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놀이터

1년 내내 열리는 우리들만의 놀이공간

by 리나

시작은 텃밭이었다. 그저 오이와 토마토를 기르며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텅 빈 베란다에 조그마한 화분 두 개와 분무기 하나만 가져다 놓았는데 그게 어쩌다 이렇게 화려해졌다.




텃밭이라 부르고 있는 화분이 생겼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확진자가 많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우리는 일주일 정도 집에만 있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그동안 고민만 하던 텃밭 만들기를 하자며 조그마한 화분 두 개와 오이, 토마토의 씨앗을 사 왔다. 텃밭 하면 뭔가 좀 더 거창한 게 생각났는데 막상 사온 건 작은 화분이라 좀 당황했지만 곧 남편의 결정에 수긍했다.

둘 다 식물 한번 제대로 길러본 적이 없으니 작게 시작하는 게 맞다.

화분에 흙을 담고 씨앗을 넣고 물을 주면서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걸 경험해보는 건 애나 어른이나 신난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 싹이 올라오지 않았다. 역시 우리라며 애들한테 어떻게 말하지 고민하던 중 아주 조그마한 싹이 정말 뿅 하고 올라왔다. 이날부터 지금까지 아주 잘 자라주고 있다.

얼른 자라서 오이와 토마토가 열리는 게 보고 싶다.

매일 조금씩 자라는걸 보는게 참 좋고 신기하다


물장난 시작

아이들이 일주일 정도는 딱 화분에 물만 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5살 2살에게 대단한 인내심이었지 싶다. 곧 분무기 물을 바닥에 뿌리며 놀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물고기 장난감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 며칠 후 둘째가 물고기 담는 통에 몸을 넣으며 본격적으로 물놀이가 시작됐다. 나는 자기도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하는 첫째를 위해 세숫대야를 가져왔고, 그렇게 바가지 풀장이 만들어졌다. 물 뿌리기랑 물에 들어가기도 정말 재밌게 했지만 첫째랑 둘째는 비질이 그렇게 재밌는지 서로 번갈아가면서 빗자루에 물을 묻혀서 바닥을 청소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청소를 서로 하고 싶어서 난리인걸 보는 게 너무 귀여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애들이 노는 걸 지켜보면서 잘한다 잘한다 호흥만 해줘도 충분했다. 이때까진 그랬다..

둘이서 사부작 거리며 잘 놀았었는데..



우리 집에도 베터파크가 열렸다

바가지에 들어가서도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더 재밌게 해주고 싶어 졌고, 남편과 나는 수영장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한국에선 베란다 워터파트가 유행이라는데 우리도 우리 가족만의 워터파크가 생긴 거다. 이걸 만들어주면서 아이들은 물속에서 놀고 나는 옆에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상상을 했다. 역시 그건 상상이었다. 엄마에게 휴식이란 없다. 풀장까지 연결할 호스를 사지 못해서 바가지로 일일이 물을 퍼서 채워줘야 한다. 사실 이건 쉽다. 물 부으며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물에서 같이 놀다가도 수도꼭지로 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줘야 하는 게 좀 귀찮다.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정말 바쁘다. 그 와중에 햇볕이 세면 우산으로 햇볕도 가려줘야 하고 목마르면 당연히 물도 가져다줘야 한다.

바가지에서 물장난 치며 놀 땐 아이들이 스스로 수도 꼭 지로가 물을 받고 노는 시간도 그렇게 길지 않았다. 수영장이 생기고는 해줘야 하는 것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집에 들어가질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더워도 물에 계속 있으면 추울까 봐 어떻게든 설득해서 들어가긴 하지만 그렇게 오래 놀고도 매번 아쉬워한다. 애들은 체력이 정말 대단하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는 걸 보니 잘하긴 했다. 앞으로 계속하려면 얼른 딱 맞는 호스도 구하고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차단막도 구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편할 테니까.

집에 들어가질 않는다..


한국에선 이런 물건들을 사면 언제쯤 치울지랑 어디 보관할지도 당연히 생각해 둬야 해서 나도 모르게 이걸 언제 치울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이곳은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라 그대로 두어도 된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새삼 내가 말레이시아에 사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정말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