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대구역에 내려 아버지 어머니를 뵙고 왔다.
요즘 저는 필름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아버지.
연로하신 아버지는 천천히 방으로 가셔서 세 대의 카메라를 들고 나오셨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카메라를 바꾸셨다. 아버지는 사진관을 하는 막내 외삼촌에게 부탁해 당시에 유행인 카메라들로 바꿔서 사용하셨다. 수동 펜탁스를 쓰시다가 자동 미놀타로 가셨다가 다시 케녹스 똑딱이로 변경하는 식이었다. 늘 최신의 한 대를 보유하는 식... 그런데 아버지는 세 대의 카메라를 들고 나오신 거다.
최초의 미러리스인 삼성카메라가 도드라져 보였다. NX시리즈의 이 카메라는 무려 흰색이었다. 흰색에 삼성의 파란 줄...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거다.
라고 하셨다.
안 찍을 거 와 샀어요?
어머니가 돌아보시며 물었다.
퇴직하고 나서 샀는데 왜 샀는지 기억이...
또 다른 카메라는 아주 작은 역시 삼성의 디지털이었다. 이건 또 언제 샀노?
그리고 삼성케녹스의 35미리 자동 퍼지줌 1150도 있었다. 이 카메라는 배터리가 아웃되어 있었다.
다 가져가라 하셔서 카메라 가방과 미러리스 그리고 35미리 자동을 가져와서는 충전을 하고 새 배터리를 넣었다.
미러리스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35미리에는 후지필름 200을 넣어두었다.
아, 미러리스의 번들렌즈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삶을 비춘 유려한 렌즈, 그 삶이 저장된 빈 메모리, 그 삶을 다중노출로 포착한 필름똑딱이.
놀랍지만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아버지의 시간은 사진 밖에 있었던 거다.