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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Jun 09. 2019

하이테크의 세계, 가심비를 외치다.

바야흐로 5G 시대, 모든 것들이 초연결된다는 사회.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더더욱 과거의 것으로 돌아간다. 오히려 돈을 지불하고 불편함을 감수한다.


친구들과 함께 필름카메라를 장만하여 필름카메라 출사를 나가기로 하였지만, 현재 지갑사정으로 카메라를 장만할 총알이 모자라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일단은 필름카메라 앱을 다운받아 이것저것 찍어보았다. 필카효과를 주는 어플로 촬영해 보니 일상의 모든 장면 하나나하가 특별하고 색다르게 보다.


필카앱으로 세상을 보니 카메라를 처음 잡던 시절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부모님이 집에 있는 필름카메라를 쥐어주셨다. 당시 디지털카메라가 막 급부상하던 시기라, 친구들은 모두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기억에 의하면 나만 필름카메라를 들었던 것 같다.

당시 일본이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게 트렌드였는데, 우리 학교설악산을 비롯한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녔다. 당시 자연과 불교예술에 탐닉해있었던 나로서는 각종 절이나 산의 풍경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아 친구들과의 추억보다 이런것들을 피사체로 몇백장씩 찍어댔던 기억이 난다. 비오는 정동진 철길에서 친구들과 서로 컨셉샷을 찍어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디카로 사진을 찍었던 친구들이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사진을 올려주면, 서로 좋아요를 누르고 퍼가요를 남기 한동안 그 사진들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필름 몇통을 들고 현상소에 가서 현상을 맡겼다가 수북한 사진을 받아서 집에 들고왔다. 그랬기에 나는 이 플로우에서 사진의 공급자가 되지 못하고, 현물의 사진 수백장만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난 왜 디카를 못 들고갔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당시에는 디카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다. 수학여행에 들고갔던 카메라의 종류에 따라, 두가지 다른 타입의 카메라가 주는 결과물과 경험의 폭은 이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세월이 지나 몇 개의 디지털카메라가 내 손을 거쳤고, 지금은 꽤 비싼 카메라도 갖게 되었고, 촬영경험들을 통해 (전문가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같은 것도 어렴풋이 생다. 그러 다시 필카에 대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필카라는 도구로 이 세상을 담아내면 어떨까? 최신의 카메라가 주는 느낌과 필름 카메라가 주는 감성은 어쨌든 다를 수 밖에 없고, 세상을 이 양단의 도구로 담아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우나마 필름카메라를 사기 전까지 필름카메라 느낌을 주는 어플을 설치하여 사용해 보기로 했다. 주인공은 바로 구닥(Gudak)과 후지캠(HUJI). 두 어플이 주는 색감과 경험은 무척 다르다.

농담삼아 나 자신을 '하이테크에 미쳐버린 자'라고 말한다. 이런 나에게 구닥은 3일을 기다려야 사진을 받아볼 수 있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하이테크에 미쳐버린 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묵직한 경험'이다. 장을 담그는 심정으로 묵혀두어야하는 사진들. 이런 경험들이 버겁게 느껴지는 건 촤라락 날리는 샷들을 바로바로 확인해보는 경험에 너무 익숙해져있던 탓일테다.


그시절 수학여행에서 기꺼이(혹은 몰라서?) 불편함을 감수했던 기억을 떠올려보, 어떤 사진 나올까 기대하설렘과 두근거림이 주는 경험도 다시 가져보고 싶다. 서툰 실력으로 카메라로 처음 세상을 담아보던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 생생하게 살아날 것 같다. 어쩌면 필카에게는 디지털이 줄 수 없는 그 무엇보다 강렬한 '기억의 힘'이 깃들어있는 건 아닐까?


당분간은 어플로 간접경험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불편함과 기다림을 감수할 '가심비'의 세계로 어서 들어가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사기 위한 이 기다림도 기꺼이 감수해야지.


어플로 담아보았던 풍경들로 마무리.

어서 카메라를 사서 필카사진을 스캔해서 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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