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학교에서 반장선거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회장선거인데 저는 반장선거란 단어가 더 입에 붙네요.ㅎㅎ 반장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본 첫째는 조용히 친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투표만 했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이 책 정리 담당자가 됐다는 거예요.
책정리 담당? 저 어릴 때는 돌아가면서 청소나 정리를 담당했었는데 이제는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건가 보더라고요. 그런데 책은 워낙 잘 흐트러지기 마련이니 너무 바쁠 거 같아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 왜 책정리 담당이 됐어? "
"아무도 손을 안 들길래.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내가 한다고 했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중간중간 책을 살펴보며 찢어진 책은 선생님께 고쳐달라고 부탁도 드리더라고요.
저는 뽑기를 했다거나 선생님이 시키신 줄 알았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엄청 기특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내가 한다는 생각은 참 멋지잖아요. 좀 바쁘긴 하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에 책임감도 배울 수 있고 더 나아가 책이랑도 더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첫째는 갑자기 저에게 어릴 때 책정리 담당이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저희 때는 그런 게 없었으니 없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뭐라도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중학교 때가 생각났습니다.
저희 반에는 비치된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중에 이외수 작가님의 벽오금학도라는 책이 있었어요. 오래된 책이어서 아무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가 그 책을 읽어봤는데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며칠을 교실에서 이 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좀 이상했나 봐요. 그 이후로 아이들이 저만 보면 벽오금학도라고 놀리곤 했었습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첫째의 질문과 연결시키고 싶었어요. 좀 고민하다가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책 정리 담당이란 건 없었어. 그런데 엄마는 교실에 있는 오래된 책도 다 읽었었어. 너도 정리하면서 책을 자주 보게 될 테니 많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책이라는 단어 말고는 연관성이 없고 사심이 가득한 답변이었지만 첫째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참 고마워요.
다음에는 어떤 재밌는 일을 하고 올지 궁금하네요. 늘 이렇게 기분 좋은 이야기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