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언젠가 들어봤던 카피인데... 놀이공원의 출입문이었던 걸까, 뮤지컬 공연장의 티켓팅이었던가, 번잡한 평촌역의 어떤 바였던가, 밤이었을까? 낮이었을까? 어디인지도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 카피는 덕담이다. 시간 속에 좋은 시간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모두 좋았던 날들로 남지만 그건 기대의 산물일 뿐이다. 혹시 나는, 나쁜 시간도 나쁘지 않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나 자문해 본다.
내가 가진 최초의 바이닐, 그러니까 LP는 뉴욕에서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라이브 앨범이었다. 우리나라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제조한 거였다. 그렇지만 난 뭔지 모르게 블루지한 걸 좋아해서 지금까지도 이들의 데뷔 앨범이 가장 좋다. 데뷔 앨범의 데뷔 곡은
"Good Times, Bad Times"
텔레캐스터 고유의 담백 경쾌한 톤의 리프로 곡은 시작한다. - 사랑은 집 밖으로 나가서 해야 하는가? 실제로 약을 빨고 써 내려간 노랫말은 그냥 그렇지만, 제목만큼은 해학적이면서도 삶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적확하다고 해야겠다. 일터와 집, 사랑과 반목, 앎과 무지, 물과 기름, 행복과 불안, 비와 백양, 삶과 죽음, 위험과 가난, 나와 너, 지옥과 천국, 밥과 반찬, 술과 물, 빛과 어두움, 아날로그와 디지털 - 그렇다, 역시나 역시나,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회사에서 마켓을 위한 기획서를 쓸 때도 우린 흔히 對(Versus)의 구도를 쓰잖아요. - 그렇지 않은 게 있나요?
카세트테이프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한 세대여서인지 나는 바이닐을 가져야만 앨범을 가진 것만 같다. - 플레이어의 바늘(stylus)이 바이닐을 긁으면 바늘을 쥐고 있는 캔틸레버(cantilever)가 떨리고 그 수줍은 떨림이 커져서는 음악이 된다. 바늘은 소릿골을 따라 돌고 돌아 앨범의 반을 들려주는데 그 15분 남짓 절반의 앨범 속에서도 좋은 곡과 나쁜 곡이 함께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