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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거실서재 인테리어

확실히 책이 가까이 있어야 읽는구나

by 리나

한국을 떠나기 전 저희 가족은 한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서 잤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니 가능한 것이었지요.

안방은 자는 방, 작은 방은 책장과 장난감이 있는 놀이방, 다른 방 하나는 옷방 및 창고로 썼어요. 귀국하니 이제 더 이상은 그렇게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이들이 너무 커서 도저히 함께 잘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가만히 누워 자는 나이가 되었지만 넓게 자고 싶어 했고 둘째는 5살.. 아시죠? 온 침대를 굴러다니는 나이인 거?

둘째가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자는 동안 몇 번 맞으면 같이 자고 싶지 않아요. 가드를 올리고 잘 순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놀이방을 아이들 침대방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2층 침대랑 장난감이 들어가니 꽉 찼습니다. 큰 책장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어요. 안방도 저희 침대랑 책상으로 자리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공간은 딱 하나 거실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티브이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요. 그러니 책장을 버릴 순 없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하나둘 모아 온 책들도 버리고 싶지 않았고요. 사실 티브이는 대체제가 많아요. 컴퓨터로 볼 수도 있고 휴대폰도 있으니까요. 큰 화면을 포기해야 한다니 그건 참 아쉬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책장을 거실에 두기로 마음먹고 남편이랑 고민을 좀 했습니다. 이 좁은 거실에 큰 책장이 들어가면 엄청 답답하겠지 싶었서 걱정이 되었거든요. '책장을 반으로 나눠서 양쪽에 두자.', '가운데에 티브이를 한 번 넣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한쪽 벽에 쭉 붙여놨습니다. 거실 한쪽은 책장, 다른 쪽은 소파. 이것이야 말로 거실서재였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답답해 보이지 않았어요. 아래쪽 서랍에는 아이들 장난감과 학용품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처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벌써 꽉 차서 더 이상 자리가 없는 서랍칸에 생겼네요. 또 정리를 해야겠어요.


소파에 앉으면 제 눈앞에 책들이 가득 들어옵니다. 그러면 제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절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틈틈이 읽게 됩니다. 특히 서양미술사 책은 크기도 크고 표지도 눈에 튀어서 압밥감이 크네요. 그래도 잘 버티고 아직 읽지 않고 있습니다. 복직하고 마음이 편해지면 읽어볼까 합니다. 저만 이렇게 느끼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아이들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글씨를 이제 뗄까 말까 하는 둘째도 아무 책이나 펼치고 그림이라도 봅니다. 늘 저희 집에 있던 책장인데 구석에 있어서 손이 잘 안 가졌던 건가 봐요.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결국 큰 화면을 포기하질 못했어요. 3년 동안 창고에 있던 터라 누레진 티브이는 정리했지만 꽤 큰 모니터를 구매했답니다. 안방에 있는 컴퓨터에 연결해 두고 그걸로 컴퓨터도 하고 티브이도 보고 있습니다. 일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도 이 모니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시간에 간식은 못 먹어요. 다 함께 침대에서 옹기종기 앉아서 봐야 하거든요. 추운 겨울에 장판 틀고 이불 덮고 영화 보니 또 다른 즐거움이 있네요. 방이 작아서 더 영화관 같은 기분입니다.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밤마다 티브이 보기가 편하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밤이 되면 너무 피곤해서 거실에서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 눕느라 유튜브 좀 보다 잠들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휴대폰으로는 영화나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편안히 침대에 누워서 티브이를 볼 수 있으니 미뤄둔 시리즈를 다 볼 거 같아요. 이건 아이들에게는 비밀이에요. 아이들은 자기들이 잠들면 엄마 아빠가 독서하는 줄 알아요. 덕분에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진 티브이를 못 트네요. 지금 남편이랑 조명가게를 보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편씩 무서워도 꾹 참으며 보고 있어요. 다 보고 나면 둘이 함께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아이들 한번 보고 잠에 듭니다.


엄청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도 아이들 옆에 붙어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생명들 옆에는 이상한 게 올리 없어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책장이 집 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 집이 전체적으로 차분해진 느낌입니다. 여기서 오는 평온함, 편안함이 아이들이 한국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는 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큰 화분 하나면 들여놓으면 될 거 같아요. 나무색만 있으니 초록색이 있으면 좋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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