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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Aug 22. 2024

스티커 남발 금지!

이렇게 빨리 해낼 줄 몰랐지..

"스티커 붙여~"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우리 집 스티커 시스템은 나름 탄탄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스티커를 받는 기준, 50개의 스티커를 다 모았을 때 받는 선물 등등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규칙을 만들었다.


 1. 하루에 해야 할 공부를 하면 스티커 1개

 2. 교재 한 권이 끝나스티커 2개

 3. 특별히 많은 노력을 했거나 잘한 일이 있을 경우

     2개나 3개

 4. 스티커를 50개 모으면 100링깃(또는 100링깃 이내의 선물)


말레이시아 돈으로 100링깃은 3만 원 정도다. 아주 가끔 따로 용돈을 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스티커로 장난감도 사고 용돈도 모은다. 그러니 얼마나 스티커가 소중한 존재일까.

특히 첫째는 스티커 받는 걸 아주아주 좋아한다. 받아쓰기 100점을 받았다거나 학교 공연을 잘 끝냈을 때처럼 특별히 열심히 노력했을 땐 스티커를 2개나 3개 더 주었는데 그때마다 첫째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했다.

말 뿐인 칭찬보다 더 인정을 받았다고 느끼는 거 같다. 혼자 목표 세우고 스스로에게 상 주는 걸 좋아하는 나는 첫째에게 아주 공감이 된다.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첫째가하는 걸 둘째가 안 할 수는 없다.

당연히 둘째에게도 스티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루에 10분 정도의 짧은 공부지만 어쨌든 하긴 한다. 둘째는 그동안 스티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우선 첫째가 보상을 용돈으로 받다 보니 아직 돈을 잘 모르는 둘째는 그게 그렇게 좋은 건지 몰랐다. 그리고 중간중간 별 이유를 다 들어서 한 개씩 두 개씩 더 주며 둘째에게도 장난감을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사줬기 때문에 스티커를 빨리 모으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누나가 공부하고 받는 칭찬을 부러워하는 거 같았다. 그러더니 좀 진지하게 한글을 배우는 자세를 가졌고 혼자 읽어보려고 노력을 했다. 물론 한글을 혼자 뗐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아주 쉬운 글자를 찾아내는 정도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눈빛이 변했다는 거다.

이때쯤 둘째는 스티커를 거의 모은 상태였었다. 드디어 공부와 스티커와 장난감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했다는 듯이 갑자기 공부를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스티커를 모아서 선물을 사러 간 날, 나에게 보여준 둘째의 뿌듯한 표정은 둘째의 성장을 또 깨닫게 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숫자를 읽어보게 했다. 한국나이로 5살인데 1부터 10까지도 헷갈려하길래 슬슬 숫자를 익히게 해 줘야겠다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스티커를 선물로 걸면 열심히 할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1부터 100까지 혼자서 읽으면 스티커 10개 줄게!"라고 선언을 해버렸다.

사실 농담반 진담반이었다. 10까지도 헷갈려하는데 100까지 언제 읽겠어라는 마음이었다. 한참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100까지 읽기에 성공했다. 스티커 10개 받고 싶다면서 진지하게 노력하더니 금방 해내버렸다.


기특하고 예뻤지만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첫째에게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이 줘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받아쓰기 공부를 하고 100점을 받아도 3개 이상 허락한 적이 없었다.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속상한 게 없는 거다. 첫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예전의 둘째 같으면 어물쩍 스티커 한 3개 주고 넘어갔겠지만 10개를 붙이겠다고 와서 기다리는 둘째한테 안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없이 첫째의 눈치를 보며 요란한 칭찬 세례와 함께 스티커 10개를 전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첫째는 자기도 많이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그동안 해왔던걸 그대로도 했다고 스티커를 더 줄 수도 없고 딱히 많이 줄만한 일도 없었다. 이래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고 기준이 있으면 잘 지켜야 하는 거다. 최대한 당황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머리를 굴려봤다.

'새로운 도전이면서 스티커를 10개나 줄 만한 일이라.....'

며칠 전에 첫째가 이야기를 쓰다 만 게 생각이 났다.


"너 그 이야기 끝까지 다 쓰면 스티커 10개 줄게. 대신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짧게 쓰면 안 된다."


둘째한테 10개 준다고 했을 때랑은 다르게 구구절절 조건을 붙여가며 말을 했다.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한 번 실수하고 나니 이제는 정확히 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도 첫째는 나의 장황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주 기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10개를 받겠다는 마음이 사라진 건지 여유 있는 시간엔 놀기 바쁜 첫째 덕분에 스티커 남발 사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 같다. 혹시나 글을 다 쓰더라도 둘째가 보지 않을 때 조용히 붙여주려 한다.

왜냐면 둘째가 부러워할게 뻔하다. 그럼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 자신감이 한껏 올라 숫자가 너무 좋다며 노래를 부르는 둘째를 보는 건 아주 기쁘다. 

안 그래도 애교쟁이인데 애교 부릴게 또 생겼다. 정말 귀엽다.

그렇다고 이런 일을 두 번 만들겠다는 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가족 간에도 규칙을 잘 지켜야지.

그럼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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