 백종원이 그 모든 것을 쥐고 흔들었는지 아닌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진 않다.
촬영 현장에는 급이 있다
내가 몸담았던 잡지 업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광고 촬영 현장에는 위계가 있었다. 명품 브랜드가 찾는 광고를 찍는 사진가로 자신을 증명한 패션 포토그래퍼는 많은 권한을 가졌다. 오케이 컷이 영 나오지 않던 어느 날 선배는 어시스턴트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클라이언트 브랜드팀, 광고대행사 대표와 직원들, 스타일리스트 팀, 모델, 매니저, 잡지 편집장까지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다. 순식간에 촬영장은 조용해졌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장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인간의 급이 있었다. 쌍욕을 먹어가며 사수에게 일을 배우는 것이 통하던 시대였다. 사진가는 가장 약한 막내 스텝에게 화를 냈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촬영 현장의 이해관계를 노련하게 정리했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선배의 탁월한 사진 실력을 사랑했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욕, 혹은 그에 준하는 팩폭을 너무 싫어했다. 막내 기자였던 나는 하늘 같은 선배와의 식사 자리에서 그놈의 욕 좀 그만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이 쪼그라들어 죽겠다고 했다. 실력이 좋아서 괴팍함이 용인되던 선배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참석한 촬영장에서 욕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다행히도 내가 좋아하던 선배는 실력도 있고 도덕성도 있는 사람이었다.
진심은 있지만 불편한 조언
나는 타인의 인격에 크고 작은 손상을 주는 강한 어투가 불편하다. 아니 싫다. 회사 내에서도 동료가 상사에게 혼나는 상황에 같이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콩닥 인다. 같은 이유로 오은영의 방송을 볼 때면 불편한 지점이 많다. 그녀의 말은 깊고 정확하고 진솔하다. 선한 의지를 알고 있음에도 그의 표정과 말은 누군가에게는 생채기를 낸다. 백종원의 단호한 충고와 오은영의 따뜻한 직언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을 살피지만, 그 말이 도달하는 자리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도움은 자칫,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방송이라는 무대에서 이는 증폭된다. 출연자가 최대한 자신을 낮춘 자세로 도움을 구하는 장면, 해당 방송 스텝과 시청자들 모두가 출연자를 재단하고 판단하고 욕하는 광경들이 내게는 폭력적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때때로 돕는 이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동반한다. 방송은 상품이고, 의도대로 편집된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누군가는 위로받고, 누군가는 부끄러워지고 누군가는 깊게 베인다.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면 나는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된다.
욕 한마디 못하는 순한 사람
욕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장난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무심코 욕을 뱉지 않는다. 욕 한마디 못하는 순하고 싱거운 사람들을 나는 좋아한다. 어디서든 그곳에 있는 가장 약한 사람부터 챙기는 이들을 존경한다. 평소 상대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나의 충고와 조언을 정당화해 왔다면 곰곰이 생각 봐야 한다. 나의 언어가 나의 인식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혐오가 공공연해지는 요즘 우리에게는 존엄한 언어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삶이 좀 구겨지고 망가졌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를 바로잡을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다. 모두 다른 관점에서 우리는 고장 난 구석이 있고 반복되는 실수를 저지르며 각자 살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조언을 건네고 싶다면 위로가 먼저라면 좋겠다. 바닥까지 떨어진 상대에게 눈높이를 맞춰 최대한 낮은 자세로 다가가면 좋겠다. 좀 더 다정하게 친절하게 말해주면 좋겠다. 나 역시 어둠을 밝히는 빛의 말들을 오늘도 연습해야겠다.
백종원 논란이 화두가 되며 평소 그가 욕이나 거친 말을 자주 썼다는 일화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관련 기사와 콘텐츠들을 찾아보다 '욕'을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백종원과 오은영의 방송이 불편하고 보기 힘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스레드에 올린 글 몇 개를 모았다. SNS 글쓰기 정도로 생각하고 너그럽게 읽어주면 좋겠다. 깡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