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습기보다는 바람이 차게 감도는 12월의 중순쯤이었어요. 그녀와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의 신작(만든지는 좀 지난 시점이었죠.)을 보러 갔습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란 영화였습니다. 상영관으로 들어갔을 땐 한두 명 정도만 있었고 관객석이 비어있었지만 엔딩 크레디트에 트레일러까지 보고 나서 나오며 뒤를 돌아봤을 땐 사람들이 십여 명 정도 보였습니다.
우선, 이 영화를 두고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 영화에 한정하기보단 영화에 관련된 모든 것, 즉 20분 정도를 걸어서 간 극장에서 히로카즈의 '신작'을 보고 또다시 20분을 걸어서 돌아온 자정 무렵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겁니다.
돌아와서는 어머니 생각을 했습니다. 한 건가요? 떠오른 건가요?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왠지 모르게 또 다른 어머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10대 시절 잠시 떨어져서 지냈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고교 2학년 때부터였는지 3학년 때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저는 작은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과는 멀어졌지만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세 살 터울의 형은 재수를 하고 있었고 네 살 위 누이는 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계기(억측일 수도 있습니다.)는 졸업 무렵이었습니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쌀 때였습니다. 나는 문득, 내가 떨어져 사는 동안 어머니는 한 번도 내가 사는 곳으로 오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온기가 상실되는 느낌, 그런 느낌이 뒤따랐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러셨는지 여전히 모릅니다. 그게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왜?'라는 의문입니다.
파비안느의 딸은 프랑스 유명 배우인 어머니의 회고록 출판을 계기로 미국에서 건너옵니다. 여전히 배우로서의 삶만 챙기는 어머니를 보고 실망합니다.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딸은 확신합니다. 한데 딸은 어머니의 매니저인 뤼크의 기억을 들으면서 어머니와 얽힌 자신의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파비안느가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내팽개치고 오직 배우로서의 연기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자신의 기억이 틀렸다고도 할 수 있을 법한 '증언'을 듣게 되는 거죠. 두 가지 기억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파비안느의 진실일까요? 파비안느의 연기일까요?
영화는, 딸이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마침내 친정을 방문한다는 자연스러운 설정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설정만큼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자연스럽게 마칩니다.
돌아오는 20분, 아내는 태연하게 길을 걸었습니다만 장모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죠. 물론 나는 내 어머니 생각을 한 것이고요. 그날 낮, 잘게 자른 동치미 무를 넣은 비빔밥 얘기를 아내가 하더군요. 장모님 손맛이 더해져야 맛있다는 그 비빔밥 얘기를.
보세요, 기억은 어디에 있습니까? 진실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영화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진실이란, 파비안느가 배우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원제는 그냥 '진실' 두 자입니다. 인생은 거대한 역할극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가족극이 거대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진실이란, 어머니가 어머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밤은 기억들과 부대껴볼 생각입니다. 코로나 19에, 오키나와 주변을 떠도는 태풍에 기억을 살필 겨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