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들 방

친구들아 보고 싶어 사랑해

by 리나

"한국 가고 싶다." "언제가?"

"한국 가면 엄마 회사 일하러 나가야 해서 너희는 어린이집 가야 해~" "여기가 좋지 않아?"

"우와 어린이집 가고 싶다! " "동생도 어린이집 가는 거야? 많이 컸네~"


이건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내가 예상한 아이의 말은 '엄마랑 있는 게 좋아! 여기 있자' 였는데..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한국 가고 싶다던 첫째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하고 더 들쑤시고 말았다.




첫째는 어린이집 가는 걸 아주 좋아한다. 나의 복직으로 10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가기 싫다고 떼쓴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보다 더 아기일 때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재밌게 놀아주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서 좋아했다면 4살이 지나고는 확실히 친구들 때문에 가고 싶어 했다. 매일매일 누구랑 놀았는지 어떤 친구가 뭘 했는지 조잘조잘 설명해 주곤 했다. 주말에는 놀이터에서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나는 게 하루의 낙이었어서 아침이면 오늘은 누구를 만날지 궁금해하면서 일어나고 밤에는 내일은 어떤 친구를 만날까 설레어하며 잠들었다.


이렇게 친구들을 좋아하는 첫째에게 말레이시아는 심심하기만 한 곳이다.

해외에 나와서 설레는 건 어른들이나 그런 거다. 첫째의 입장에선 동네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도 말이 안 통해서 같이 못 놀고 한국인인 아이들은 너무 어려 같이 놀기가 어렵기에 친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요즘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못하니 한국 가고 싶은 마음만 드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여기 있는 걸 즐거워하게 될까? 나의 되지도 않는 말 덕분에 친구들만 더 보고 싶어 졌는데.


"유치원 다녀볼래? 9월이나 10월쯤 코로나가 좋아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원 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인 유치원.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좋은 한인 유치원이 있어서 그곳의 사진을 보여주고 한국인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알려준 후 친구를 사귀면 집에도 초대할 수 있게 컴퓨터와 옷이 있는 방을 놀이방으로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했다.


"한글 공부 열심히 할게요!" 아이의 표정이 확 바뀌며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할 만한 다짐을 한다. 지키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듣는 나도 기분이 좋다. 애교 가득한 눈웃음이 사랑스럽다.


아직 유치원도 확실하지 않고 친구도 없지만 일단 놀이방이라는 표시는 해 두기로 했다. 눈에 보인 게 뭐라도 있어야 기분이 좋을 테니까 말이다. 흰 종이에 놀이방이라고 쓰고 아이에게 예쁘게 꾸며달라고 했다.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다. 놀이방이 생겼다고 아이는 기분 좋고 예쁘게 꾸미는 동안 나는 자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노나니 방? 이게 뭐야?"

"누나들 방이야! 누나들만 들어올 수 있어!"

한참을 이것저것 그리면서 왼쪽에는 글씨를 쓰길래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누나들 방' 이란다.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동생이랑 잘 노는 거 같아도 동생은 놀아주는 거지 역시 같이 노는 건 아닌가 보다.

나도 친구들이랑 노는 게 아직도 너무나 재밌는데 5살 첫째는 얼마나 친구들이랑 놀고 싶을까.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동생 없이 친구들만 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 웃음이 난다.




생각해보니 첫째 아이의 제일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첫째와 친구는 문을 꼭 닫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는 둘이서만 예쁜 옷도 입어보고 화장놀이도 하면서 놀았었다. 그때도 벌써 문 닫고 놀 때가 된 건가 섭섭하기도 하고 다 컸다 대견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었다. 노나니 방처럼 보이는 누나들 방이라는 표시를 보며 또 똑같은 마음을 느낀다. 이러다가 금방 커서 엄마는 안 찾고 친구들이랑만 노는 날이 금방 오겠지. 지금은 섭섭하기도 하고 얼른 커서 자유시간을 가졌으면 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섭섭하기만 할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