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잔소리 안 하고 싶어

듣기 싫은 거 나도 알아

by 리나

"첫째야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알겠어~ 천천히 가고 있잖아"


요즘 첫째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알겠어~"다. 내가 어떤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하거나 첫째가 당연히 할 건데 굳이 내가 하라고 하면 첫째의 그 조그마한 입에서 이 소리가 바로 나온다. 끝부분을 길게 늘어뜨리며 알겠어~~라고 말하는데 짜증 난 게 아니라 알아들었다는 뜻이야라는 느낌이다. 그 특유의 톤이 정말 귀엽다.




나는 조언을 잘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하면 긍정적인 대답을 할 뿐 특별한 말을 더하지 않는다. 당연히 먼저 나서서 내 의견을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물어보기 전까지 스스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가 보여서 그렇다.


그런데 24살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나는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취업준비 중이었다. 학교에서 두 달간의 필리핀 어학연수를 보내준다길래 토익이라도 잘 보기 위해 냉큼 신청해서 가게 되었다.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나와 동갑 여자에 한 명이 여학생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 나이가 엄청 많은 척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그러다가 가끔 다 같이 만날 때면 후배들에게 취업을 준비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해주곤 했다. 그중 회계사를 준비하던 여자 후배가 있었다. 고시공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나는 영어나 자격 등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시에 떨어지고 나면 취업도 못하게 될까 봐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너는 걱정하지 말고 일단 시험에 집중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두 달간의 연수가 끝나고 다행스럽게도 토익시험을 잘 보았고 어찌어찌 취업도 오래 걸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취업을 해서인지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만나는 후배마다 토익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취업하면 어떤지 말을 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필리핀에서 함께 있었던 후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또 이것저것 조언을 하며 요즘 근황을 이야기하고 있던 중 내가 시험에 집중하라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던 후배가 회계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공부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합격한 거였다.

필리핀의 어학원에서 더운 밤 다 같이 모여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던 때가 파노라마처럼 생각이 났다. 내가 해주었던 조언들이 도움이 되었을까? 당연히 전혀 그렇지 않을 거다. 나는 나보다 훨씬 성실하고 자기 일에 책임감이 있으며 똑똑한 사람에게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했던 거였다. 그리고 이 친구 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 없는 조언들을 해 주고 다닌 거다. 나는 그저 "넌 잘하고 있어"이 말만 해줬으면 되는 거였다.


나만 봐도 그렇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더라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내 나름 가장 좋은 결정들을 한다. 경험자의 조언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내가 직접 시도해보고 실패도 하면서 배워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도 이미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내가 무언가를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날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조언을 하지 않는다.




조언과 잔소리는 다른 걸까?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이 원치 않는 조언은 잔소리다. 그러면 당연히 나는 잔소리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 아이에게만큼은 예외가 된다. 정말 잔소리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말을 더 하게 된다. 첫째는 5살이긴 하지만 양치하기 밥 먹기 같은 기초 생활 습관 같은 건 스스로도 잘할 수 있고 내가 알려주어야 하는 것도 한두 번만 들어도 제대로 이해한다. 그런데도 자꾸 양치할 때 구석구석 해라, 손 깨끗이 씻어라, 밥 먹을 때 골고루 먹어라 등 안 해도 되는 말을 자꾸만 하게 된다. 첫째가 아직 아기라 "알겠어~"부드럽게 말하고 마는 건지 아마 사춘기였으면 화냈을 거다. "왜 자꾸 똑같은 거 말해!!" 이렇게 말이다.


잔소리하지 말자, 한 번만 말하자를 속으로 수없이 생각해도 평소보다도 더 많이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자기 전에 첫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잔소리 많이 해서 미안. 내일부턴 안 그럴게"

언제쯤이면 이걸 고치려나. 애가 좀 더 크면 안 하려나. 나도 딱 한 번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