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의 데이트

by 리나

나는 주기적으로 인간극장 '소문난 네 쌍둥이'편을 본다. 네 쌍둥이를 어찌나 정성으로 키우는지 보고 나면 나도 육아에 좀 더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런데 볼 때마다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결국 네 쌍둥이의 누나다. 넷이나 되는 동생들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그 아이의 서러움이 가장 신경 쓰인다. 그리고 겨우 놀이터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엄마를 독차지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아이의 표정은 내가 첫째와의 데이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되었다.




첫째 건 둘째 건 엄마와 단 둘이서만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매가 함께 있어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긴 하겠지만 엄마가 내 말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주는 특별함이 또 있을 거라고 믿는다. 둘째는 유치원이 일찍 끝나서 누나가 하원할 때까지 거의 2시간을 나와 산책도 하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면서 엄마를 마음껏 독차지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26개월의 아기라서 첫째보다는 더 눈길, 손길이 가게 된다. 그게 참 첫째에게 미안하다. 정말 다행인 건 첫째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하루에 딱 30분, 우리들의 독서시간


아이들은 서로 다른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덕분에 등원차량에 탑승하는 시간이 다른데 첫째는 9시, 둘째는 8시 30분이다. 둘째도 버스를 타고 등원하게 되면서 생긴 이 30분이 정말로 좋았다. 등원 시간의 차이로 30분이 비겠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바로 첫째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첫째는 한글을 읽을 줄 알긴 하지만 아직 긴 책을 편하게 읽을 정도는 아니어서 내가 읽어주기를 바랄 때가 많은데 둘째와 함께 있을 때는 어렵다. 둘째가 자신의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거나 놀아달라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30분만큼은 정말 집중해서 읽어줄 수 있다.


우리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로비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아침의 싱그러운 바람도 좋고 짹짹거리는 새소리도 좋으며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는 것도 신난다. 첫째는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나에게 딱 붙어있는데 가끔 이게 짠한 마음이 들게 할 때가 있다. 둘째와 함께일 때 첫째가 나에게 붙어있고 싶어 한다거나 안겨있고 싶어 해도 나는 "엄마 둘째 쫓아다녀야 해 미안"이 란말로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는 자주 안아주고 자주 딱 붙어있지만 밖에서는 전혀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운 거 같다.


30분 동안 나는 정말 쉬지 않고 책을 읽는다. 아이가 골라온 책을 다 읽으려면 정말 쉬지 않고 읽어야 한다. 아침마다 책을 고르는 모습이 진지해서 귀엽다. 요즘은 누나 따라쟁이 둘째도 고심해서 고르는데 이 책 덕분에 버스를 기다리는 5분 정도의 시간이 아주 편해졌다. 전에는 산책 나가자고 조르거나 아무 곳이나 뛰어다녀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면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얌전히 기다린다. 둘째의 버스는 금방 와서 별로 못 읽어주긴 하지만 둘째의 책 읽기 시간은 밤마다 찾아오니 아쉽진 않다.




누나들만 놀아요, 아기는 유치원에


말레이시아는 휴일이 많은 나라다. 각 종교의 중요한 날은 거의 휴일이고 학교나 유치원들은 공식 휴일에 붙여서 며칠을 더 쉬는 경우가 많다. 첫째의 유치원도 그렇다. 반대로 둘째의 유치원은 딱 정해진 휴일만 쉬곤 해서 하루나 이틀을 첫째만 데리고 놀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첫째에게 우리 데이트하자는 말로 아이를 신나게 해 준다. 유치원을 못 가서 쉬게 된 날보단 그냥 좀 더 특별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다.


이런 날은 첫째가 평소에 너무나 하고 싶어 하는 거지만 둘째와 함께는 못하는 걸 주로 한다. 첫째가 제일 신나 하는 건 바로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슬라임 카페 갔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거다. 이걸 위해선 우선 둘째가 등원을 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의 유치원은 휴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는다. 요즘은 다른 학교로 옮겨서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는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 학교도 휴교인 경우가 많아서 약속을 잡기는 쉽다.


그다음이 가장 어렵다. 보통 이런 날은 연휴의 마지막 하루, 이틀인 경우라 연휴 동안 둘째의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거나 하면 둘째도 등원을 할 수 없고 그러면 당연히 우리의 약속은 파투가 나기 때문이다. 이번 연휴도 신나게 놀면서도 아이들이 피곤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엄청 썼다. 친구와 둘이서 슬라임 카페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며 행복해하는 첫째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었다. 다행히 연휴를 잘 보낸 후 둘째는 건강한 모습으로 등원을 했다. 그리고 첫째는 정말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옷을 꺼내입고 설레여하는 첫째를 보면서 나도 정말 기뻤다.


평소에도 이렇게 해 주고 싶지만 둘째만 다른 사람이 보기도 어렵고 남편이 봐준다고 해도 첫째는 친구랑 노는 것만큼이나 아빠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니 굳이 다른 약속을 잡지 않게 된다. 사실 아빠가 쉬는 날 가족이 함께 있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들 마찬가지여서 약속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둘째의 등원은 첫째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8월이면 첫째가 학교를 간다. 너무나 설레고 행복한데 하루 30분 독서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쉽다. 첫째의 등교시간이 둘째보다 빨라져서 둘만 있을 시간이 없다. 하루에 30분 정도를 어떻게 찾을지 고민을 해봐야 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