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힘주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열심히 머리를 말았는지 알겠다.

by 리나

우리 집엔 구르프 기계가 있었다. 머리를 둥글둥글 볼륨 있게 말아주던 그 기계는 엄마의 오래된 화장품과 대비되며 늘 나를 궁금하게 했다. 너무 오래돼서 상표도 잘 안 보이는 화장품으로 대충대충 화장하면서 머리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말던 엄마가 너무 이상했다. 화장을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런 기계 살바엔 화장품을 좀 더 좋은 거로 샀으면 했다. 그리고 첫째가 학교 입학 상담을 가는 날 알았다. 머리가 화장보다 중요함을.




올해 첫째는 6살이다. 영국계 학교는 1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고 미국계는 킨더 과정으로 입학하게 된다. 집과의 거리나 학교 분위기 등을 고민하고 미국계 학교에 입학하는 걸 선택했다. 입학 상담 날짜를 잡고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미용실에도 다녀왔다. 보통 중요한 일을 앞두고 미용실을 다녀오곤 하니까 그저 깔끔해 보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녀온 거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마무리한 나의 볼륨감 있고 차분한 머리를 보며 아이의 입학 상담 날 이런 머리를 하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나는 머리숱이 많은 편이고 반곱슬이라 풀고 있으면 헤그리드처럼 부스스해진다.

그래서 늘 묶고 있다. 긴 머리를 풀고 중요한 자리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미용실에서 방금 나온 머리를 하고 상담을 가고 싶었다. 유치원 상담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아무리 킨더 과정이지만 엄연히 학교의 일원이 된다. 첫째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배우는 학생이 된다는 게 정말 너무나 설레고 행복하다.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 날 아침에 머리를 감으며 혹시 이번엔 말리기만 해도 어제의 그 예쁜 머리 모양이 나온 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당연히 바로 원래의 나의 부스스한 머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좋다는 헤어제품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그럼 그렇지 하며 포기하지 않고 유튜브를 검색했다. '드라이하는 법'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많을 줄이야. 드라이하는 방법에 관한 영상이 끝도 없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반곱슬 머리를 차분하게 만드는 법에 관한 영상이 있었는데 그게 나의 머리 모양을 완전히 바꿨다.


나는 샴푸 후 말리는 법부터 틀렸던 거다. 왜 이걸 여태 몰랐을까? 그 영상을 참고해서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나니 완벽하진 않아도 봐줄 만한 머리스타일이 되었다. 입학 상담을 가기 전날 집에서 혼자 영상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입학 상담 날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말레이시아는 화장실에 드라이기를 연결할 콘센트가 없다. 그래서 방에서 대충 말리고 말았는데 이번에 조그만 거울과 드라이 빗도 샀다. 무려 한 시간 반을 말리고 드라이를 하며 머리를 하고 내가 가진 가장 예쁘고 얌전한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입학식도 아니고 그저 상담일 뿐이지만 어쨌든 내 아이의 학교에 처음 가는 날이니까 이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서 인지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과 학교 투어를 하며 내 아이가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공부하는 모습도 그려보고 궁금한것도 이것저것 물어봤다. 정말 정말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남편은 처음엔 아무 말도 않더니 확실히 달라 보인다며 신기해했다. 역시 뭐든지 배우고 해봐야 하는 건가 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머리 말리는 법부터 찾아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모르면 배워야지 어쩌겠는가.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구르프가 많았나 보다. 나와 동생의 학교에 가는 날이면 그 바쁜 와중에 조그만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마는 엄마도 이렇게 설레고 두근거렸을 거다. '구르프'란 단어는 이제 쓰지 않지만 엄마를 생각할 때면 그냥 그 단어가 떠오른다. 나의 아이들은 '드라이'라는 단어로 나를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