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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Mar 06. 2019

(완전 솔직한) 종합검진 후기

를 가장한 첫 수면내시경 소감문

종합검진을 받았다.

여태 간단한 수준의 건강검진만 받다가, 올해 초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하는 종합검진 대상자임을 통보받았다. 당연히 처음이라 궁금하고 두근두근한 맘이 들었다. 여러가지 검사 중에 본인이 받고싶은 걸 고를 수 있었는데 20대때 갑상선 쪽에 문제가 있었어서 혹시 혹이나 결절 등이 있지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에 갑상선 초음파 그리고 질 초음파를 신청했다.

여성대상자는 정혈/결혼/임신/수유여부를 체크하는 칸이 따로 있어 정혈을 제외한 그 어떠한 해당사항도 없기에 X표시를 해서 제출했고,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당신은 미혼인데 질 초음파를 신청했고, 성경험 여부에 따라 항문으로 할지 질로 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매우 불쾌한 질문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성경험이 있든 없든 질과 포궁은 내 신체의 일부이고, 정확한 검사를 위해서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당연히 질을 통해 초음파를 봐야하는 것 아닌가. 항문으로 초음파를 본다고 해서 질로 하는 것 이하로 불쾌감이 들지 않을 것이고 사실 이런 질문이 굉장히 이상하다는 것 아시지 않냐고. 나는 이런 질문을 받고싶지 않다고 쏘아붙이듯 다다닥 답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무튼 질을 통해 초음파를 보기로 합의를 하고 기분나쁜 채로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미혼에겐 아예 선택지조차 주지 않는다는데 물어라도 보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건지.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던 터라 아주 기분 좋은 상태로 간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회사를 입사하고서는 해가 가면 갈수록 건강상태가 안좋아지는게 지표로 확확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관리를 했지만, 역부족이긴 했다.

20대 시절 주변 친구들은 저혈압으로 고생을 꽤 했다는데 사실 한번도 그래본적이 없었다. 매번 고혈압을 걱정해야 하는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꽤 높아졌다. 옆에 앉아있는 40대 남성들과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의 결과이다.

그런데 입사 때 저혈압이었던 친구도 해마다 혈압이 높아져 이제 보통으로 올라왔다는데 회사다니면 혈압오르게 만드는 인간이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간단한 검진을 마치고 중간에 문진을 했는데 아주 우아하고 멋진 중년 여성 선생님이셨다. 대략적인 결과를 보시더니 여기서 살 더 찌면 안되고 결혼안했으면 시간많을테니까 운동많이하라고 하셨,,,^^아 근데 틀린 말은 아니어서 부정이 불가했다. 열심히 실천할게요 네.


각종 검사들을 다 마치고 최종관문인 내시경실로 향했다. 각종 후기들을 섭렵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무척 떨렸다.

수면내시경을 할 수 있을지 체크하는 꽤 까다로운 문진을 거치고서야 내시경을 받으러 입장할 수 있었다. 불투명한 액체도 한움큼 삼켰다.

입장하기 전에 손등에 수면유도를 위한 바늘을 투입했는데 첫번째는 핏줄이 터져서 피가 주루륵 흘러내려(으악...) 실패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죄송하다고 하셨지만 내 신체가 핏줄을 잡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최대 3번까지 실패해본 적 있음) 아니라고 괜찮다고 제가 죄송하다고 했다. 아프긴 했지만 이정도는 어른으로 참아야 할 당연한 의무이다. 다행히 그다음번 반대편에 꽃은 바늘은 성공적으로 안착이 되어 테이핑을 했다.

내시경실로 들어가자 조도가 낮은 방에서 웅장한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왔다. 좀 섬짓하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이렇게 이렇게 누우시라고 친절하게 가이드를 주셨는데 흡사 새우 혹은 어머니 복중에 있는 태아의 자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눕고 나니 바로 약물을 투입하셨고 그 후로는 기억이 1도 없다.

술을 일정량 이상 마시면 몸에서 아예 못받아들이고 바로 토해버리기 때문에, 필름이 끊겨본 경험이 없다. 필름이 끊기는 느낌이라는데, 그게 뭔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약물을 주입하면 잠이든다잠이든다나는잠이든다«하면서 서서히 잠드는 줄 알았는데 그냥 바늘에 약물 투입줄 꽃자마자 빵!하고 블랙아웃 되는것이었음을ㅋㅋㅋㅋㅋㅋ

정말 몰랐다. 암튼 신기한 경험이었다. 역시 사람의 몸이란 참 신기해.

그러고 회복실에서 눈을 떴는데 왜 드라마같은 데서 나오는 띠띠띠띠하는 기계가 머리맡에서 나의 산소포화도와 심박수를 체크하고 있었다. 침은 또 어찌나 흘렸는지 배게에 깔아두었던 패드를 뺐는데도 왼쪽뺨에서 축축함이 느껴졌다. 고등학교때 야자시간에 몰래 1시간 자다가 국사책에 호수를 형성했던 이래로 가장 침을 많이 흘린 것 같았다. 쓰고나니 더럽네 죄송..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거셨다.

"일어나셨네요."

"......=_=?......."

머리가 너무 무겁고 어지러워서 대답을 할 힘이 없었다.

"위에 염증이 좀 있는거 빼고는 특별한 이상 없고 소견에 그렇게 작성될 거에요. 어지러운거 좀 나으시면 일어나서 나가시면 됩니다^^"

"......=_=....."

당연한 결과였다. 아랫지방 출신이라 그런가 나는 평소에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날은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 안되는 기분이라 검진을 따로 받아봐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살았으니 위에 염증이 없을리가 만무...

신입사원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끼에 밥을 두그릇씩 먹어치우던 왕성한 식욕가였다. 넌 그렇게 많이먹는데 왜 살이안찌냐는 소리를 백만번은 넘게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눈치챌만큼 식욕이 뚝 떨어져 한공기도 제대로 못 먹는 날이 늘어났다. 이제부터라도 뼈저리게 반성하고 위를 위해 편안한 식사를 해줘서 좀 달래줘야겠다 미안합니다 반성합니다.


 그러고 한 5분인가 10분을 있다가 주섬주섬 이동해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신기한 검진도 많았지만 수면내시경의 충격은 정말 강렬했다ㅋㅋㅋㅋ그 유명한 걸 이제야 직접 해보다니 하아...물어보니 일부러 안하신 선배들도 있고 그렇다던데(안할 수 있는듯), 그래도 나름 인상적이고 인생에서 한번 해볼만한(?) 도전이었다. 아마 평생 못잊을 경험이 될것 같다. 만 40세가 되면 대장내시경 한다는데 그건 위내시경하고 비교도안되게 어마어마하다던데 어케감당할지..부장님들은 그걸 무려 비수면으로 하셨다던데 믿어지지가 않는 부분이다.

하여튼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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