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얼마나 놀고 있는지 보여주지

시간표를 그려보자

by 리나

"엄마 우리도 시간표 그려보자~"

첫째가 한글을 공부하면서 한글책에 나와있던 시간표를 보더니 대뜸 시간표를 그리자고 했다.

시계도 못 보는데 그려서 뭐하나 심드렁하게 알았다고 했다가 곧 번뜩이는 생각에 옳다구나 싶었다.


"아 첫째에게 노는 시간이 많다는 걸 알려주면 좋겠다!"




첫째는 작년 말부터 한글을 공부 중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첫째가 둘째의 방해와 나의 바쁨으로 원하는 만큼 읽지 못하고 그림만 슥슥 보길래 스스로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 원대한 계획은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까지 첫째가 한글을 떼서 여기 오면 스스로 책을 읽고 나는 조금씩 영어를 알려주는 거였는데 아직 한글 공부 중이다.

역시 육아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

한글을 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고 혼자 책을 읽으려면 한참 멀었다.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도 못 가서 영어 할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알려주고 있다.


처음엔 하루 5분에서 10분 정도 알려주었고 지금은 한글을 읽는 게 많이 늘어서 30분 정도 같이 책을 읽어보고 있다. 나는 아이가 한글이 많이 늘기도 하고 힘들어하지도 않길래 이 정도 하는 건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가 공부하느라 노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아주 당당한 얼굴로 하루 종일 공부한다며 못 놀고 있다고 하길래 한글 공부를 안 하고 싶은 건지 물어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한글을 조금씩이라도 읽는 건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첫째는 그저 한글 공부하는 시간이 노는 시간보다 많으니 더 더 놀아달라는 거였다.


"아니야 하루 종일 놀고 잠깐 한글 공부하는 건데?", "첫째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좋아"

"한글 공부는 할 거야!", "노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지금 보다 더 적은 시간을 공부하면 아무 의미가 없을 거 같아서 어쩌지 고민만 하다 그날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이 난 거다.


첫째에게 하루 종일 놀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룰루랄라 신나게 시간표를 그렸다.

너무 오랜만에 그려서 하루 24시간이 표시되게 그려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고 그냥 시계처럼 그렸다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나서야 제대로 그려줄 수 있었다.

둘째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놀고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정성스럽게 그렸다.

엄마로서 유치한 생각이지만 정말 신나고 재밌었다.


짠! 완성했어! 놀고 있는 시간은 노란색으로 표시하고 한글 하는 시간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어!

놀고 밥 먹고 티브이 보고 놀고 밥 먹고 하다 중간에 아주 작게 파란색이 있는 시간표를 기쁜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첫째의 당황스럽지만 수긍하는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꼭 안아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자 한글 하는 시간이 엄청 적긴 하다고 씩 웃으며 인정했다.

애를 기죽게 하려는 게 아니고 그저 아이에게 노는 시간도 엄청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여서 남편과 나는 지금도 잘하는 거라고 저녁 먹는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첫째도 노는 시간 엄청 많다며 만족해했다. 확실히 아이들한테는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게 효과가 있는 거 같다. 그동안은 아무리 설명해줘도 아니라고 하더니 시간표 하나에 만족해하는 게 정말 귀엽다.




노는 것처럼 재밌게 알려주려고 하는데 공부라고 느끼는 걸 보면 내가 너무 재미없게 하고 있나 보다.

아무래도 가르치는 거엔 재능이 없지 싶다.

영어나 숫자 가르치는 건 남편에게 넘겨야겠는데..과연 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